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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㉒] 나를 따라다닌 수식어

Written by. 정유일   입력 : 2017-09-12 오전 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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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질병치료’ 부문 장려 당선작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현재 현역으로서 복무중인 저에게는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와도 되는 군대 와서 생고생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수식어가 저를 따라다니리라고는 2016년 11월 14일 논산 신병교육대 사열대에서 부모님과 함께 방송을 기다리며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인생에 갑작스런 굴곡이 많았습니다. 월드컵이 있었던 해인 2006년 12월,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아버지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홍콩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낯선 땅이었지만 잘 적응해 가던 저는 2015년 9월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한국에 귀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홍콩 영주권이 있었기에 저의 결정을 주변 사람들은 이해가 안간다는 눈초리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군대에 대한 로망과 대한민국 사회를 경험해 보고 싶었고 일생일대의 기회라 생각하며 신체검사를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2015년 9월 인천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역입대를 원해 15㎏을 감량하고 금주를 했던 저의 노력과는 반대로 극심한 난시를 이유로 4급, 즉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역 입대를 원했던 저에게는 거대한 넘을 수 없는 벽이 저의 갈 길을 가로막아버린 기분이었습니다. 신체검사를 받고, 병무청을 나오며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낙담한 기분을 전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격려해 주시며 그 길로 아버지와 함께 안과를 찾았습니다.

 의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의사는 방법이 있다고 했고, 2주후 저는 라섹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2월 저는 재신체검사를 받게 되었고 현역판정을 받아 입대할 수 있었습니다. 11월 14일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신 아버지, 홍콩에서 귀국하신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저는 사열대에서 연병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행사 후 저는 입소대로 이동하였습니다. 입대 전 복잡한 마음에 잠못 이뤘던 밤들과 달리, 입소대에서의 밤은 빠르고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옆자리 동기들과 친해지지도 못한 채 입소대에서 받은 의류대를 들고 훈련소로 이동하였습니다. 훈련소는 입소대보다 신식건물에 더 넓었습니다. 훈련소에서의 첫날밤 저는 불침번을 섰고, 그러면서 군대에 온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1분 간격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하게 되고 시간은 멈춘것처럼 느리게 흘러갔습니다. 시계보기를 반복하는 사이 불침번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불침번이 끝나고 침상에서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기상나팔소리에 시작되는 6시 기상은 사회에서 늘상 9시 일어나는 저에겐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훈련소에서 제일 처음 배우게 된 이동제식은 너무,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으며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저의 입맛에 식사는 한없이 맛없게만 느껴졌습니다. 훈련소 동기들과는 서먹서먹하게 지내는 나날 등이 이어졌습니다. 이 당시에는 모든 것을 낯설고 불편하게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다 아버지와 주고 받는 편지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훈련소 특성상 남는 시간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아버지께 편지로 현재 겪고 있는 고민 등을 얘기하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부정적인 자신을 마주보고 이왕 온거 더 열심히, 더 긍정적으로 훈련소 생활을 하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을 마주하자 문제점들이 속속 보이게 되었고 모든 교육을 배움의 기회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동기들과는 더 많이 친해지고, 훈련소 병과 교육들은 인생에 느끼지 못했던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화생방을 통해서는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사격훈련에서는 표적을 맞추기 위해 극도의 집중력을, 체력검정에서는 내 자신의 체력한계점을 절실히 느꼈으며 행군에서는 참고 걸어야만 하는 인내를 배웠습니다. 훈련소 마지막 밤, 동기들은 초반 저에대해 ‘왜 굳이 군대에 와서 저렇게...’ 라는 시선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저의 태도변화에 맞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했습니다.

 훈련소 수료 후 저는 공병이란 보직을 받고 1101 공병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자대에서 저는 선임분들의 시선이 두려워 재검에 대한 사실을 숨겼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잘못할 때마다 내 자신을 보기보다 저에 대한 수식어 ‘홍콩 영주권자’, ‘재검’, ‘군대 안 와도 되는 사람’ 이라고 판된되는게 싫어서 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의 의도와는 반대로 선임분들은 저의 재검 사실 등을 알게되었고, 제가 힘들거나 잘못을 할 때마다 수식어에 빚대어 얘기하는 것처럼 피해의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왜 군대와서 고생이냐는 질문이 괴로울 정도로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훈련소 때의 경험을 되살려 단면적으로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것을 피하고 그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동기들보다 더 먼저, 열심히, 빠르게 움직이고자 했습니다. 또한 그 질문이 다시 저를 향할때는 ‘저는 군대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고 그 결과 사람들은 저를 편견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체로 이해해 주었습니다. 물론 군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 갈등, 고통의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경을 뛰어 넘게 옆에서 도와주는 선임, 동기, 간부님들이 있습니다. 되돌아보는 저의 군생활은 제가 군대를 오지 못했다면 겪지 못했을 하나하나가 귀중한 추억입니다. 찾고자 하면 길이 있듯이 재검은 저에게 군입대, 군생활이라는 하나의 가능성을 더 열어 주었습니다. 영주권자라는 수식어는 저의 두려움에서 비롯되었으며, 제가 만든 수식어를 깨부수며 군생활의 진정한 목표와 의미가 보이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후배 전우님들이 군대를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 한걸음 전진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작은 소망입니다.

(1101공병단 제119공병대대 공병2중대 일병 정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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