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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주는 교훈

Written by. 김동길   입력 : 2015-12-24 오전 9: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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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들은 내일을 꿈꾸면서 하루를 삽니다. 대학생이면 졸업을 하고 무슨 일을 할까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 볼 것입니다. 우선 좋은 기업체나 연구기관에 들어가 취직을 하고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요새처럼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판국에는 그것이 또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은 아니기 때문에 고민이 뒤따르기는 할 것입니다.

 조국근대화가 한창이던 60년대 70년대에는 기업들이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서 아직 졸업을 하기도 전에 회사가 사원으로 학생을 끌어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해외진출도 활발해서 사우디나 리비아 같은 나라에서 ‘대수로 공사(大水路工事) 같은 엄청나게 큰 공사를 따내어 ‘약진 한국’의 모습을 과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외화가 밑천이 되어 ‘선진 한국’의 꿈을 성취한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한강변의 기적’이란 낱말은 그 시대의 한국인의 가슴에 더 큰 꿈을 심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계가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한국인이 마음 놓고 누리던 그 ‘특권’은 ‘신흥중국’과 인도 그리고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에게 빼앗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은 스스로 ‘우리 경제’는 바닥을 간다느니, 이렇게 나가다간 2017년에는 한국경제가 파탄에 직면하게 된다느니 듣기만 해도 한숨이 쏟아져 나오는 한심하고 어리석은 ‘예언’만 늘어 놓으니 이 백성이 몸 둘 바를 모릅니다.

 이전 정황을 지켜보면서 노인이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본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일본인들에게 시달리며 자랐습니다. 일본어로 교육을 받아서 일본말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외국어입니다.

 해방의 감격도 국민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맞이하였기에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평양에 살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김일성치하에 살아야 했는데 오죽 힘들었으면 평양을 탈출하고 원산을 거쳐 철원까지는 기차를 탔지만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38선을 넘어 연천을 거쳐 동두천으로 하여 서울에 ‘입성’했습니다. 6‧25도 겪고 군사독재 하에 옥고를 치루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는가? 한 마디 밖에 이 노인은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살아 온 88년 중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의 이때가 가장 살기 좋다는 그 한 마디 밖에는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오늘의 한국을, 젊은이들이여, 업신여기지 말기를!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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