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⑭] 군대는 내게 선물이었다

Written by. 공원준   입력 : 2017-09-10 오전 11:11:19
공유:
소셜댓글 : 0
twitter facebook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입선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2014년 여름이었다.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서 한국 땅을 밟아본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나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강남역에서 어머니와 함께 동작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대한민국 건아라면 반드시 거쳐 가야할 “군 입대”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한국에서 자란 기간이라곤 몇 개월 밖에 되지 않는 내게 군대는 ‘21개월이라는 시간의 청춘을 낭비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원준아, 너는 언제 군대 갈 생각이야?” 라고 물으면 내 대답은 항상 “음… 군대 안 갈 것 같은데?” 라고 답하곤 했다. 군 입대 시기에 대한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완곡하게 입대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어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군대 안 가면 대한민국 국적 포기해야 되는 것은 알고 있니? 만약 너와 같이 2년 남짓한 시간이 아까워서 국적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날 이후,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23년 인생 중 22년을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보냈다. 태어난 지 7개월이 되자마자 부모님은 나를 인도네시아로 데리고 가셨다. 그 이후로 20년을 뜨거운 태양이 1년 내내 내리쬐는 열대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그리고 나머지 2년은 부모님의 곁을 떠나 대학 공부를 위해 캐나다 밴쿠버에서 보냈다.

 한 마디로 한국의 언어나 문화에 대해서는 부모님께로부터, 또 한국 TV 프로그램 시청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울 수는 있어도 한국의 역사나 조국애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애착보다는 ‘여권에 표기된 소속국가’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군 입대를 결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고민의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게다가 종이에 하나, 둘 적다보니 군 입대를 하면 희생해야만 하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푸르른 나의 20대, 오랜 시간 동안 사귀어온 여자 친구와의 관계, 밴쿠버에서의 즐거운 대학 생활, 항상 힘이 되어 주는 대학 친구들 그리고 이제 막 적응해 가는 전공과목 공부 등등, 적으면 적을수록 군 입대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치우치고 있었다. 계속해서 난 군대가 내 인생의 정체기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만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또 다시 여름에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지난 방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가슴 한 편에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과연 내 청춘을 희생할 만한 국가인가?”라는 질문이 맴돌기 시작했다. 한 번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가 없었기에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사진들, 유품들 그리고 영상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북한과의 6.25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호국 열사들의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특히 6.25 전쟁 때 세계 곳곳의 나라에서 지도상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참전 용사들 중 한 명의 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

 “한국전에 참전하라고 했을 때 처음 들어보는 나라였지만 국가가 가라고 했으니 내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갔다. 한국전에 참전한 것이 자랑스럽다. 한국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이 지금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조상들뿐만이 아니라 피를 나누지 않은 수많은 숭고한 생명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굳건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박물관 견학을 통하여 나는 병역을 기피하는 것, 또 그럼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는 행동이 과거부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독립 운동가들과 참전 용사들에게 크나큰 결례를 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인생을 길게 보았을 때, 2년이라는 시간이 아까워서 조국을 버리는 행위는 정말 비겁하고, 이런 식으로 젊은 한국 남성들이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는 일이 잦아지면 대한민국의 위상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우려도 하였다. 이러한 큰 깨달음을 얻고서 나는 학업을 뒤로 하고 2016년 10월에 군 적응 프로그램을 통하여 나의 가족과 친구들의 생명,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군 입대를 결심하게 되었다.

 2016년 가을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를 6mm로 삭발하고 훈련소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내 삶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군대의 계급 문화와 한국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군 적응 프로그램은 영주권 병사들에게 다른 훈련병들보다 1주일 먼저 군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익숙해지고 군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제공해주었다. 무엇보다 중대장님께서 자라온 배경이 비슷한 영주권 병사들끼리 생활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서 훈련소 생활을 즐겁고 무사하게 보낼 수 있었다.

 입대하기 전,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군대에서 중간만 해라,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뭐가 있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요즘 군대는 우리 아버지 세대의 군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화했다. 남들보다 열심히 하면 주변에서 인정도 해주고 그에 따른 포상을 부여함으로서 병사들이 군 생활을 더욱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장려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과 군대에 대한 이해가 여느 한국인들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군대 예절을 열심히 배우려는 열의와 모든 훈련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열정,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전우들을 나서서 챙겨주는 모습들을 보여준 덕에 중대장 훈련병으로 뽑히게 되었다.

 남들이 귀찮아하는 제식과 구호제창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한국말이 서툴러서 이해를 못하는 전우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임지고 옆에 앉아 영어로 통역도 해주었다. 그리고 여러 번 천명이 넘는 훈련병들 앞에서 지휘자로 선택되어 큰 목소리로 예령을 외치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경험들이 모여서 감사하게도 훈련소장 표창상이라는 큰 상도 받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군 생활동안 “중간만 하자”라는 마음이 아닌 “기왕 하는 것, 중간, 그 이상을 하자”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보낸 군 생활은 재미있고 추억이 될 만한 일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자대 생활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오랫동안 겨울이 없는 열대지방에서 자라온 탓에 날씨가 상대적으로 추운 전방부대를 피하고 싶었지만 강원도 홍천으로 자대를 배치 받고 또 그 중, 훈련이 많기로 소문난 11사단에 배치가 되었다.

 게다가 다른 직책들보다 계산능력과 지능적인 임무 수행을 많이 요구하는 ‘사격지휘병’ 이라는 보직을 부여받았다. 솔직히 영주권 병사로 지원했기 때문에 내 특기나 전공과목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보직을 부여받고 서울에서 가까운 자대로 배치되길 기대하고 있었던 터라 실망감이 굉장히 컸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동기들끼리만 지내다가 선임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니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른 동기들보다 자대에 늦게 전입한 탓에 동기들과 처음에 친해질 기회가 부족해서 소외감도 느끼고, 자대 생활을 오래 했다고 텃세를 부리는 선임들은 마주치기 꺼리는 상대가 되었다.

 거기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압존법 사용법, 난생 처음 보는 단어들로 가득한 주특기 공부는 나를 숨 막히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처음 겪어보는 한국식 계급 사회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행동을 신중하게 해야겠다는 경각심을 일찍이 일깨워주었다. 예를 들어, 고의로 한 게 아닌 조그마한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나뿐만이 아니라 내 선임들과 분대장이 피해를 보고, 또 그로 인해 내가 다시 꾸중을 듣는 악순환이 괴로웠다.

 당시에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부모님께 조언을 많이 구했다. 캐나다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부모님과의 연락에 소홀했던 나였지만, 군대에 오고 나서는 부모님과의 전화 통화가 내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군 생활의 동기부여를 불어 넣어주는 윤활유 같은 존재가 되었다.

 군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자, 어머니는 “우울하게 있어봤자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는단다. 기왕 하는 거 긍정적인 마음으로 해내면 좋겠다.” 라고 하시며 날 격려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이 맞았다. 마음만 먹었으면 다른 나라의 시민권을 따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의 의무를 기피할 수 있었는데, 결국은 내가 자원해서 군대에 온 것이지 않은가? 내 선택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멀리 와버렸고 그 선택에 대한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힘든 시기에, 내 일기장을 들춰보았는데 군 입대 전 적어두었던 스티브 잡스의 명언을 읽게 되었다. “앞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다. 뒤를 돌아봐야 점들을 연결할 수 있다. 그러니 미래에 점들이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결코 나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인생을 크게 바꿔놓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사소한 사건들이 모이고 서로 연결되어 나의 운명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라는 말이다. 어찌 보면 막연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불평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군대에서 무엇을 하든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내가 군대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이 미래에 나를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생활하게 되었다.

 거짓말처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생활하자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고 군대에 대한 나쁜 것들 보다는 좋은 것들에 더 초점을 두게 되었다. 예를 들어, 추운 날씨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고, 또 홍천보다 더 전방에 위치한 부대에서 혹독한 추위와 싸우고 있지 않아도 됨에 위로를 얻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를 힘들게 했던 선임들과 친해지기 어려웠던 동기들도 내게 마음을 열고 다가와 주었다. 다행히도 내 자라온 배경을 이해해 주고 흥미를 가져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난 덕에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며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사회에 있을 때는 평범하게만 생각되었던 나의 경험들이 군대에 오니 다른 이들에게 유익한 정보통과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특히나 오랜 해외 경험 덕분에 현재 몇몇 포대원들에게는 틈틈이 개인정비 시간과 연등 시간에 영어를 가르쳐주고 있으며 유학과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꿈꿀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있다.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어서 움츠리고만 있었다면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을 뿐더러 지금쯤 암울한 군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회에 있을 때 내가 좋아서 했던 것들을 군대에 와서도 활용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서 보람됨을 느낀다.

 최근 몇 년 동안 군대에서는 “선진 병영 문화”라고 하여 이전에 있었던 부조리 및 강제적인 병사 교육 방식을 타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병사들이 군 생활을 좀 더 편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병사들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많이 봐주고 있다. 그 중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억압적인 교육 방식이 아닌 자발적으로 병사들을 따르게 하는 교육 방식이다.

 특히 우리 포대의 상급자들은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기 전에 병사들에게 행동으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도록 한다. 예전 같았으면 상급자들은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하급자들에게 말로만 강압적으로 지시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병사들이 특급전사 따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우리 포대장님께서는 열심히 주특기 공부와 체력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으신다. 또, 두발 정리를 엄격하게 강조하시는 간부님께서는 항상 본인이 솔선수범하여 두발을 정리하시기에 병사들도 자발적으로 두발을 정리하게 한다. 이와 같이 우리 포대의 리더들은 병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우리가 따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나는 솔선수범이야 말로 군대와 같은 계급 사회에서 병사들에게 아주 강력한 사기충전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상하체계가 뚜렷한 조직이니만큼 병사들은 상급자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복종해야 한다.

 이는 만일 전시 상황이 발발했을 때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서 군인으로서 반드시 몸에 익혀야 되는 습관이자 항시 무장하고 있어야 되는 정신 상태이다. 이러한 명령 체계가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병사들을 보다 격려하고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하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내게 훌륭한 리더의 자질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어느덧 군 생활을 시작한지 8개월이 되어간다. 이제는 사회에서 쓰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보다 “화랑”이라는 경례 구호가 더 익숙한 군인이 되었다. 군대에 오기 싫어서 발버둥 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다른 이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독려하는 글을 쓰고 있을 만큼 가치관도 상당히 변했다. 군대는 나에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효과를 증명해주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선사해주고 무엇보다도 내 조국, 대한민국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선물해주었다.

 앞으로 남은 군 생활동안 어떤 흥미로운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또 그 경험들을 통해서 어떠한 배움을 얻게 될지 정말 기대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역 후 밴쿠버로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나만의 스토리”가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군대라는 집단에서 겪은 단체생활은 색다른 경험이 되어 내 인생에 비옥한 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제 11기계화보병사단 955포병대대 3포대 일병 공원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인쇄하기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17.11.24 금요일
핫클릭 뉴스 더보기
포토 & 동영상 더보기
쓴소리/단소리 더보기
북한 김정은의 친필 명령서
얼마 전에JTBC 회장직을 그만 두신 분이'북한이 .. 
네티즌칼럼 더보기
3불 정책 합의로 중국에 ..
3불 정책 합의로 중국에 안보 팔아먹은 문정권 3불 .. 
깜짝뉴스 더보기
日 야쿠자도 고령화…50대이상 조직원 40% 넘어·80세 두목도
일본 폭력조직인 야쿠자도 고령화 사회의 그늘은 비켜가지 못한 ..
세상사는 이야기 더보기
가을, 이 계절에 가을을 ..
코나스 웹진 구독하기
  • 성명서/행사정보
  • 관련사이트
  • 기사제보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