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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主犯을 상대로 ‘對話’하는 황당한 정부

Written by. 이동복   입력 : 2014-10-20 오전 7: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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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0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서울‧평양을 왕래하면서 2년간 계속된 남북한의 정부간 회담은 내용적으로는 남측의 국무총리와 북측의 ‘정무원총리’가 각기 수석대표로 참가한 ‘총리회담’이었지만 북측의 고집으로 명칭은 ‘남북고위급회담’으로 호칭되었다. 쌍방에서 각기 6명의 대표들이 자기측 ‘총리’를 보좌하여 회담에 참가했다. 이때 북측 대표단에는 1차부터 8차 본회담까지 줄곧 2명의 군부 대표가 참가했다. ‘인민무력부’ 부부장(우리의 차관에 해당) 김광진 차수(次帥)와 ‘인민무력부 부국장’ 직함을 달고 나온 김영철 ‘소장(少將)’이 그들이었다. 남측에서는 1차부터 3차 본회담까지는 합동참모본부 의장 정호근 대장이, 그리고 4차부터 6차 본회담까지는 합동참모본부 제1차장 송응섭 대장이 군부 인사로는 단독으로 참가하다가 1992년5월에 있었던 7차 본회담 때부터 국방부 정책실장 박용옥 준장(准將)이 추가로 대표단에 합류했다.

 남북간에는 본회담을 전후하여 회담 의제 안건에 관한 실무협상을 위하여 수시로 ‘대표회담’이 본회담 기간 중에는 서울과 평양 중 본회담이 열리는 곳에서, 그리고 본회담 사이에는 판문점 남측 지역의 ‘자유의 집’과 북측 지역의 ‘통일각’에서 번갈아 가면서 열렸다. 이 ‘대표회담’에는, 간혹 2명 또는 4명씩 참가한 예외적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 쌍방에서 각기 3명의 대표들이 참가했었다.

 북측에서 김영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대표회담’의 고정 참가자였다. 김영철 외로는 뒤에 ‘본명(本名)’으로 돌아가서 외상(外相)이 된 ‘백남순’이 ‘백남준’(당시 소개된 직함은 ‘정무원 참사실장’)이라는 가명(假名)으로 붙박이로 참가했고 세 번째로는 ‘김정우’(‘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과 ‘최우진’(‘외교부 순회대사’)이 번갈아 참가했다. 남측에서는 1차에서 3차 본회담 까지는 홍성철(통일원 장관), 이병용(국무총리 특별보좌관) 및 임동원(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이, 4와 5차 본회담 때는 송한호(통일원 차관), 임동원, 이동복(국무총리 특별보좌관)이, 6차 본회담 때는 임동원(통일원 차관), 한갑수(경제기획원 차관) 및 이동복이, 그리고 7차와 8차 본회담 때는 임동원, 이동복, 박용옥으로 바뀌어서 참가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이 진행된 전체 기간을 통하여 북측 대표단 가운데 김영철은 특히 ‘미운 오리’였다. 김영철은 항상 무례(無禮)했고 오만(傲慢)‧방자(放恣)했으며 북측의 입장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과정에서 도에 지나치는 난폭(亂暴)한 언사(言辭)로 대화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것이 다반사(茶飯事)였다.

 특히 1992년 2월19일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본회담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을 공식적으로 채택, 발효시킨 뒤 남북간에는 ① 화해(정치), ② 불가침(군사) 및 ③ 교류‧협력 등 3개 분야별 합의사항의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와 3개 분야 별 ‘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 내용을 타결하기 위하여 정치‧군사‧교류협력 등 세 갈래의 ‘대표회담’이 각기 진행되었는데 이 가운데 군사분야에서는 남측의 박용옥, 북측의 김영철이 협상의 주역(主役)이었다.

 김영철은 남측의 박용옥 장군과의 대좌(對坐)에서 특히 무례한 행동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가학성(加虐性) 기질(氣質)을 시도 때도 없이 과시(誇示)했다. 박용옥과 김영철 두 대표는 다 같이 별 하나의 ‘1성 장군’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북한군에는 ‘준장’ 계급이 없고 그 대신 대장(大將)과 중장(中將) 사이에 ‘상장(上將)’이라는 우리에게는 없는 계급을 두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서 별 하나의 장군은 우리와 달리 소장(少將)이라고 호칭되고 있다. 김영철은 이 사실을 악랄(惡辣)하게 이용하여 회담 석상에서 마주 앉을 때마다 대화 상대역인 박용옥 장군에게 반드시 ‘남쪽 준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호칭하는 것을 고집했다. 자신의 계급 호칭인 ‘소장’과 차별화함으로써 상대방의 감정에 상처를 입히겠다는 새디스트적 수작(酬酌)이었다.

 그러나, 김영철의 이 같은 야비한 짓 때문에 결과적으로 박용옥 장군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주인공이 되는 행운아(幸運兒)가 되었다. 김영철의 야비한 짓에 분노한 당시 남측의 노태우(盧泰愚) 정부는 박용옥 장군의 계급을 회담 도중 ‘2성 장군’인 ‘소장’으로 진급시키는 조치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92년 5월의 7차 본회담 이후 김영철은 ‘호칭’은 같은 ‘소장’이지만 자신은 1개의 ‘별’인 채로 2개의 ‘별’을 어깨에 부착한 박용옥 장군 앞에 대좌해서 다시는 ‘남쪽 준장’을 운운 하는 못된 짓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박용옥 장군은 그 뒤 중장으로 진급하여 예편(豫編)된 뒤 국방부차관을 역임하게 된다.

 1990년대초의 남북고위급회담 기간 중 김영철의 오만 방자한 행동이 주변(周邊)의 이목(耳目)을 끌자 북측 대표단의 보도‧수행원 사이에서는 “김영철이 김정일(金正日)의 신임을 업고 건방지게 군다”는 설왕설래(說往說來)가 있기도 했었다. 당시 그는 ‘직업군인’이 아닌 ‘정치장교’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1992년말 ‘남북고위급회담’이 북한측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중단된 뒤 김영철은, 아마도 김정일의 신임을 배경으로, 가파른 출세 가도(街道)를 달렸다. 그는 곧 ‘중장’으로 진급하여 ‘인민군 총정찰국장’의 직함으로 평양 TV의 화면(畵面)을 타기 시작하더니 머지않아 ‘상장’ 계급장을 달고 김정일의 붙박이 수행원이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김영철의 급격한 신분상승(身分上昇)이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의 대남 사업에서 그의 역할도 급속하게 증대되었다. 2011년 김정일이 죽고 등장한 김정은(金正恩)의 3대째의 세습 독재 체제 하에서 북한이 당과 정권 및 민간의 대남공작기구를 통합하여 <국방위원회> 안에 ‘정찰총국’을 설치하면서 계급이 ‘대장’으로 올라간 김영철은 ‘인민군 총정찰국장’에서 ‘국방위원회 정찰총국장’으로 직함이 상향(上向) 조정되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고(故) 황장엽(黃長燁) 씨 암살범을 남파했고 [이들 암살범들은 범행 전에 체포되었음] 이어서 2010년3월의 ‘천안함 폭침(爆枕)’과 그해 11월의 ‘연평도 포격(砲擊)’이 모두 그의 ‘작품(作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2009년부터 북한의 대남 강경 발언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고 2013년 남쪽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북한이 “핵개발과 경제건설 병진 정책”을 표방하는 가운데 지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앞세워 미국과 “일전불사(一戰不辭)”를 외칠 때 김영철은 북한 지도부의 호전적(好戰的)인 대남 강경 발언과 도발 행위를 주도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사실은 2010년 5월에 남쪽의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단행한 ‘5.24 조치’는 ‘천안함 폭침’ 도발의 책임자를 ‘색출’하여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조치를 마련할 것을 북측에 요구하고 있었다. 남측의 정보판단에 의하면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 도발의 ‘책임자’로 바로 ‘5.24 조치’가 요구하는 ‘처벌’이 김영철을 정조준(正照準)하고 있었다. 그해 11월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 도발로 김영철이 져야 할 대남 도발의 ‘책임’은 가중되어 있었다.그런데, 이번에 상식적으로는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전개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국방부 대표단이 바로 이 김영철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군사 대표단과 마주 앉아서 김영철이 제기하는 “5.24 조치 해제” 요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시야비야(是也非也) 입 다툼을 벌이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박근혜 정부가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남북대화’라면 사죽을 쓰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 해프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군사당국간 접촉’에서 김영철을 상대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천안함 폭침’ 도발에 대한 책임추궁과 재발방지 요구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 같은 최근의 과정은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라인의 정신상태가 정상을 일탈(逸脫)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克明)하게 보여준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정상적인 정신상태였다면 북한이 ‘남북군사당국간 접촉’ 북측 단장으로 김영철을 통보해 왔을 때 당연히 그를 ‘기피인물(忌避人物)’(Persona Non Grata)로 선언하고 다른 인물로 교체할 것을 요구했어야 했었다.

 지금 북한은 박 대통령의 ‘로마 발언’을 트집 잡아 박 대통령에 대한 몰상식한 험구(險口)를 재개할 뿐 아니라 엉뚱하게도 15일의 판문점 군사접촉 때 우리측 수석대표로 나섰던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중장)을 상대로 “김영철과 ‘격(格)’과 ‘급(級)’이 맞지 않는다”는 시비를 걸고 있는 판국이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박근혜 정부는 이 같은 북측의 적반하장의 ‘몽니’를 “앞으로 있게 될 고위급 회담에서 기선(機先)을 장악하기 위한 ‘대화전술’”로 평가절하(平價切下)하면서 “군사접촉에 국방부 정책실장이 나간 것은 김영철과 격을 맞춘 것”이라고 북측의 어거지 시비에 맞장구를 쳐서 스스로 말려들어 가면서 오히려 탈북자들이 추진하는 대북 풍선 날리기를 저지시키기 위한 우회적 수단을 동원하는 등 소위 “모처럼의 대화 분위기”(?) 관리에 온통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의 소견(所見)으로는, 최근에 남북간에 이루어졌던 일련의 해프닝 성 ‘접촉’과 이를 통하여 이루어진 좋게 말해 ‘환담(歡談)’이지만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잡담(雜談)’에 불과했던 ‘대화’를 마치 남북간에 정상적인 ‘대화’가 복원(復元)되기나 한 것처럼 오판(誤判)하는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라인의 천박(淺薄)하고 무책임한 대북 인식에 개탄(慨嘆)을 금할 길 없다. 북한은, 더구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주범(主犯)이 주역(主役)으로 참가하는 ‘사이비(似而非) 대화’를 통하여 이미 그들이 얻고자 하는 전리품(戰利品)을 챙기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 정부는 아마도 “‘대화 분위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십중팔구(十中八九) 우회적(迂廻的) 수단을 동원하는 비겁한 방법을 쓰겠지만, 탈북자들의 대북 풍선 날리기를 적어도 당분간은 사실상 봉쇄할 모양이고 거기에 더해서, 또 실없는 ‘인도주의’ 명목을 동원하겠지만, 북한 동포들의 실생활과는 무관한 ‘대북 퍼주기’와 함께 ‘금강산 관광’도 머지않아 재개의 기지개가 켜 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 무방할 것 같다. 도대체,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지금 북한과 북한이 원하는 사이비(似而非) ‘대화’에 이렇게 저자세(低姿勢)로 집착함으로써 이를 통해 과연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 정부는 앞으로도 김영철을 대화 상대방으로 수용할 것인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

* 출처 : 이동복 사이트 www.dblee2000.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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