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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을 생각한다

Written by. 김동길   입력 : 2017-09-05 오전 10: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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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창호는 1878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다가 신학문의 필요를 절감하고 선교사 언더우드가 설립한 구세학당을 졸업할 때 나이가 열아홉이었습니다. 그는 험난한 국제 정세를 직시하고 독립협회에 가입하였고 평양 쾌재정에서 행한 강연회에서 당시의 정부와 관리들의 부패와 무능을 통렬하게 비판하여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도산은 서재필, 유길준, 남궁억, 윤치호, 이상재와 같은 당시의 명사들과 교분을 나누는 당대의 지도자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그는 교육의 필요를 실감하고 점진학교를 설립하고 급진주의 대신 점진주의를 권면하였습니다.

 그는 국내 정세가 여의치 않음을 깨닫고 교포들을 상대로 국민회를 조직했고 수양 단체로 흥사단을 만들어 인재 양성에 힘을 썼습니다.

 상해 홍구공원에서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을 때 도산은 그 배후세력으로 지목되어 상해에서 일경에 체포, 재판에서 4년형을 선고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검거되어 대전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나 신병치료를 힘썼으나 이듬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망명길에 오르면서 읊은 시 한 수가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제목은 <거국가(去國歌)>입니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이로부터 여러 해를

너를 보지 못할지나

그 동안에 나는 오직

너를 위해 일하리라

나 간다고 설워 마라

나의 사랑 한반도야

오늘도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도산 안창호 가슴 속의 그 애국심이라고 믿습니다.

김동길 / www.kimdonggill.com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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