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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웅]이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2월의 전쟁영웅 리지웨이 장군, 그는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절체절명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을 구해낸 6․25한국전쟁 위대한 장군 중 한명이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7-02-07 오후 1: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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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맥아더, 매튜 리지웨이, 마크 클라크, 월턴 워커, 밴 플리트, 그리고 윌리엄 딘 장군.

 6 ․ 25전쟁이나 더 먼 과거사로 가지 않더라도 각종 서적을 통해 우리의 눈과 귀에 익숙하고 친숙함이 더해진 미국의 참전 장성 이름들이다. 1 ․ 2차 세계대전을 거쳐 6․25한국전쟁에서 미 8군사령관 또는 유엔군사령관을 역임하면서 적보다 우위의 전략전술로 전장을 지배하며 대한민국을 살린, 나아가 이국땅 전선에서 함께 참전했던 아들을 잃고도 부성애에 앞서 전체 유엔군과 대한민국, 한국 국민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불사른 은인들이기도 하다. 더욱 윌리엄 딘 장군(소장)은 개전 초기 대전지역 방어 전선에서 마지막까지 부대를 지휘하다 미쳐 좁혀진 포위망을 빠져나오지 못해 실종되었다가 북한군 포로가 되어야만 했던 불운한 장군이지만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밀착된 느낌을 갖는 장군이기도 하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는 위대한 장군이요, 소중한 나라를 지켜준 잊을 수 없는 스승이다. 국가보훈처가 해년마다 매월별로 선정하는 6․25전쟁 2월의 ‘전쟁영웅’으로 당시 미 8군 사령관과 맥아더 장군의 뒤를 이어 유엔군 사령관을 지낸 매튜 B. 리지웨이 육군 대장을 선정했다.

 

 수많은 유엔군 참전용사들이 동방의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은둔의 나라 국민을 위하여 유엔의 깃발아래 하나가 되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소련군의 사주와 중공군의 지원을 받으며 전 전선에서 38도선을 넘어 남침한 북한 김일성 집단에 대해 유엔군은 즉각 유엔총회 의결에 따라 북한의 침략을 불법 침략전쟁으로 확인하고 유엔파병을 결의했다.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의 전투병력과 스웨덴 등 5개국 의료지원단이 파견되었으며, 40여 국가가 물자지원을 하면서 3년의 긴 남북한 전쟁이 벌어졌다. 미군 3만6천여 장병을 초함 4만 여명의 유엔군이 전사하는 등 15만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최대의 전쟁이었다.

 국토의 이름도 모를 산야 곳곳에서 우리의 할아버지요, 아버지며, 남편이자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자식들이 피를 뿌리며 숨져갔다.

 중공군의 가세와 북한군의 대공세로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전황은 극히 절망적인 상태로까지 내몰렸다. 대한민국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일발.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지경까지 처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엔군을 독려하며 한국방위에 단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지휘하던 워커 장군이 1950년 12월 23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미 8군사령관에 취임한 매튜 B. 리지웨이 장군이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기여한다.

 리지웨이 장군이 지휘권을 인수할 당시 미 8군은 중공군의 2차 공세에 의해 부대가 거의 와해되다시피 하여 거의 철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장군은 중공군의 공세에 계속 밀리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부임 직후부터 비행기, 헬기, 지프차로 최전방을 돌며 장병들을 직접 격려하면서 작전참모가 후퇴위주의 작전을 계획하면 그 자리에서 분노하며 수정을 요구했다고 할 정도의 대한민국 수호 의지가 컸던 인물로 잘 알려진다.

 결국 이런 투철한 전투의지와 한국을 지켜내겠다고 하는 정신이 있었기에 서울을 탈환함으로써 상황을 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게 된 것이다. 장군의 전장을 꿰뚫어 보는 혜안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육군 제82공수사단장을 맡아 북아프리카 전역에 참전, 초기 사단장 중 한명으로서 통찰력과 통솔력을 모두 보여준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리지웨이 장군이 8군 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으로 한국전쟁을 지휘하던 시기는 한국 정부를 제주도나 국외로 철수시키는 것까지 거론되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리지웨이 장군은 대한민국을 포기하지 않고 강력한 리더십과 뚝심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1951년 1월25일부터 작전개념을 수색정찰에서 지역 확보로 바꾸고 총력을 다해 반격한 ‘선더볼트(thunderbolt)’ 작전을 전개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다. 결국 최악의 상황을 반전시켜 파국을 막았다는 점과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에서 그 이름은 계속 기억될 것으로 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160여 개 국가 중 동족상잔이라는 전쟁의 아픈 상흔을 딛고 폐허에서 우뚝 일어서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맥아더, 리지웨이와 같은 수많은 한국전쟁 참전 유엔군과 젊음을 바쳐 이 땅을 지켜낸 위대한 호국선열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임을 잊어선 안 되겠다.

 리지웨이 장군은 1951년 4월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이 트루먼 대통령과 불화로 해임되자, 그 뒤를 이어 유엔군사령관으로 취임한다. 그리고 1년 뒤 1952년 5월 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아이젠하워 장군의 뒤를 이어 나토(NATO) 최고 사령관이 돼 한국전선과 이별하게 된다.

 이후 장군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전역한다. 1986년에는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지만 가정사는 여의치 않아 세번의 결혼과 1971년에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리지웨이 장군은 1993년 7월 26일, 피츠버그 교외의 자택에서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2017년 대한민국 2월의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그를 다시 생각해 본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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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nan(taek5625)   

    북한의 침략을 불법 침략전쟁으로 확인하고 자유수호를 위해 한국전에 참전하여 4만 여명의 유엔군이 전사하는 등 15만 여명의 사상자를 낸 북한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다.

    2017-02-08 오후 2:58:33
    찬성0반대0
  • dldn4177(didn)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절체절명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을 구해낸 영웅들을 길이길이 잊지 말아야한다.

    2017-02-08 오전 9:40:00
    찬성0반대0
  • 좋은아빠(heng6114)   

    전쟁영웅인 이들이 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자유 만끽하며 살고 있음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또한 이름없이 사라져간 무명용사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2017-02-07 오후 2:56:12
    찬성0반대0
1
    2017.7.26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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