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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년 전 신안 앞바다에 울려퍼진 충무공의 군무(群舞)

‘필사즉생 필생즉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 전남 신안군 팔금면 차일봉에서 전략전술 구상하며 서․남해 해상을 사로잡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7-04-19 오전 9: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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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앞에 촛불처럼 가물대며 꺼져가던 조선을 살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 죽음 앞에서도 초연하며 마지막 순간에도 “방패로 내 앞을 가려라”며 7년 전쟁으로 전 국토와 백성을 피폐화 시킨 왜적을 물리친 조선의 명신이자 영원한 민족의 영웅이신 성웅 이순신 장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백의종군으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국가의 부름에 응해 자신을 조국의 제단위에 바치며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단 한 명 부하장졸의 생명까지 자신의 목숨처럼 귀히 여긴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전승(全勝) 신화의 전장(戰場)지휘관이요, 백성에게는 한없는 도량과 어루만짐으로 목민관의 표상이기도 했던 어버이 같은 존재.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임진왜란 당시 꽁무니빼기에 바빴던 선조임금에겐 눈엣가시였다. 선조는 일본 통신사로 간 서인 황윤길의 왜군 침략 경고를 무시하고 동인인 김성일의 엇갈린 보고를 받아들였다. 이율곡의 ‘10만양병설’까지 무시해 왜적의 침입에 대한 사전 대비책이 전혀 강구되지 않았다. 바다에 오직 이순신만이 있었다. 대쪽 같은 성품에 의(義)를 행함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은 의기로 말미암아 선조와 반대 파당에 밉보여 두 번에 걸쳐 파직(罷職)당하며 죽음 직전까지 몰려야 했다.

 허나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 했듯이 부하와 백성으로부터는 한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았던 조선 제일의 장수 이순신 장군이 왜적들에게는 불벼락이 내리치는 두려움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러기에 후일 일본의 대륙 침략전쟁의 선두에 섰던 도고헤이하치로 제독은 이순신 장군을 군신(軍神)에 비유하며 세계 최고의 장수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러일전쟁(1904∼1905,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일본이 벌인 전쟁) 당시 일본 해군 함대사령관으로 단 하루만의 전투에서 러시아의 제2태평양함대를 궤멸시킨 도고 제독은, 그를 이순신에 견주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국의 넬슨(영국의 제독.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 격멸 등, 영국 해전 사상 불멸의 공적 남김)은 군신(軍神)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못된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오직 이순신 장군뿐이다. 이순신 장군과 비교한다면 나는 일개 하사관도 못된다. 나는 천왕 폐하의 부름을 받고 온 국민의 정성어린 지원으로 단 한 번의 싸움을 이겨냈다.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조정에서조차 버림받고 국민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무기를 만들고 스스로 식량을 조달하여 수없이 일본 군대를 쳐부숨으로써 그가 지키는 지역에는 일본 군대가 한 발짝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했다. 군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충성심과 애국심을 놓고 볼 때 동서고금을 통해 이순신 장군에 비견될 인물이 그 누가 있겠는가? 죄인이 되어서도 죽음으로써 조국에 최후까지 봉사하지 않았던가? 나를 이순신 장군에 비교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구원(舊怨)을 떠나 300여년의 세월이 흘렀던 그 즈음에, 이 땅을 침략의 제물로 소화하던 조선인들을 발밑에 접어 하찮게 보았던 일본 최고의 적장 입에서 민족의 횃불 성웅 이순신 장군을 극존칭으로 존경과 흠모를 가득 담아 하는 이 말에서 민족적 자부와 긍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4일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여객선으로 1시간 10분여 거리에 위치한 신안군 팔금면에서 매우 특기할 만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순신 장군 해상기지 재조명 학술세미나’이다.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임진왜란 시 물러갔던 왜군이 1597년 다시 침략) 시기에 이곳 서남 해 팔금도에서 수일간 머물며 왜군을 물리칠 작전 구상을 한 역사적 사실과 당시의 흔적들을 찾고자 한 것이다.

 배경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팔금면에서의 행적이 기록상에 명문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매우 이례적이고 의미가 깊지 않을 수 없다. 해당지역발전 도모나 특산품 장려, 외지인들의 방문을 위한 관광 진흥 목적의 초청행사는 어디에서나 있다. 하지만 말단 행정기관에서 당장 눈앞에 드러난 이익 창출을 위함이 아닌 역사 속 인물의 행적, 그것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작은 기록을 좇아 학술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손에 꼽지 않을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학계에서도 아직은 이에 대한 어떤 조사나 연구도 크게 신장된 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지역주민이 중심이 돼 충무공께서 이 곳 ‘차일봉’이라는 산 위에 올라 부하장수들과 3면(팔금-안좌방향, 비금방향, 암태-자은방향)으로 펼쳐진 바다를 굽어보며 작전구상을 한 해상기지 활동을 재조명코자 한 이번 섬에서의 학술세미나는 장군 탄생 472주년에 즈음해 크게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하겠다.

 더구나 팔금면은 이번 세미나에 국한하지 않고 이곳에서의 장군의 역사적 흔적을 찾기 위해 지난해 5월 ‘이순신 장군 유적발굴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을 펼쳐오면서 차일봉과 인접해 있는 마을 장목리 북진 군영소에 이순신장군 기념비를 설치도 했다하니 주민들의 장군에 대한 존경심과 역사 흔적을 찾기 위한 열망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점점 퇴화돼 가는 오늘이다. 임진왜란 당시 단 한사람 이순신 장군만 없었다면 조선을 한입에 털어 넣고 중국으로 갔을 것이라고 당시 왜장(倭將)들은 이를 부드득 갈았고, 오늘의 일본 사가(史家)들도 마찬가지다. 독도를 ‘다케시마’라 칭하며 중앙정부 차관까지 시마네현 행사에 참석시키는 아베정권이다.

 섬이라는 한계와 특수성, 제한된 사정으로 인해 신안군 팔금면이 추진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팔금면 내 ‘장군 유적발굴추진’이 어떻게 이어질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지역주민들이 똘똘 뭉쳐 하나된 마음으로 나서게 된다면 묻혀있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우리 앞에 다가올 날도 멀지 않으리라 본다. 관계기관도 적극 협조해 나서주기를 고대한다.

 1975년 8월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세상을 놀라게 했던 650년 전 중국 원나라 시대 귀중한 신안 보물선 보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던 것처럼.

 내 고향 팔금에서 또 다른 보물 이순신 장군의 해상기지 전략이 크게 조명되기를 기대해 본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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