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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㉑]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Written by. 박재엽   입력 : 2016-09-23 오후 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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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 산문/질병치유·학력변동 부문 ‘장려’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외가는 일명 ‘해병대 집안’이다. 군인이셨던 큰외삼촌은 해병대 1사단에서 재작년 원사로 전역하셨다. “남자라면 해병대를 나와야지”라시던 큰외삼촌의 일침 덕에, 육남매인 외가에서 내 위로 네 명이 해병대를 나왔다. 물론 다음 타자는 나였고, 막내 외삼촌의 아들이 아직 미취학 아동임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내가 마지막이었다. 그 때문에 내 군 생활은 입대 10년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도 세뇌를 많이 당해서 지금도 내 오래전 친구 중에는 내가 해병대에 간 줄 아는 사람도 더러 있단다.

 스무 살이 되던 해 5월, 입영 신체검사를 위해 친구들과 셋이서 부산지방병무청으로 갔다. 처음 보는 수십 명의 사내들 사이에 섞여 경비로 주어질 12,000원으로 오후에 고기를 먹을 생각에 모두 신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신장․체중 측정에서 녹아버렸다. 0.3cm가 부족했던 것이다. 평소 작은 키가 항상 고민이었는데 이런 결과까지 가져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4급. 0.5m로 태어나 20년 동안 1.1m도 크지 못한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신체검사 결과였다.

 결과에 충격을 받고 한동안 멍해진 나는 서둘러 고향 부모님께 전화해 결과를 말씀드렸다. 처음엔 좀 놀라 하셨지만, 이내 빠르게 안정을 찾으셨다. 오히려 군대에 안 가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시는 목소리였다. 그날 저녁 혼자 방에 누워 생각에 잠기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병무청에 화가 났다. ‘겨우 0.3cm인데, 조금 봐주지.’
 
 다음 날 부산병무청에 전화해 30분 동안 따지고 들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입대를 원하는데 왜 못 가게 합니까? 겨우 0.3cm밖에 차이 안 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결과를 다시 바꿀 수 있습니까?” 실랑이 끝에, 키가 조금 더 자라면 재검사를 받으라는 더욱더 충격적인 답을 받았다.

 그날 이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민했다. 1학년을 끝낸 후 입대하려던 계획은 무너지고, 고향에 갈 때마다 부모님과 ‘입대 토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장은 반반이었지만, 누나의 개입으로 입대를 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었다. 그렇게 입대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무렵, 군에서 큰 사건 두 개가 터졌다. ‘윤일병 사건’과 ‘임병장 사건’이 연속적으로 터진 것이다. 가족들의 의견은 더욱 거세졌고, 반 포기 상태로 시간이 흘러갔다.

 가을이 되고, 11월 중순쯤 어느 날, 그날따라 병무청 홈페이지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름 돋는 촉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14년도 입영 신체검사 종료 5일 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망미동행 51번 버스를 탔다. 1년 반 만에 다시 들어선 병무청, 하지만 또다시 퇴짜였다.

 소재지가 밀양인 내가 부산에서 재검사를 받으려면 1주일 전에 신청을 한 후 서류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숙사로 돌아와 가족에게는 비밀로 하고 주말 내내 고민을 한 끝에, 월요일 모든 수업을 땡땡이치고 소재지인 경남지방병무청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도시의 병무청을 향해, 받아줄지 아닐지 확신도 없이, 결석을 감수하고, 꿀꿀한 날씨에 비를 맞아가며, 심지어 키가 더 컸을지 안 컸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버스에 올랐다.

 처음 망미동으로 갈 때와는 사뭇 달랐다. 심장이 쿵쾅대 미칠 뻔했다. 신장체중계 앞에 서서 떨리는 마음으로 올라섰다. 0.2cm가 부족했다. 1년 반 동안 0.1cm 큰 것이다. 창피했지만, 검사관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팔굽혀펴기 20개만 하면 안 될까요?” 거짓말 않고, 그 자리에서 8번의 재측정을 하였고, 팔굽혀펴기를 200개 정도 했다.

 예전 모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하면 척추가 펴져서 일시적으로 몇cm 더 큰다고 것을 본 적이 있다. 팔이 아픈지도 모를 정도로 간절했다. 3급. 눈물이 핑 돌았다. 검사관님께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진심이었다. 가을비가 내리는 흐린 우울한 날씨에도 부산으로 돌아가는 내내 어디선가 밀려오는 뿌듯함에 흥분이 됐다. 그리고 그 주에 바로 고향 밀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아버지 저 군대 가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내 고집에 손을 들어 주셨다. 누나는 여전히 반대였지만, 해병대에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조용해졌다. 그렇게 4달 후 3월, 자원병역이행자라는 이유로 가산점 혜택을 받아, 육군 제53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에 운전병으로 무난히 입대할 수 있었다.

 군인으로 보내는 21개월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한참을 고민한 것에 비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공부, 운동, 책 읽기. 지나가는 군인에게 군 생활 중 목표를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이 셋 중 하나를 꼭 이야기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의지가 어디까지 닿느냐 였다. 셋 중 하나만 확실히 해도 성공한 군 생활이라 말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군대를 선택했고, 내가 선택한 21개월은 남들의 21개월보다 훨씬 중요하고 값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난 셋 다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었다. 물론 군인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대략 계산해 보았다. 점심시간 한 시간, 저녁 시간 두 시간, 연등 시간 두 시간, 주말평균 개인정비 시간 열 시간, 심지어 일과 중 마지막 한 시간은 체력단련 시간이 보장된다.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매일 주어지는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점심, 저녁 시간을 이용해 공부하다가 쉬는 동안 책을 읽는다. 주말에는 한 시간 오침을 하고, 한 시간 운동하고, 여섯 시간 공부하더라도 런닝맨과 무한도전 볼 시간이 각각 남는다. 사이버 지식방 이용시간과 부모님께 전화할 시간도 충분하다.

 본청 1층에는 병영도서관이 있다. 각종 베스트셀러가 진중문고 형식으로 출간돼 있고, 오래된 소설과 선임들이 기증하고 전역한 전공서적들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잘 읽지 않았기에,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가 가장 힘들었다. 열심히 읽다 보면 앞 내용이 생각이 안 나고, 더욱 집중하다 보면 정신이 흐릿해져 지금 무슨 내용을 읽고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우선 그런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손에 잡은 책은 소설「메이즈 러너」였다. 친한 후배가 볼만하다고 추천해준 책이다. 재미있다는 말에 읽은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세 권으로 이뤄진 시리즈에 흥미를 느끼면 오기 때문이라도 세 권 다 읽으려 애쓸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정말 읽기 힘들었다. 오랜만에 읽는 책이라 내용도 기억이 안 나고 지루하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돌아가서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조금이라도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면 다시 앞장을 넘겨 읽기 시작했다. 덕분에 1권을 꼬박 일주일 만에 읽어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내용이 조금씩 이해가 되고 흥미가 생기면서 2권은 사흘 만에, 마지막 3권은 이틀 만에 읽어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난 그렇게 세 권 만에 반을 해냈고, 지금까지 서른 권이 넘는 책을 읽어냈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숫자일지 몰라도, 내게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읽은 책 수보다 많은 양의 책이다. 지금도 수시로 병영도서관에 들르고 있고, 아직 읽지 못한 수백 권의 책을 보며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책이 재밌어졌다.

 내 대학 전공은 기계공학이다. 턱걸이로 들어간 학교에서 전과를 하게 되면서 학과공부를 따라가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공부가 바로 일반기계기사 자격증 공부이다. 2년간 대학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품고 있고, 앞으로 배워 나갈 내용도 있다. 재수강에 아직 듣지 못한 전공 수업을 위해 미리 자격증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4만원이 넘어가는 자격증 서적이 부담돼 두 달 만에 누나에게 연락해 안부를 물어본 끝에 얻어냈다.

 나 스스로 부담감을 더 느끼고 싶은 마음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돈이 문제였다. 책을 폈지만 역시 머리는 하얀 상태였다. 한번 배운 내용이라 쉽게 들어올 것이란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공학용 계산기를 두드리고, 공식을 외우고,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 없었다.

 경험상 공부는 동기부여도 필요 없고 책 읽기처럼 계속 다시 보는 것도 소용없었다. 그냥 밀어 넣었다. 모르는 내용은 대학 동기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거나 인터넷을 찾아보고, 휴가 나가서 필요한 전공서적을 더 가지고 온 뒤 그저 무식하게 공부했다. 지금 3분의 2 정도 진도가 나갔는데, 시험 날짜와 컷트라인 점수, 앞으로의 군 생활을 고려했을 때 실기 시험은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자만해서도 안 되고 안심해서도 안 되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한 시간이 모자랄 정도의 의지이다. 처음엔 그냥 다이어트 정도로만 운동 했지만, 최근엔 헬스 트레이너였던 동기 도움을 받아 근력운동을 진행 중이다. 쑥쑥 들어가는 배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는 복근, 굵어지는 팔뚝을 보며 전역 후 부산에서 보낼 여름을 생각하니 동기부여가 확실하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병역기피자가 늘어난다는 기사를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들은 군대생활을 하는 21개월 동안 자신이 잃는 것만을 생각한다. 젊음, 시간, 청춘. 잃는다고만 생각한다. 그들이 맞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모두 내게 바보라 손가락질했다. 남들은 끌려가는 군대를 왜 제 발로 들어가느냐고. 

 처음 신체등급을 받았을 때, 그건 누군가 내게 준 기회라 말했다. 그들 말이 틀린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들 말대로 다신 오지 않을 기회였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기회는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 기회가 아닌, 입대에 대한 선택을 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기회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 있어 난 그 기회를 잡은 것이다. 다들 지나가기 꺼리는 길을,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그 길을 나는 냅다 달려들었다.

 그때의 선택은 앞으로의 내 모든 인생을 바꿀 것이다. 긍정적으로 바뀔지 부정적으로 바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선택 덕분에 지금의 난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난 지금 정말 행복하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명예로울 수 있기에 행복하고, 아버지께 더욱 남자다운 아들이 될 수 있어 행복하고, 훗날 태어날 내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일 수 있어 행복하고, 이번 휴가 때 어머니께 달팽이 크림을 사 다 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 군인이 되지 않았다면 내 동기 대용이와 영욱이 같은 소중한 인연도 없었을 것이고, 딸기몽쉘의 깊은 맛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인가 얻는 것은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그리고 그 잃어가는 과정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입대하면서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인가 잃었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군대를 핑계 삼아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잃어가는 것이다. 군 생활 동안 무엇인가 잃어간다는 생각을 한 후 더욱더 발버둥 쳤다. 그것이 잃지 않기 위함인지, 잃은 만큼 더 얻기 위함인지는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모두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다.(konas)

2항공여단 602대대 일병 박재엽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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