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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⑩] 나를 일깨워준 다섯 장애우 아이들

Written by. 양동혁   입력 : 2017-09-18 오전 9: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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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20대 초반, 병무청에서 받은 신검 4급,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당혹스러움 반, 기쁨 반으로 뒤섞인 감정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전 ‘사회복무요원’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저 역시 사회복무요원하면 주민센터나 시청 사무실에 앉아서 시간만 떼우다 소집해제할 수 있다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주변 친구들은 현역으로 입대하고 전 2년간의 긴 복무기간 동안 게임을 하며 지낼지, 드라마 시리즈를 정주행하며 보낼지 나름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 고민들은 복무 첫날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학교에서 만난 다섯 아이들

 제가 복무할 곳은 혜당학교. 원래 바라던 주민센터나 시청은 아니지만 다행이네요! 그래도 학교니깐. 기껏해야 문서작업에 잡일만 하면 될 테니까요. 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일반학교가 아니라 특수학교네요. 뭐 괜찮습니다. 설마 사회복무요원이 장애우를 직접 돌보겠습니까? 일반학교보다 약간 소란스러울 뿐이지 그래도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에서 편히 근무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저기 멀리 담당 선생님이 걸어오십니다. 제 자리는 어디일까요? 교무실? 행정실? 중학 3학년 2반이라네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아이들이 다섯 명이 보입니다. 큰일입니다. 우려했던 장애우 돌보기가 주 업무였습니다. 일반 아이들 돌보는 것도 싫어하는데 장애우라니... 맙소사!

 2년간 요양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왔던 꿀 복무지가 불 복무지였다는 것을 깨닫자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인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저를 이리저리 찔러보는 아이들 탓에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찬찬히 둘러봅니다. 어색한 걸음걸이와 입 주위 침 자국, 괴성까지 지르는 아이들. 평소에도 장애인은 복지적 차원에서 보호되고 있을 뿐, 사회적 효용 측면에선 마이너스라고 생각해 온 저였기에 좋게 보려 노력해도 도통 눈에 차질 않습니다. 복무기간 동안 이 녀석들과 친해질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이, 쉴 새 없이 교실을 탈출하려 뛰쳐나가는 ○○이,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이. 그나마 학습이 가능한 이 반의 에이스 ○○와 제일 힘도 세고 떼쓰기도 심한 ○○이까지, 겨우 5명의 아이들이지만 각자의 개성과 행동이 너무나 뚜렷해 하나로 뭉치기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밥 먹는 것까지 옆에서 학생별 맞춤지도를 해야 하니 쉬는 시간은 꿈도 못 꾸겠죠. 첫 일주일간은 밥도 잘 못 먹었습니다. 비위가 약한 탓에 밥 먹는 도중 일부 소화기관이 약한 아이들이 토하는 모습을 보면 그날 저의 식사는 그 시간 부로 끝나버렸습니다. 퇴근 후 저녁을 억지로 먹긴 했지만 항상 술을 마시며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던 기억이 납니다.

내 방식대로 아이들을 대하다

 누군가가 말했었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3개월 쯤 지나니 슬슬 학교 돌아가는 시스템을 알겠고, 아이들 특성도 파악이 됩니다. 하지만 장애우에 대한 저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회의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이 아이들은 혼자서 뭐 하나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냥 본능에만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아이들이 실수를 하면 신경질적으로 다그치고 화풀이를 하였습니다. 아이들과 가까워지기는 커녕 감정의 골이 깊어만 갔습니다. 인위적으로 무서운 분위기를 만들고, 아이들이 긴장한 채로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면서 얌전해지면, 그게 바로 교육이고 바로잡혀 가는 과정이라 믿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저희 반 다섯 명의 학생 중 ○○이는 유독 다루기 힘든 아이였습니다. 어찌나 고집이 세고 힘도 센지 키가 제 가슴팍까지 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덩치임에도 모두를 쩔쩔매게 만들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못하면 울어버리고 마는데 그 소리가 학교 건물을 울릴 정도로 서럽게 웁니다. ○○이만 이 반에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아쉬워하고 간혹 오늘 ○○이가 아파서 학교에 등교를 안 하길 빌기도 했습니다. ○○를 싫어한 만큼 거칠게 다뤘습니다.

어린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다

 어느 날 하루는 ○○이가 종일 떼를 쓰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담임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잠시 타임아웃을 시키려고 놀이치료실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 가면 무서워할 거라 생각하고 얌전해지길 기대하며 한참을 씩씩거리며 노려보는데 아니 이게 무슨 반응인가요? 뜬금없이 ‘헤..’하며 활짝 웃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양팔을 벌려 제품에 안겼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혼내기는 돌발적인 애교로 인해 일단락 돼버렸지만 이 사건은 이후 남은 기간의 복무 태도를 통째로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를 혼내기에 실패(?)한 그 날 집에 와서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명 제가 생각한 대로 아이들이 본능적으로만 반응한다면 절 겁내고 피하는 게 이치에 맞는 행동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가 보여준 행동은 달랐습니다.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니 ○○이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말을 안 듣거나 실수를 했을 때 악을 쓰며 호되게 다그쳤지만 먼저 와서 인사하고 방긋 웃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미워하고 계속 밀어낸 건 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은 한걸음 한걸음 제게 다가왔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생활지도란 이름하에 이토록 착한 아이들에게 그동안 쌀쌀맞게 굴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그제야 지난 몇 달 간의 제 행동이 잘못된 방향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흘리는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 아닌 참회의 눈물이 되어야 한다며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겠다고.

 그 이후로 아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대했습니다. 참 신기한 게 소리치고 혼내던 시절보다 이해하고 칭찬하는 방식에 아이들이 더 잘 따라줬습니다. 혼내며 감정 소모하던 게 사라지니 스트레스도 사라졌고요. 이제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우는 본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하나의 인격체라는 걸요. 비록 어딘가 부족해도 아이들은 본능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졌습니다. 아마도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은연중에 표현하는 감사함과 사랑에 감동받아 버틸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얼마 남지 않은 천사들과의 시간

 근무 첫날 중학 3학년 2반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없이 막막해 보였던 2년의 복무기간은 벌써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사회복무요원 선생님!’ 하며 침 묻은 손을 내뻗는 아이들과 마주하는 이 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게 느껴집니다. ‘사회복무요원 선생님!’ 선생님이라면 가르침을 줘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이곳 아이들에게 배워갑니다.

 2년간의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받은 수업은 제가 살아갈 앞으로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제게 있어 혜당학교는 단순히 근무지가 아닌 또 다른 가르침을 얻은 ‘학교’ 그 자체였으며 이곳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저기 멀리서 우리 다섯 천사들이 뛰어오네요. 소집해제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고 챙겨주기 위해 이만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양동혁(구미 혜당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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