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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㉖] 내게 맞는 옷

Written by. 박관희   입력 : 2016-09-26 오전 9: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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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지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2016」 산문/질병치유·학력변동 부문 ‘입선’ 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죄송합니다. 손님.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아직도 그 날이 잊히지 않는다. 오랜만에 옷을 사러 나간 길이었다. 지나치게 찐 살 탓에 맞는 옷이 없었다. 몇 번째 일지도 모를 마지막 옷가게에서도 나는 여점원의 민망한 얼굴을 두고 돌아서야 했다. 점원으로서 당연한 응대였겠지만 자격지심에 휩싸여있던 내게는 비웃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힘겨웠던 학업과 꼬인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나는 먹는 것으로 풀곤 했다. 식사를 간식 먹듯이 해댔고, 야식은 당연지사였다.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은 덤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몸무게는 어느새 100kg을 훌쩍 넘어서 130kg가 돼 있었다.

 그제야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에서만 그쳤을 뿐 실제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정말로 맞는 것 같다. 무뎌진 몸이 내 마음까지 무디게 했고,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도 그때그때 뿐 나는 예전의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자연스레 외출도 줄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겁이 나서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도무지 맞는 옷을 찾기가 힘들었던 것도 이유였다. 그 날, 입을 옷이 없어 오랜만에 옷을 사러 갔던 날, 나는 돌아오는 길 내내 얼굴을 붉혔었다. 내 몸도, 내 의지도 부끄러웠던 날이었다.

 그러던 내가 변하게 된 것은 병무청 신체검사 날 이후였다. 신체검사장에서는 옷을 갈아입고 들어가야 했다. 반팔, 반바지 검사복도 내겐 맞는 것이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나는 숨듯이 들어가 신체검사를 받았다. 나는 당연히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 판정을 받았다. 검사장의 또래들은 대개가 현역 판정자들이었다.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는 또래들을 보며 나는 철없이 기뻤다. 그 힘들다던, 또 두려운 현역 군 복무라는 짐이 나를 피해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왠지 모를 찜찜함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자랑하듯 이야기했었다. 체중초과로 4급 판정을 받았다고. 군대 가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데 기뻐하실 줄 알았던 어머니께선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다. 힘들어하던 시절 내내 한 번도 웃음을 잃지 않고 격려해주시던 어머니께선 체중초과로 4급을 받았다는 소식에는 그렇게 기뻐하시지 않았다.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내내 품었던 왠지 모를 찜찜함의 정체도 이해되는 듯 했다. 나도 내가 부끄럽던 시절이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할 수 있으시다던 어머니셨지만 속마음까지 웃고 계실 리가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밤낮을 뒤바꿔 먹기만 하는 아들을 130kg이 되었고, 입고 나갈 옷이 없어 외출을 하지 않고, 남들은 다들 해내는 군 생활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아왔다. 그러고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은커녕 철없이 기쁘게만 말했으니 어머니 마음이 어떠셨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살을 빼기 시작했다. 우선은 3급 현역 판정을 받을 수 있는 몸무게가 목표였다. 그게 첫 번째였다. 어머니께도 목표를 말씀드리니 흔쾌히 도와주신다며 반기셨다. 자전거타기와 줄넘기 등 쉬운 운동부터 시작했고, 식단도 바꿔서 두부와 샐러드 위주로 먹었다. 그렇게 4개월 여가 지나고 재검일이 다가왔다. 이번에도 탈의실에서 검사복으로 갈아 입어야 했다.

 저번처럼 맞는 사이즈가 없을까 조마조마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맞는 사이즈로 입고 들어갈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검사를 다 받고 마지막 결과를 기다리며 별별 생각을 다 했다. 또 다시 4급이 나오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 막상 현역 판정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그러던 새에 결과가 나왔다. 3급 현역병 입영대상 판정을 받은 순간에 그간의 고생이 무색할 만큼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말씀드렸더니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다. 그 날, 내 몸무게는 99kg였다.

 어머니의 눈물을 뒤로하고 102보충대에 입대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첫 피복을 받을 때, 옷을 고르러 갔던 날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여전히 동기들보다는 큰 사이즈로 옷을 받아야 했지만, 그래도 그 날처럼 아예 맞는 옷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11사단 신병교육대로 배치되었다. 첫 날, 몸무게를 감량하고 싶은 인원들은 자원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건강소대인 화랑소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5주간의 정신없는 교육을 받게 되었다.

 신병교육대의 뜀걸음 코스는 아직도 기억난다. 사격장으로 이어지는 3km를 아침마다 뛰어야 했는데, 가파른 오르막은 너무 버거웠다. 매번 열외해서 걷듯이 따라 뛰곤 했던 그 길을 수료식 전 날에야 다 뛰었을 때의 성취감도 더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나는 일병7호봉이다. 곧 상병을 앞두고, 진급기준에 맞추기 위해 여전히 운동 중이기도 하다. 102보충대에서 지급받은 피복이 커져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몰래 흐뭇해한다.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재신체검사를 신청하고, 현역으로 군대에 가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들이 아직도 가끔 떠오른다. 현역판정을 받고,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우울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입대해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도 하다 보니 잃었던 건강을 되찾아 이제는 감사함이 앞선다. 거기에 많은 선후임, 그리고 동기들과의 관계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서로 간에 존중하는 자세로 예의를 지키고 또 양보해야 할 것이 많은 단체생활을 이어나가다 보니 전역 후에도 사람들과 더 수월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몸무게를 핑계로 현역복무를 피해갔다면 어땠을까. 몸은 좀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도 지금보다는 더 자주 볼 수 있었을 테니 그것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내 인생에서 그 무엇도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군 입대 이후, 나는 체중을 감량했고, 건강해졌고, 활발해졌다. 그러나 가장 큰 수확이라면 역시 ‘자신감’이 아닌가 한다. 나는 피하지 않았고, 아직은 멀었지만 점점 내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 맞는 옷을 찾기 힘들었던 시절의 나는 요즘 매일 아침 전투복을 입으면서 마침내 내게 맞는 옷을 찾아 입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많은 난관이 나를 기다리겠지만 군대에서 얻는 자신감으로 맞서 나간다면 또 못해낼 일이 무엇인가 싶다. 가장 소중한 자산인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인 군대와 피하지 않고 맞부딪혔던 내 자신에게 나는 하루하루 감사하다.(konas)

11정보통신단 112통신대대 일병 박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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