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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②] 부서진 색안경: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보다.

Written by. 천종현   입력 : 2017-09-14 오전 9: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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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우수 글임. (편집자 주)

특별했던 영화관람

 지난해 겨울. 광주시내 한 영화관. 화면가득 온갖 동물의 모습이 비춰졌다. 영화 제목 그대로 ‘신비한 동물사전’이 펼쳐졌다. 크고 작은 동물들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실감나게 그려졌다. 하지만 난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동행한 한 학생에게 온 신경이 가 있었다. 그 학생은 신비한 동물들에 빠져 탄성을 질렀다. 그의 흥분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특히 영상을 볼 때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급기야 그는 고함을 질렀다. 화면 속 동물이 쓰러지는 순간 영화관 음향보다 더 큰 그의 비명이 울렸다. 그 때 뒷좌석에서 “뭐야, 왜 그래” 라며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특수학생입니다”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사과를 했다. 장애학생활동지원 사회복무요원인 나의 신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애학생 10여명과 이들을 돌보는 특수교사, 일반 관람객이 다함께 영화를 끝까지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짜증 섞인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뭣 하러 영화관까지 와서 난리야….” 그 뒤로 어떻게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다. 함께 간 특수 선생님께서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해준 것 같다. 퇴근 후에도 영화를 보며 좋아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눈가에 아른거렸다.

 인터넷을 뒤적이다 ‘베리어 프리’라는 장애인 전용 영화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체적 문제로 영화를 보는데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 한다. 그런 곳이 많이 생겨서 신체적 문제뿐만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툰 학생들을 위한 상영관도 만들어진다면 그들도 마음 편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동안 떨칠 수 없었다. 동시에, 영화관에서 방해된다며 나무라던 그 아저씨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사회복무요원 이전의 나는 그 영화관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지난날의 나

장애와 관련된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던 내게, 장애는 나와는 무관한, 먼 나라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이었다. 오래전부터 쓰고 있었던 나의 색안경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애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었다.

 “종현아 너는 군대 어디로 지원할거야?” “야 해병대는 가줘야 제 맛 아니겠냐?” 20살. 대학교 1학년. 군대는 우리들에게 항상 나오는 대화 주제 중 하나였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 날. 정해진 순서대로 신체검사를 받던 나는 정형외과를 무심코 지나치다 ‘평발이신 분은 말씀해 주세요.’ 라는 팻말을 보고 돌아섰다. 검사결과는 4급. 사회복무요원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너무 놀랐었다. 주변의 반응은 부러움부터 냉소까지 다양했다. 내게 있어서 사회복무요원은 기껏해야 공공기관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는 사람들이었다. 군대는 힘든 곳으로 다녀와야만 멋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주변사람들에게도 부끄러웠었다. 기초 군사 훈련을 마치고 어떻게 복무해야 할지 별다른 계획 없이 개나리가 필 무렵 진남중학교에서 복무하게 된다. 역할은 장애학생활동지원. 교육지원청에서 진남중학교로 배정되어 가는 길, 막막했다. 장애와 관련된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던 내게, 장애는 나와는 무관한, 먼 나라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이었다. 오래전부터 쓰고 있었던 나의 색안경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애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었다.

학습 도움실에서의 나

 진남중학교에는 ‘학습도움실’이라는 곳이 있다. 특수 학생들은 평소에는 일반 또래학생들과 수업과 생활을 같이하다가 개인의 특성에 따라서 도움실에서 별도의 활동을 한다. 학교 도움실의 일정에 따라 체험활동을 가거나 특별활동도 하곤 한다. 그곳에서 뇌 병변으로 인해 걷는데 불편함이 있어 휠체어에 의지하는 학생이 수업 등을 위해 이동할 때 동행하여 도와준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는 업어 줘야 한다. 또, 다른 학생들은 생활하는데 생기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곤 한다. 가령 화장실을 가라고 알려줘야 하는 학생이 있다. 이동수업시간에 이동여부를 알려주어야 하는 학생과 식사시간에 음식에 데거나 교복에 흘리지 않도록 주의를 주어야 하는 학생도 있다. 그렇게 아이들과 부대끼며 진남중학교에서의 나의 생활이 시작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땐 시계만 보였다.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낯설었다. 아이들에게도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아이들이 나를 부르면 귀찮았다. 필요한 업무 외에는 나서기 싫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열었다. “종현 선생님!” “도와주는 선생님!”하며 나를 보고 웃으면서 반기고 도움을 청하곤 했다. 내가 생각했던 장애학생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해맑은 모습에서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일반 학생들도 그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냈다. 이곳에서 그 아이들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 나의 시선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자 아이들 이름이 하나, 둘 들려왔다. 다음엔 얼굴이 그려졌다. 아이들의 개성이 파악되고 관심이 깊어졌다. 한명 한명이 예쁘고 귀여웠다. 다른 세상 사람으로 여겼던 아이들이 가슴속에 따뜻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도움이 되고 있는 나

 화장실을 가라고 말을 해줘야 가는 학생이 한명 있다. 그 학생은 바지에 소변을 보곤 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나름 요령으로 항상 쉬는 시간마다 “쉬 마려워 안 마려워?”를 물어보고 쉬가 마려우면 “나 쉬 마려워!” 라고 대답하게 하면서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보게끔 했다. 그런데 생각이 짧았었다. 그 학생이 큰 볼일을 보고 싶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했던 것이다.

 소변은 항상 물어봐주니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변은 내가 묻질 않으니 참다가 바지에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상태로 계속 수업을 듣고 생활하다가 도움실에 와서야 선생님과 내가 냄새로 알게 되는 그런 상황들이 반복됐다. 처음엔 그 학생의 속옷을 빨면서 비위도 상하고 힘들었다. 왜 그러냐며 꾸짖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본인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데 얼마나 찝찝하고 창피할까? 내가 이런 부분을 돕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 학생이 화장실을 스스로 갈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 내가 편하기 위해 그를 혼낸 게 아닌가 싶어 반성하였다. 혼내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고 달래주었다. 이해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뭐가 마려운지 스스로 말하게끔 함께 연습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 학생은 화장실을 혼자 갈 수 있게 됐다. 그 아이는 한동안 화장실을 갈 때 마다 “00이 이제 종현선생님이 도와줘서 화장실 잘 갈 수 있어요. 똥마려워!” 라고 소리치며 달려갔다. 비로소 ‘도움실’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내게 찾아온 변화

 미용실을 갔을 때였다. 미용사와 얘기를 나누다가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던 참이었다. “그러게요. 참 그렇게 안 태어난 게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그렇게는 불행해서 절대 못살 것 같아요.” 집에 오는 길. 기분이 이상했다. 왜 이상하지 싶었다. 예전이었으면 그 말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떠올랐다. 불행해보이지 않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면서 보고 느낀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에 종이접기를 하는 날이면 저마다 멋지게 종이로 동물을 접어 마중 나온 부모님께 자랑하곤 하는 아이들을 본다. 부모님과 아이들은 종이 동물을 치켜들고 환하게 웃는다. 소소한 것에 행복해 하는 그들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편견일 뿐이었다.

 모두 저마다의 힘듦과 불편은 가지고 있다. 부모님이 사이가 안 좋을 수도 있고 소심한 성격 혹은 대인관계가 좋지 않은 점이 고충일 수 있다. 장애 역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수많은 불편들 중 하나일 뿐이다. 단지 가시적일뿐이다. 눈에 보이는 불편이라는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연민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색안경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니다. 거창하지도 않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이다.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다. 덜 힘들다고 덜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복무요원. 이제는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 되었다. 나의 위치에서도 얼마든지 가치 있게 존재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먼저 사회복무요원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이 경험을 통해 공공장소에 휠체어 경사로가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보게 됐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보게 돼도 인상이 찌푸려지지 않는다. 허송세월이 아니었다. 이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바뀔 수 있었을까 가끔 스스로 묻곤 한다. 처음에는 24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할 것 같았다. 그저 형식적으로 출퇴근만 하다 지나갈 시간이었다. 그러나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에도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사회복무요원과 장애인을 바라보던 나의 색안경은 완전히 부서졌다.

사두용미

 특별활동. 요리시간. 칼질이 서툰 아이들이 부침개를 만들기 위해 양파를 손질하고 있었다. 칼을 들고 떨고 있는 것 같은 손이 불안하게만 보였다. “선생님이 해줄게 이리 줘봐.” “아니에요. 00이가 혼자 해볼 거야. 그래야 나중에 집에서 할 수 있죠.” 조금 위험해보이고 어려워 보이면 대신 해주려던 내가 아차 싶었던 순간이다. 지금까지 누군가 부탁을 하거나 힘겨운 상황이면 항상 직접 해결해주려던 나였다. 그곳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리던 내가 이제는 오히려 그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시작은 형편없었다. 20대만의 열정과 의욕도 없었다. 막연하게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얻는 것이 많아지고 있다. 장애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의 편견들이 깨지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종현 선생님!”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보람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사회복무요원이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종현 선생님”은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푸르게 빛날 것이다.(konas)

천종현 / 진남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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