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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⑰] 오늘 내가 사는 게 자랑스러운 이유

Written by. 백동원   입력 : 2016-09-21 오전 9: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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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입선’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화스트 페이스, 화스트 페이스 발령. 전 병력들은….”
1년 365일 내내 섭씨 30도를 웃도는 기온과 무덥고 습기 가득한 날씨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아버지를 따라 그런 곳에서 중·고등학교를 포함한 7년을 보냈고, 눈이 내리는 겨울에 관한 기억 자체가 가물가물해졌다. 더불어 그 중·고등학교는 미국 학교였기에, 내 가치관과 문화는 한국의 일반적인 학생들과는 다른 형태로 형성되었다. 삶의 적응도와 문화, 인생에서 사람을 결정짓는 가장 큰 두 요소가 한국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게 가장 두려웠던 것이, 군대에서의 혹한기 훈련이 아닐까 싶다.

 “동원아, 우선 비밀문서부터 챙겨라.” 모두가 완전군장을 결속하고 위장크림을 바르기 급급했던 시간에, 정보병으로서의 내 임무는 전시 비밀문서부터 전시 비밀문서함에 넣어 부대의 보안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사실 남들보다 늦게 위장하고 완전군장을 결속한다는 것은, 실제 상황에서 죽음에 좀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들이 우선적으로 부대를 벗어나 작전지역에서 텐트를 칠 때, 저는 비밀문서와 함께 늦은 출발을 하게 된다. 그 사이에 적군의 포탄이 날아온다면, 전쟁의 시작과 함께 아무 것도 못해보고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안의 중요성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 내 죽음과 맞바꿀 가치가 있다. 나 하나로 인해 100명이 넘는 방공중대원을 구할 수도 있는 것이 보안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사실 입대 전까지만 해도 이런 책임의식을 갖는 게 어려울 때가 있었다. 게다가 그게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내 소속 집단을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힘들었다. 미국인 선생님들과 그들이 가르치는 문학에서는 ‘나’가 중심에 있고, 그것을 세상이 둘러싸고 있다고 가르친다. 내가 없다면 세상도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나’는 모든 것의 선결조건이 된다. 그런 문화권에서 교육받았던 내가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보안을 확보하고 난 후 완전군장과 위장을 마친 나는, 뒤늦게 작전진지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작전진지에 다다르면 혹한기 훈련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마음은 복잡해졌다. 이윽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추위가 엄습했다. 생각지도 못했다. 추위에 대비하여 겨울 내의 2벌에 방상 내피 2벌, 전투복과 야전상의까지 껴입었고, 귀에는 귀도리와 목에는 목토시, 손에는 얇은 장갑과 두꺼운 장갑으로 완전 무장을 했지만, 바람이 그 모든 것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작전 진지까지 가는 1시간이 그렇게도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혹한기 훈련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있는 인하대학교에 진학했다. 추위에 단련되었을 리 없던 나를 보고 대학교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원아, 너는 군대 가면 추위 때문에 고생 엄청 하겠다. 그런데 도대체 왜 군대에 꼭 가고 싶다는 거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간단하게 답변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에서 받은 혜택이 있으니 당연히 내 의무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나는 인도네시아에도 한국에도 소속되지 않은 것 같은 소외감을 떨쳐버리고 비로소 내 나라에 속했다는 안정감을 찾고 싶은 것이라고.

 작전진지로 향하는 1시간 내내 나는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이를 딱딱거리며 손으로 양팔을 문질러 열을 내보도록 노력해 봤지만, 추위가 너무 강했다. 이러다가는 작전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얼어버리지나 않을까 할 정도로 너무 추웠고, 고통스러웠다. 정말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묵묵히 버텨보았다. 나는 군인이기 때문이다.

 작전진지에 도착했을 때, 더 매서운 바닷바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추위에 떨면서, 묵묵히 D형 텐트와 지휘통제실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방공중대원들은 경계작전 명령서에 따라 3곳에서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추운 바람에 발가락이 얼어버릴 것만 같았고, 손가락은 움직이질 않았다. 눈이 펑펑 내려와 나를 덮기까지 했다. 경계를 서는 2시간이 지옥 같았다. 경계가 끝난 후 가장 행복해야 할 취침시간마저 30분에 한 번씩 깨면서 추위에 벌벌 떨었고, 정말로 자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상했던 점은,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들 동안, 나는 정신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오히려 이런 힘든 과정을 넘어섬으로써, 내가 국가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뿌듯함마저 느꼈다.

 가끔 사람들은 국가에서 해주는 혜택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정된 국토 내에서 자유로이 살 수 있는 권리, 자유롭게 계약을 맺고 살 수 있는 권리,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소속되고 보호받을 권리 등 여러 권리들은 말 그대로 살아가기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더 쉽게 착각하곤 한다.

 아, 이건 태어날 때부터 당연한 내 권리이구나. 이 권리들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겠구나.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라가 없어지면 모든 혜택과 권리를 누릴 수 없음은 당연하고, 나라가 멀쩡히 존재하더라도 그 혜택 중 한 가지를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나와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런 케이스이다. 대한민국은 멀쩡히 존재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 있는 공동체들에 쉽게 소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찾은 답은 자원 병역이행이었다. 군대에 자원하여 입대함으로써, 내 의무를 다함으로써 내 권리를 되찾는 것. 그랬기에 내 주변 사람들이 대한민국 군대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든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혹한기 훈련은 끝이 날 때까지도 섭씨 영하 18.5℃를 유지하며 복귀 행군까지 나를 괴롭혔다. 혹한기 훈련이 끝난 지금도 나는 추위에 익숙해지진 않은 것 같다. 아마 어릴 때부터 몸이 더위에 적응해버린 탓에 영원히 추위에 익숙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나는, 혹한의 추위에 대비하고 적응하여 전시를 대비하자는 혹한기 훈련의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훈련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훈련에 훈련이 거듭될수록, 특히나 내게 취약한 훈련을 극복할수록 나는 더 큰 것을 얻게 되었다. 휴가를 나갈 때마다 내 친구들은 더 이상 나를 외국에서 살다온 애라고 보지 않았다. 대신 나를 휴가 나온 대한민국 군인으로 봐 준다.

 이제야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소속될 권리’를 서서히 되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게 있어 군 입대는 투자였고, 그랬기에 내 청춘의 1년 9개월을 버린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당연한 의무를 이행한다고 생각했고, 그 외에도 연등 시간이나 짬짬이 남는 시간에 독서와 공부를 병행하여 알찬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내 군 생활은 단 한 시간도 느리게 흘러간 적이 없었다.

 사회에서는 군대 두 번 가는 꿈을 꾸면 식은땀을 흘린다는 말이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돌아간다면 군대를 두 번 가야 해서 싫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또 다시 대한민국 육군을 골라 자원 병역이행을 하러 올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가 살아가는 게 자랑스럽다. 그것은 내가 당연히 얻어야 할 권리를 위해 이행해야 할 당연한 의무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서서히 한국인이 되어가고, 한국인 공동체에 소속되어 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국외이주자로서 영어가 한국어만큼 능숙한 것보다, 대한민국 육군 소속의 군인임이 훨씬 더 자랑스럽다. 또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지킴에 있어 자존감과 명예를 지닐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대한다.(konas)

17사단 방공중대상병 백동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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