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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⑳] 삶이 바뀌는 계기

Written by. 박현우   입력 : 2016-09-22 오전 9: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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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 산문/질병치유·학력변동 부문 ‘우수’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저는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입니다. 이유를 대라고 하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가난해서이기도 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일 것도 같고, 집을 나간 어머니 때문일 것도 같고. 제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지옥과도 같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목소리도 까먹을 정도로 혼자만의 공간에서 8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늙어가면서 폭력적인 성향은 줄었으나, 술과 담배에 더욱 의존하면서 삶을 더욱 망쳤고, 어렸을 때 헤어진 어머니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했습니다.

 저는 완연히 고독했으며, 고아나 다름 없었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그저 게임을 하며, 또 라면으로 하루 세끼를 먹으며 바퀴벌레처럼 생존할 뿐이었습니다. 삶의 의지가 없었습니다. 동기부여도 없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화성의 돌이 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습니다.

 자살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아픈 게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도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보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170점 만점의 멘사 아이큐 테스트에서 124점이 나왔을 정도로 기본적인 지능은 문제가 없어서 중등, 고등 검정고시를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 학력인 제가 학력변동으로 군 입대 자격을 얻고 그해 겨울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입대 전에는 멋있는 선임이 되어 후임들을 리드해주는 모습을 꿈꾸었으나, 군 생활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라면만 먹던 저는 당시 키와 체중이 184cm 54kg으로 현역 3급이었고, 강원도 최전방에서 산을 타고 훈련을 했는지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필 겨울이라 추위도 정말 버거웠습니다.

 훈련 막바지 폐렴에 걸려 12사단 의무대에 입원을 하는 바람에 1기수를 유급해 또 다시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병을 두 번 받은 군인이 저 말고 또 있을까요? 훈련소 시절을 생각하면 울컥해서 눈물이 나옵니다. 너무 힘들어서요.

 군 입대 전 8년 동안 사람과의 대화를 거의 못해 보았기 때문에 전 말을 굉장히 버벅거렸고 발음 또한 부정확했습니다. 검정고시도 독학으로 했고, 제대로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임무 수행에 있어서도 매우 뒤떨어졌습니다. 훈련소 동기들에게 따돌림 비슷한 것도 당하고, 자대에 가서는 관심병사가 되어 선임들에게 찍혀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왜 왔지?’ 다른 사람들은 자해를 하고, 나라를 떠나면서까지 기피하는 군대를 내가 왜 제 발로 왔지?

 육체적인 노동을 해야 하고, 때로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괴로운 이곳에. 국가에 헌신해 보려는 마음으로 자원입대 했지만, 국가에서 제게 주는 보상은 너무 빈약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국방부의 시계는 가더군요. 다시 떠올려도 지옥 같은 이등병이 끝나고 일병이 되자 말도 덜 버벅거리게 되고, 임무에도 그럭저럭 익숙해졌습니다. 다행히도 윤 일병, 임 병장 사건처럼 엇나가지 않고 잘 적응해서 자랑스럽게 만기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대에서 독서왕으로 뽑혀 포상휴가를 받기도 하고, 위문공연 맨 앞자리에 앉아 신나게 놀기도 했습니다. 육군본부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며 했던 100km 행군을 완주한 날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9월 28일이요. GOP에서의 나날은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그날들은 저의 자부심이 되었고, 제가 군 생활을 했던 강원도 인제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혹한기 훈련에서는 사람이 그렇게 추운 곳에서도 안 죽는 신기함을 깨달았고, 키는 1cm 더 자라고 15kg이 쪄서 185cm 69kg, 정상체중으로 전역하는 건강도 얻었습니다. 입영 전에는 게임에 중독된 생활을 했던 저는 현재는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어딘가에 의존하는 걸 그만두고 자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군인 시절 제 자신을 확립했기 때문입니다.

 전역 후엔 폭력적인 아버지에게도 맞서 싸우며 더 이상 당하지 않습니다. 제 주장을 확실히 말하고,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자존감이 생겼습니다. 물론, 이등병 생활은 지옥 같았지만 그때를 빼놓고 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나날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했지?’ 싶은 훈련과 GOP를 타서 최전방에서 보냈던 시간들, 그 빛나는 일출. 그때의 기억들과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값진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초등학교 졸업인 학력으로 남아서 군 면제가 되었다면, 지금의 제 모습과는 많이 달랐겠지요. 게임에서 못 벗어나 평생 그렇게 집 안에 박혀 살았을 겁니다.

 군대는 물론 힘들었지만, 알에서 깨어나 다시 태어나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역하던 날, 후임들이 제게 해주었던 경례는 지금도 제 자부심입니다. 군대를 다시 가라면 절대 못 가겠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경험해볼 만한 멋진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입대 전의 장병님들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께 주어진 가혹해 보이기까지 하는 시련은 당신을 더욱 강하고 굳건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신의 안배라는 것을요. 고된 훈련은 당신의 몸을 강철과 같이 튼튼하게 바꿀 것이고 인내의 시간은 살아왔던 날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 있는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앞으로 헤쳐 나갈 천금같이 값진 의미 있는 시간들에 미리 박수를 보냅니다.(konas)

12보병사단 51연대 예비역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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