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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⑮] 군대라는 또 다른 학교

Written by. 김수현   입력 : 2017-09-11 오전 1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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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영주권’ 부문 입선글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나는 3살이 되어서 미국으로 부모님과 함께 건너갔다. 집안에서 우리말을 쓰면서 컸지만, 한국에서 생활한 기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 3년을 포함해도 7년 남짓이었다. 외국생활이 내게 당연하게 느껴져서 였을까. 나는 한국에서 사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한국과 나의 인연은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피는 못 속인다고 하지 않나. 타지에 있어도 나의 친구들이 삼성이나 LG제품을 일본제품으로 잘 못 알았을 때 제일 먼저 지적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늦은 밤과 이른 새벽의 WBC 한일전이나 김연아 선수의 경기가 있을 때에는 잠을 쪼개가며 시청했다.

 미국에 있으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며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덧 대학교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4년 동안 장학생으로 보스턴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외교학을 전공하며 로스쿨까지 합격을 했다. 이제 대학원만 무사히 졸업하면 목표해 왔던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대학원 입학이란 다음 단계만을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방향을 틀도록 조언을 해 준 두 사람이 있었다. 학과 멘토였던 미군 장교출신의 교수님과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미국에 살면서도 나에게 우리말과 역사, 예의범절과 문화를 가르쳐주시는 일은 한 번도 게을리 하신 적이 없었다.

 토요일만 되면 한글학교에 나와 동생을 보내시고 직접 나오셔서 학생들을 가르치시기도 하였다. 영어로 집에서 동생과 대화를 할 때에는 부모님께서 말을 멈추게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수현아, 너는 한국인이야!” 대학원 합격소식을 부모님께 알려드렸을 때 아버지는 기뻐하시면서도 나에게 다른 방향을 제시하셨다.

 “지금껏 너는 인생에서 악셀만을 밟아왔어. 앞을 보면서, 빠른 속도로 갈 길을 가며 많은 것을 이루었지. 그렇지만 앞으로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들을 놓칠 수 있어. 군 생활은 그 중요한 경험들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야. 입대는 너의 선택이지만, 액셀에서 발을 잠시 떼어두고 창밖을 보며 아주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야.”

 머리로는 아버지의 조언이 이해가 되었지만, 가슴으로는 내 청춘의 2년을 바치는 것 같아서 입대가 내키지 않았다. 옆의 친구들과 동기들이 사회에서 멋진 직장이나 일을 할 때에 나는 입대를 한다면 상대적으로 뒤쳐질 것 같았다. 입대에 부정적이었던 생각을 바꿔주신 분은 학과 교수님이셨다.

 교수님께서 졸업 전, 마지막 면담에서 잊을 수 없는 조언을 하셨다. “개인이나 단체를 보호하는 변호사가 되기 이전에 나라부터 지켜야 하지 않을까?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도 수십 년간 변호사로 활동을 할 수 있지 않니? 나도 군 복무를 하면서 돈과 바꿀 수 없는 경험을 했어. 군에서 배우는 리더쉽,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봉사했다는 자부심... 그것들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야.”

 이 말을 듣고 고심 끝에 나는 졸업장을 들고 9월 3일 귀국했다. 며칠 후, 북한이 5차 핵실험을 단행했던 9월 9일에 신체검사를 받고 곧바로 입대날짜를 받았다.

 입대가 점점 다가올수록 없었던 두려움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미 군대를 다녀왔던 초등학교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서 군대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안해졌다. 어떤 친구들은 “왜 자원입대를 하냐?”는 질문부터 “나이 때문에 힘들거야” 라는 말도 했다. 친척들도 내가 적응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이방인 취급을 받지 않을지에 대한 걱정도 했다.

 이때 할아버지께서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아주셨다. “네가 특별한 성장기를 가진 만큼, 군에서의 경험들은 더 특별하게 느껴질 거야. 나는 네가 책임 맡은 바를 훌륭히 수행할 거라고 믿는다. 거기에서 얻는 경험은 변호사가 되었을 때, 그리고 힘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도움이 될 거야.”

 내 자신과 가족, 그리고 한국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는 2016년 10월 17일, 논산훈련소에 부모님과 함께 도착했다. 대학교를 부모님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다녀서 방학이 끝날 때 마다 작별인사를 드리는 것이 익숙지만, 그 날 아침만큼은 힘들었다.

 웃기게도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면서 배웅해주셨지만,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셨다. 부모님의 감정은 두 분의 상반된 반응만큼이나 복잡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걱정과 아쉬움을 부모님의 얼굴에서 볼 수 있었지만, 자랑스러움도 보았기 때문에 나는 씩씩하게 다른 입대자들과 연병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학교 4년 동안 공부에 매진하면서 몸 관리를 조금 소홀히 한 탓에 처음에 체력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기본적인 뜀걸음과 체력측정에서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걸 느끼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나도 그랬어. 그런데 지금은 잘 하잖아!” “오늘 40개를 하고, 내일 45개를 하고, 모레에 50개를 하자. 천천히, 무리 안하면서 다 할 수 있어.” 분대장들의 격려를 들으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내 몸의 한계가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3km 완주도 버겁던 나와 우리 분대는 차츰차츰 아침의 뜀걸음 속도도 높이면서 발도 맞춰갔다. 전에는 발이나 다리가 아파서 다 못 뛰었던 우리가 정신력으로 버텨가며 뛰는 거리를 점점 늘려갔다. 수료를 2주정도 앞두었을 때, 모두가 3km 완주하는 것을 보면서 다 같이 환호했다. 서로를 응원하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며 끈끈한 전우애가 무엇인지 생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분대원들과 함께 20km 행군이라는 마지막 관문에 도달했을 때 우리의 사기는 대단했다. 행군의 중간 지점을 통과하면서 힘들어 졌지만, 누군가가 힘든 기색을 보일 때 마다 다른 전우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파이팅을 외쳤다. 당당하게 우리는 모두 행군을 완주하며 골인하였다. 사회에서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분대원들과 함께 행군을 마치고 군장을 내려놓았을 때의 느낌은 사회에서 경험한 그 무엇보다도 값졌다.

 행군과 각개전투와 같은 몸이 힘든 훈련은 입대하기 전부터 내가 맞이할 거라고 예상을 했다.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훈련소는 육체적인 훈련에만 매진하는 곳이 아니었다. 제식훈련과 체력훈련이 끝난 후에 똑같은 치열함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학습을 했다.

 이미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많은 역사를 배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의 관점에서 본 독립이야기, 6.25전쟁, 그리고 북한과의 휴전은 내용과 느껴지는 감정 모두 달랐다.

 특히 6.25전쟁의 학도병들에 대해서 배웠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자원입대를 했다는 자존감 때문에 스스로를 과대평가 했었던것 같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나보다 10살이나 더 어렸을 학도병들이 목숨을 걸고 북한군들을 막은 역사를 보면서, 나의 희생은 선배전우들의 희생에 비교하는 것조차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신체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했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나의 자부심도 성장했다.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만끽하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또 다른 나라와 싸우면서 지킨 독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평생 기억하면서 살 것 같다.

 내게는 새로웠던 자신감과 애국심으로 무장한 채 지금 생활하고 있는 75사단으로 전입 왔다. 이등병 생활을 정말 열심히 할 각오와 함께 도착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과연 내가 맡은 일을 완벽하게 잘 할 수 있을까? 선임들이 나를 믿어줄까? 내 몸과 정신이 자대생활을 버텨낼 수 있을까? 이런 걱정들이 나를 조금은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이내 곧 없어졌다.

 나의 중대장님과 주임원사님은 나의 조금은 특별한 배경을 들으시고 내가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편하게 해 주셨다. 농구와 같은 공통적인 관심사로 대화를 이어나가셨고, 애로사항이 있으면 정말 언제든지 알려달라고 말씀해주셨다. 자대 전입 첫날부터 나의 선임들은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전화카드가 없던 내게 선뜻 자비로 부모님께 통화도 시켜주고, 훈련소에서 못 먹었던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아낌없이 사주셨다. 업무에서도 의사소통이 조금은 원활하지 못할 때에는 참을성을 가지고 지도를 해주셨다. 반면교사를 삼을 사람 없이 나는 모든 선임을 닮고 싶었다. 서로에게 힘을 주는 문화 덕에 매일 밤 편한 마음으로 잘 수 있었다.

 이제 입대한지 8개월 가까이 지났다. 후임들이 생긴 덕분에 군 생활 초기에 받았던 조언들을 내가 해주는 입장이 되어서 느낌이 새롭다. 그래도 나의 선임들은 전과같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면서 리더십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함께 일하고 있는 간부님들과 우리 중대를 챙겨주시는 중대장님, 주임원사님의 보살핌에서 우리 중대의 단결력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입대 전의 두려움과 자대 전입 전의 걱정은 과거가 되었다. 나는 조금씩 더 많은 책임을 부여 받으면서 내가 사회나 학교에서 얻기 힘들었을 성취감과 자신감에 큰 보람을 느끼며 군 생활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말이다. 이 모든 것을 얻어가면서 인간으로 성장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나는 감사한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입대를 고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사회에서 많은 공부와 다양한 경험을 했어도, 대한민국 군대에서 배울 수 있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경험은 그 무엇보다 특별하다고. 내 나라를 위해서 투자하는 21개월의 시간은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정신을 돌려준다고. 입대를 하던 날, 나는 대학원 진학을 뒤로 미루었다고 생각했지만 틀린 생각이었다. 군대라는 또 다른 학교를 선택한 것이었다.

(제75사단 208연대 본부중대 일병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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