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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㉔] 결전

Written by. 이대발   입력 : 2016-09-24 오후 3: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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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 산문/질병치유·학력변동 부문 ‘장려’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결전! 20사단 공병대대 1중대에서 현역 근무 중인 일병 이대발 이라고 한다. 2015년도 1월에 처음으로 병무청에서 신체검사에서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왼쪽 발목 부분에 연골이 떨어지는 질병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징병전담의사는 수술범위에 따라서 급수가 변동될 수 있다고 하셨다. 건강한 군 생활이 우선이므로 부모님과 의논하여 병원 담당 의사를 찾아가 진단서 발급을 받고 재신체검사를 받기로 하였다.

 문제가 없는 줄 알았던 수술 부위가 중요한 부위여서 병무청 전담의사는 4급 판정대상이라고 하였다. 어떻게든 현역 입대를 원하였기에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질병을 치료한 후 완치판정을 받은 진단서를 발급 받아 재신체검사를 받는 방법을 권유받았다. 5월 말 진단서를 지참하고 다시 찾은 병무청에서 재신체검사를 맡은 징병전담의사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질병을 완치하여 문제가 전혀 없다고 2급 현역 판정을 내려주어 거의 6개월간의 긴 신체검사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해 낸 듯 뿌듯한 마음으로, 내친 김에 불도저처럼 내 적성에 맞는 특기병 지원 방법을 찾아보았다. 아무래도 수술한 게 마음에 걸려서 많이 뛰어다니는 일반 소총수보다는 특기병으로 전공을 살려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만지고 정비하는 일에 관심을 많았던 나는 장갑차 정비병을 지원하였다. 1차 서류 전형 합격과 2차 시험인 면접을 무난히 통과하고 2015년 8월, 드디어 입대를 하게 되었다. 입대도 어렵다는 시기에 이처럼 쉽게 입대하게 된 데에는 질병치유자에게 주는 모집 가산점이 톡톡한 역할을 한 것 같아 더욱 좋았다.

 입대 날, 처음으로 수많은 빡빡이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가족 또는 지인들을 보았는데, 그 신기한 풍경 속에 나도 끼어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앞날이 기대되었다.

 첫째 날 이리저리 치이면서 훈련병 기간 동안의 소속을 배정받고서는 체형을 측정하는 3D 기계로 측정을 하고, 그 측정된 값대로 피복을 보급을 받았다. 두 번째 날에는 입영 후인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신체검사를 다시 진행했다. 세 번째 날은 전입하는 부대장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생활 기록부를 틈나는 대로 작성하였다. 입영심사대에서의 마지막 날엔 아침 일찍부터 훈련소로 향할 준비를 오전내로 마치고 훈련소로 넘어가게 되었다. 둘째 주까지는 강사님들이 부대를 방문, 정신교육을 하였다.

 셋째 주에는 화생방 및 공포탄 사격과 영점 사격을 실시했다. 처음으로 총을 쏴 보기에 호기심과 불안감이 같이 밀려왔다. 화생방 훈련은 예전에 비해서는 약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얼굴이 빨개지고 입과 코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사격을 하기 전에 P.R.I 라는 자세 연습을 하였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조교들도 사격하는 주에는 더 예민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사고가 날 수 있는 환경이기에 이해가 갔다.

 그 다음 훈련은 종합각개전투다. 포복은 힘들고 아팠다. 다음날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날이었는데, 훈련동기들과 함께 적진을 향하여 공격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모두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훈련은 행군이었다. 육군훈련소는 각 교육장 간 거리가 꽤 멀기 때문에 행군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이로써 모든 훈련이 끝나고 수료식 날, 우리는 군 생활이 여기서 끝난 줄 알았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거의 한달 보름 만에 만져보는 핸드폰 촉감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고, 부모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트리시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남자는 군대에서 철이 든다는 이야기가 사실임을 알았다. 군대에서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니 말이다.

 훈련병은 끝이 나고 이등병으로서 군 생활이 시작되는데, 전입부대가 발표나자 울상인 동기들이 있었다. 모두들 다른 데로 흩어져 떠나지만 나중에는 꼭 연락해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수료식이 있던 그 주 금요일 군 기차를 타고 각자의 자대로 떠나게 되었다. 보통의 용사들은 기차를 타고 위쪽으로 올라가지만 특기병과 아래 지방쪽 부대는 버스로 이동하기에 아침 점호를 하기 전부터 헤어졌다.

 나는 장갑차 정비병이기에 공병학교와 기계화학교 등이 있는 상무대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4주간의 교육을 받고서 자대로 가게 된다. 이러한 학교들이 있는 곳을 후반기 교육대라고 한다. 장갑차는 군대에서는 기계 쪽에 속한다. 따라서 교육이 끝나면 기계화사단으로 자대배정을 받게 된다.

 후반기 교육대에서는 각자의 보직에 맞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단기간 교육 시켜주는 기관이다. 교육목표에 따라 체계화된 교육을 이수하게 된다. 이곳에서 장갑차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지는 못하지만, 장갑차 조종수보다는 더욱 세심하게 배울 수 있다.

 단기간으로 배워야 하기 때문에 다른 교육생들과 경쟁하듯이 배워야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조교나 교관에게 다가가면, 시간을 내서라도 알려주려고 노력하신다. 군대나 사회나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란 걸 이런 부분에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사회보다 더 인간적인 곳이다. 실수에 대처하는 방법에서 군대는 사회보다 더 따뜻하기 때문이다.

 두 달간의 훈련과 교육이 끝나고 11월 초에 자대로 들어갔다. 자대로 와서는 훈련병 때와 교육생일 때 느끼지 못한 선임들과의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불안이 있었다. 다행히 우리 중대 선임들은 구타 및 폭언 등은 일절하지 않았고,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같은 이등병 장갑차 조종수 선임들은 내게 먼저 다가와서 후반기 때 어떤 것을 배웠냐고 물어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정비 방법들에 대하여 조언을 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내가 알려준 방법대로 했더니 “너 덕에 쉽게 해결하였다”며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이런 선임들이 많아서인지 점점 나는 내 군 생활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서 처음으로 큰 훈련인 혹한기 훈련을 하게 되었다. 살면서 이런 추위는 처음 맛보았지만, 올해 첫 번째 혹한기 훈련을 무사히 잘 마무리했다는 것에 자부심도 느꼈다.

 5월에는 전투지휘 훈련을 하게 됐다. 혹한기 때와는 달리, 이번 훈련 때부터는 내가 조금 더 앞서서 후임들을 지도해 주었다. 좀 모자라지만 이제 나도 선임이 되었다. 갈지자로 갈팡질팡하는 후임들을 지도하고, 함께 가야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선임들이 나를 뒷바라지 해 왔듯 그렇게 남은 군 생활을 보람차게 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konas)

20기계화보병사단 공병대대 상병 이대발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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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6.23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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