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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대장정 소감⑨]20대 대학생으로서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하루하루 벅찬 감동 준 국토대장정 미래설계에 도움
Written by. 정다이   입력 : 2010-08-29 오전 10: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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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박 12일 동안의 여정을 마친 뒤, 재향군인회 박세환 회장 등 회장단과 함께 기념촬영하는 전적지답사단 ⓒkonas.net

Ⅰ.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은 11박 12일 동안의 국토대장정

  60년 전의 6.25 전쟁을 잊지 않고, 그 시대의 희생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음에 대해 감사하면서 6.25 60주년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 꼭 국토대장정을 하고 싶었는데 6.25 전적지를 거치면서 국토대장정을 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 또한, 특히 국립대전현충원에 가서 천안함 전사자에 참배를 하는 시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꼭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가 체력이 약하기에 국토대장정 완주에 대해 회의적으로 받아들이시며 사실 부모님께서는 당일까지도 국토대장정을 하는 것에 대해 큰 걱정을 하셨다. 나 역시도 내가 과연 부산까지 완주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했는데 오기가 생기면서 육체적 고통도 견디지 못하면 인생의 많은 굴곡을 절대로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 다짐이 생겨서 반드시 완주할 것이라는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국립서울현충원을 시작으로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ㆍ유엔군 초전비 등을 직접 두 발로 걸으면서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모두 12곳의 전적지를 답사하면서 이곳이 6·25 전적지인지도 몰랐던 장소가 너무 많았다. 나름대로 6.25 전쟁에 대해서 많이 배웠고,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가는 곳마다 6.25 전적지인 것을 처음 알게 된 경우가 태반이었다.

6.25 전적지를 방문하면서 그 때마다 그 곳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안타까워  하시면서 이야기 하신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 청소년, 대학생들이 6.25전쟁이 몇 년에 발생한지 조차 모르며, 6.25전쟁은 북침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6·25전쟁의 역사적 사실이 대한민국의 주역이 될 청소년, 대학생들에게 점차 무뎌지는 것 같아 나 스스로도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6.25 전적지를 방문하면서, 또, 6.25 당시 우리가 걸은 이 길을 더 무겁게 무장하고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로 행군을 했을 6.25 전쟁 참전용사들을 생각해보았다.

올해가 6.25 60주년이라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6.25 전쟁을 주제로 다룬 것들을 보면서 그 당시를 생각하니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자신을 희생한 우리나라 군인뿐만 아니라 해외 참전용사들에게도 깊은 경의를 표한다. 과연 내가 그 당시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 국가를 지킬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대학생으로서 대한민국을 어떤 방법으로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을지 생각하는 계기도 됐다.

하루에 7~8시간씩 걸으면서 수많은 고통의 시간이 다가왔다. 더위와 장마 모두를 견뎌내야 했다. 5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더위와 아스팔트 열기와 싸우면서 걸을 때는 계속해서 흐르는 땀과 갈증에 힘겨웠고, 장마와 싸울 때는 비로 인해 퉁퉁 붓고, 발가락마다 물집이 잡힌 두발을 보면서 힘겨웠다. 이러한 힘겨움 속에서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는 열망을 가지고 걸었다. 이런 고통 속에서 나 자신의 한계와 싸우고 극복하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국토대장정 하기 전에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에 찌들었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법대생이라는 신분으로 방학때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선배들을 보면 대부분 학교 도서관에서 방학을 보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20대 대학생으로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다.

12일 간 행군을 하며 또한 대학생 신분으로 어떻게 남은 기간을 보내야 할지, 좌절과 실패가 아닌 좀 더 나은 인생을 계획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손에 잡히지 않았던 미래를 이번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갈피를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2일이라는 짧기도 하지만 긴 시간동안 단체생활을 한 적은 이번 국토대장정이 처음이었다. 그 시간동안 몰랐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인생에 있어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함께 행군하면서 했던 이야기, 게임, 응원 등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팀원들과 아스팔트의 열기 속에서 함께 격려하며 걷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빗속에서 처지는 분위기를 노래로 전환하면서 걸었던 모든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행군하면서 무더위에 지쳐 더 이상 걷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팀원들의 도움으로 그 날의 행군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혼자 걸었다면 정말 포기하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는데 옆에 함께 걷는 팀원들을 보면서 같이 완주해야 된다는 다짐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체력적인 한계는 정신력으로 극복이 가능하다는 소중한 가르침도 깨달았다.

6.25 전적지 국토대장정을 팀원 모두 함께 부산까지 완주했다는 점이 가장 자랑스러웠다. 혼자서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결코 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팀원, 108명 모두가 함께 완주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행군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10년 6월은 정말 내인생에 있어서 행복했고, 큰 도움이 되었던 그런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Ⅱ. 하루하루의 소중한 추억들

* 팀원들을 만난 6월 19일
  2차 OT에서 평화 2팀 팀원들을 만났다. 어색함 속에서 서로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12일 동안의 팀장을 정하고 행군하면서 파이팅 할 수 있는 팀 평화~잇팅! 인데 평화2팀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파이팅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구호는 2010년 6월 월드컵 기간이었기에 월드컵 주제곡을 응용해서 만들었다.
    오~ 평화2팀~~ 완주를 향해~~
    오~ 평화2팀~~오오오오~~~~~
    평화~ 잇팅!! 평~~ 파이팅~~~~
  OT날 팀 명과 팀 구호를 외치면서 어색하였지만 팀 명과 팀 구호 자체에 파이팅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12일 동안 행군하면서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 6월 25일 1일차
  올림픽체육관을 가면서까지 사실 많은 걱정을 했다. 내가 진짜 완주할 수 있을지 하지만 난 할 수 있다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6.25 60주년이라서 대통령과 많은 6.25관련 인사들과 함께 기념행사를 하였다. 출정식 이후에 처음으로 간 곳은 국립현충원이었다. 국토대장정을 하기 전에 국립현충원에서 참전용사의 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시작하고자 하였다. 첫 번째 6.25 전적지인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로 향했다. 그 곳에서 세계의 평화와 한국의 자유를 위해 몸 바친 262명의 참전용사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그들의 희생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다. 참배 후 본격적인 국토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수원 10전투 비행단을 향해 수원일대를 4시간정도 더위와 싸우면서 걸었다. 걸으면서 어떤 아저씨가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말씀에 기운이 빠지기도 했지만 많은 분들의 응원 속에서 열심히 첫날의 행군을 잘 끝냈다. 5kg가 넘는 가방을 매고 더운 여름에 걷는다는 것이 숨쉬기 운동만 하던 나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팀원과 함께 걸었기에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 6월 26일 2일차
  두번째 날 부터는 진짜 국토대장정 시작이었다. 첫째 날은 워밍업이었던 것이다. 7시간 이상을 걷는데 땀은 계속 나고 정말 지치고 갈증에 힘겨워했다. 특히 우리 평화2팀은 OT 때 모든 팀원이 참석하지 않아서 아직까지 어색했기에 다른 팀보다 조금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집에서 국토대장정 때 행군을 하면서 혼자 생각을 많이 하고 지난 과거, 현재,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하며 걸을 계획이었는데 체력적으로 힘이 드니 그냥 아무생각 없이 앞의 팀원 발만 보고 걷게 되었다. 인생 재조명의 시간은 국토대장정이 익숙해지고 나서야 가능할 것 같다. 6.25 전적지인 UN군 초전전비를 방문했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UN군이 참전한 오산죽미령에서 최초로 북한과 접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라고 하였다. 6.25전쟁에 있어 UN군은 한국군의 가장 큰 지원군이었다.
  2일째 42km 가까이 걸었는데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든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에 행군을 하면서 내가 이것을 왜 한다고 했을까 라는 후회를 한 적도 있고, 또 나의 끈기와 인내심을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하며 걸었다.
  방포여단의 체육관이 숙소였는데 이날은 우리나라 축구 16강전 있었다. 다함께 응원하면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와는 달리 10시전에 소등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축구를 보는 즐거운 추억을 갖고자 DMB로 팀원들과 함께 축구를 보았다. 아쉽게 졌지만 함께 응원하면서 보니 오늘의 피로가 응원을 통해 풀린 것 같았다. 이날 다시한번 팀의 친목도모의 시간이 되었고,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 6월 27일 3일차
  셋째 날은 오전부터 비가 와서 배낭을 추진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행군을 시작하였다. 무거운 곰 한 마리가 사라지니 어깨가 아프지 않고 걸어서 오전 행군은 쉽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비가 오면서 신발이 젖으니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우비를 입고 걸으니 끈적끈적 거리고 습하기에 더위까지 함께 하여 가방 없이 걸어도 또 다른 고통이 존재하였다. 평택에서 천안까지 24km 가까이 걸으면서 팀원 개인 개인과 친해지면서 많은 이야기도 하였다. 32사단 천안대대에서 수박과 참외 등 시원한 과일로 갈증을 해소한 후 레크레이션을 하였다. 사실 오기 전부터 레크레이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성격 상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기에 걱정이 되었다. 팀장오빠와 막내의 장기자랑으로 나머지 팀원은 열심히 응원을 하였다. 다른 팀은 팀원 모두가 함께 장기자랑을 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팀장오빠와 막내에게 우리 팀원은 무한감동을 가졌다.

* 6월 28일 4일차
  누군가가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이 언제인지 물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번째 날이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 가장 힘들었던 행군이었다. 장마기간 이었음에도 너무 더웠다. 오전에는 시원한 바람으로 열심히 걸으면서 꽃을 꽂으면서 사진 찍는 여유까지 있었는데 오후 행군은 정말 최악의 행군이었다. 조치원을 가면서 나의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스텝의 잘못된 전달로 금방 쉴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쉰다는 희망을 갖고 걸었었는데 계속 고개를 넘어도 쉬지 않은 상황 속에서 더위와 짜증이 함께 나를 핑 돌게 하였다. 정말 어지러워서 그냥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는데 그 때 오빠들의 도움으로 쓰러지지는 않았다. 대신 가방을 매주고 시원한 얼음물을 주면서 중간지점이 고대 분교까지 가서 나는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정말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중에 이야기 하니 모두 이날 가장 힘들었고,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날 거의 30km 정도 걸었는데 아스팔트의 열기와 이미 고갈된 체력으로 모두 힘들었던 하루였던 것이다. 1시간은 더 가야지 부대에 도착한다고 해서 팀원들을 나로 인해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수송차에 가방을 맡겼다. 1시간을 배낭을 메고 간다면 또 다시 오빠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점이 지금까지도 조금은 아쉽다. 나의 한계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인드 컨트롤을 실패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걷고, 힘들어도 기운내면서 걸을 수 있었을 텐데 힘들고 짜증난다는 이유로 나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감정조절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더 성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날 카페에 지인들이 올린 편지를 뽑아 주었다. 미리 블로그에 편지 쓰는 방법을 자세히 적어놓아서 그런지 많은 편지를 받았다. 부모님, 친구들 오늘같이 힘든 날 편지를 받으니 피로가 조금은 잊은 듯하였다.

* 6월 29일 5일차
  계룡대를 향해서 5일차가 시작되었다. 이제 5일차가 되니까 행군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전 날 너무 힘들어서 그랬는데 걷는 것 자체가 크게 힘들지 않았다. 향군회 주체라서 그런지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걸었다. 국도의 한 차선을 우리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애쓰신 경찰 분들에게 매우 감사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국도를 걸으면서 진짜 내가 국토대장정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도심을 걷는 것보다 인적이 닿지 않는 길을 국토대장정을 해야 정당하게 걸을 수 있기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계룡대는 정말 산꼭대기에 있었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라도 내리막길이 보이지 않아서 육군, 해군, 공군 본부가 모두 모여 있는 계룡대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멀리 있나 하면서 행군하였다. 이날 계룡대 가는 길에 예쁜 들꽃도 많아서 틈틈이 사진을 찍으면서 기운내고 끝까지 걸을 수 있었다. 특히 이날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국방일보인지는 나중에 알았지만 소감문을 신문에 내야 되는데 108명 중에 내가 뽑혀서 이 날 소감문과 같이 나올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신문에 나온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고, 사진도 계곡이 보이는 곳에서 찍어서 행군에 지쳐있던 나에게 기쁨을 주었다.

* 6월 30일 6일차
  오전에는 계룡대 투어를 하였다. 육군, 해군, 공군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들어도 잘 모르겠던 것이 사실이었다. 오늘 오후 일정은 내가 가장 기다리던 일정이었다. 대전국립현충원을 향하였다. 서울에 있는 현충원은 가끔 간 적이 있지만 대전의 경우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었고, 이번 천안함 전서저 46명이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였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나와 나이가 비슷했던 친구들도 있고, 내 주변인 일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참배하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아직도 천안함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있기에 그들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루 빨리 천안함과 관련된 일들이 빨리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보광초등학교를 향했다. 계속 군부대에서 잠을 자다가 초등학교에서 잔다고 해서 사실 많은 걱정을 했다. 지방 학교라서 그것도 체육관이면 어떤 환경일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정말 시설이 체육관 중에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환경이 좋았다. 체육관에서 평화팀 단합회를 하였다. 3팀이 모두 모여 추억의 수건돌리기를 하면서 서로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 7월 1일 7일차
  7일차에는 화령장지구전적비를 방문하였다. 이 때 많은 향군회 회원분들이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가는 곳마다 많은 회원분과 여성회 회원분들이 항상 따듯하게 우리를 환영해주셨다. 지쳐있을 때마다 그분들의 환영으로 우리는 열심히 행군할 수 있었다. 얼음물을 받으면서, 수박, 빵 등을 받으면서 그분들에게 감사함을 가졌고, 우리는 굉장히 특별한 추억을 갖고 갈 수 있었다.

* 7월 2일 8일차
  이 날은 4일차 조치원과 다른 경험을 하였다. 조치원 때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던 그런 무더위와 싸우면서 행군하였다면 오늘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비를 맞으면서 행군하였다. 우비를 입고 국도를 행군하면서 이날만큼은 경찰차의 도움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비가 오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더 쉽게 발생할 수 있었는데 경찰차로 인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사고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비를 입고 걸으면서 팀원의 발만 보고 걸었다. 팀원의 발이 나의 길잡이가 되어준 것이다. 비가 와서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일렬로 걸었기에 힘든 것을 혼자 모두 짊어져야했다. 우리는 음악을 크게 틀어서 조금이라도 함께 힘든 것을 이겨내고자 하였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노래 부르면서 걸으니 어느덧 낙동강 구 철교에 도착하였다. 6.25 전적지를 방문하면서부터는 우리가 제대로 보라는 뜻인지 비가 그쳤다. 낙동강 구 철교를 그 때 당시의 피란민들이 피란을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걸었던 그 마음을 상기하면서 걸었다. 이 후 왜관전적기념관을 방문하였다. 낙동강 방어선의 주요전투인 왜관전투를 기념하고 넋을 추모하기 위한 장소였다. 경북 칠곡대대에서 특별한 참배를 하였는데 이번에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105명의 6.25 참전용사의 시신을 찾아내어 현재 군부대에 안치해 놓은 장소가 있어서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고 묵념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 7월 3일 9일차
  9일차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이 곳은 대구사수의 보루였던 다부동 전투의 전승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투이다. 다부동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한 직후부터 반격으로 전환할 때까지 대구 북방의 왜관과 다부동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한 중요한 전투였다. 여기서 사랑의 편지쓰기를 했다.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진지하게 편지를 썼다. 사실 나는 다들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편지를 썼는데 난 나를 생각하면서 편지를 썼다. 가족들에게도 또 하나의 편지를 썼지만 여기 온 가장 주된 목적은 나를 더 많이 돌아보고 생각하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후 우리는 제2작전사령부까지 행군하였는데 제2작전사령부에서 가장 큰 환대를 받았다. 군악대, 의장대의 멋진 퍼포먼스가 가장 인상 깊었다. 사령관님과 악수를 하며 기념코인도 받고 기념촬영도 하였다. 시설 좋은 체육관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 7월 4일 10일차
  영천지구 전투 전승비를 방문하였는데 영천지구전투에서 우리는 백선엽 장군을 기억하며 참배하였다. 영천지구전투는 최초의 방어선을 회복할 수 있게 기여한 전투였고, 이를 지휘하였던 백선엽장군의 이름은 역사에 남아있다. 오늘은 인터넷에 올릴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여자 대원들이 처음으로 꽃단장을 하였다. 우리 팀 경우 나랑 친구는 항상 기본 화장을 하고 있어 우리는 여유 있게 사진을 찍었다. 이제 2일 밖에 남지 않아서 우리는 롤링페이퍼를 썼다. 롤링페이퍼를 쓰면서 이제 국토대장정도 이제 하나하나 정리를 하는 것 같았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 다가오고 국토대장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릴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안 올 줄 알았던 그 시간이 이렇게 가까이 와 있다. 영천육군3사관학교는 팀원 오빠의 학교라서 오빠가 크게 떡볶이와 치킨을 사주었다. 이렇게 야식 먹고, 아침, 점심, 저녁에 간식으로 빵까지 먹으니 전혀 살이 빠지지 않아 매우 아쉬움이 많이 들었었다.

* 7월 5일 11일차
  이제 마무리 날이 다가왔다. 오전, 오후 행군만 끝나면 국토대장정은 끝이 나는 것이었다.  내일은 부산 전적지답사와 해단식 일정만 있었기에 행군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날인 것을 하늘이 알았는지 정말 더웠다. 그래도 이 더위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오늘 선두였다는 것이다. 우리 팀이 행군 순서가 항상 좋았다. 힘든 날인 경우 대체로 선두에 많이 서서 다른 팀에 비해서 정신적으로 조금 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같이 특별한 날 마지막 종착지를 우리가 선두로 행군할 수 있게 되어서 힘을 내어 행군하였다. 향군회에 소속되어 있는 영천 국립 호국원에 갔는데 여기 오르막길은 계룡대를 넘어설 정도였다. 이제 걷는 것은 모두 끝났다. 이로써 우리는 완주했다. 마지막 행군을 하면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완주를 할 수 있을지 오는 날까지도 걱정하였는데 결국 마침내 드디어 마무리 했다. 마지막 종착점은 옥산휴게소였다. 우린 선두로 가장 먼저 도착했고 참 힘들었지만 정말 12일 동안 행복했다. 그 후 학도 의용군전승 기념관에 가서 참배하고 해병부대로 갔다. 해병부대에서 우리의 열기로 밤을 뜨겁게 달구었던 전야제로 하루 일정이 끝났다. 모두들 긴장을 푼 채 신나게 즐겼고, 모두 함께 완주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완주한 대단한 사람, 특별한 사람으로 그 관계를 맺었다.

* 7월 6일 12일차
  새벽부터 우리는 포항에서 부산으로 가서 재한 UN기념공원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참전용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재한 UN기념공원에서 봉사자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참배하고 6.25 전적지 방문일정까지 모두 끝났다. 이후 해단식을 위해 해군부대로 이동하여 대조영함을 견학하였다. 대조영함에서 팀원들과 마지막 단체사진을 열심히 찍고 해단식에 참석하였다. 우리의 큰 응원군이셨던 재향군인회 회장단 모든 분들이 참석하시고 군악대가 우리의 마지막을 함께 해 주었다. 단상 위에서 한명 한명 수료증을 받으면서 회장님과 기념사진 촬영으로 이 순간을 기억하게 하였다. 모두 12일 동안 함께 한 모자를 공중에 날리면서 우리의 벅찬 감동을 표현하였다. 나 스스로가 260km를 걸었다는 것. 그리고 끝까지 내 발로 완주했다는 것.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것. 정말 이것 자체는 나 스스로 매우 자랑스럽다.
  12일 동안이 나의 인생에 있어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고,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한다.(konas)

정다이(숙명여자대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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