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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⑰] 편백나무 향기

Written by. 김영훈   입력 : 2017-09-21 오전 9: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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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편백나무의 향기가 지속되도록 하는 방법을 아시나요? 매일 물을 뿌려주거나 물걸레질을 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희 복지관에 새롭게 생긴 조그만 도서공간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은 오늘도 아침, 저녁으로 물을 뿌리거나 물걸레질을 하면서, 편백나무 향기로 도서공간을 이용하는 장애아동들과 보호자분들에게 숲속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의무와 의무가 만나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의무감으로 해왔던 것 같습니다. 병역의 의무는 특히 제게 큰 의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병역판정검사에서 4급을 받아 대체복무제도 중 하나인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의무가 결코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배정받은 근무지는 당진시장애인복지관이었습니다.

 당진시장애인복지관은 당진시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복지시설입니다. 당진시 종합복지타운 내에 위치한 장애인복지관은 당진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때때로 시청을 지나가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역시 의무였습니다.

 헌법에 ‘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고 쓰여 있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찾아보니 헌법34조입니다. 복지는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것 중  하나이다.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와 그다지 관계는 없는 것 같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다시 찾아보니 병역의 의무도 헌법39조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의무와 의무가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의무라는 말 속에는 왠지 모를 소극성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까지의 짧은 복무기간 동안 그런 저의 소극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회복지는 당연하지 않은 노력들로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이와 제 소극성이 대비가 되면서, 그저 의무감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냄새 없는 페인트

 복지관에는 남자 사회복지사분들이 비교적 적습니다. 그래서인지 복지관에 힘을 써야 하는 행사나 일이 있을 경우에는 남자 국장님과 남자 팀장님, 남자 사회복지사분들, 그리고 사회복무요원들이 앞장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상과는 다르게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여자 사회복지사분들과 여자 팀장님들이 옆에서 삽을 들고 계시고는 합니다.

 묘목을 옮겨 심어야 했던 날에도 그랬습니다. 옆에서 여자 팀장님들이 열심히 삽질을 하는데 저는 손바닥이 따갑고 숨이 차서 헉헉대고 있으니‘이래서 내가 병역판정검사 4급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일하는 내내 몸은 힘든데 왜 이리 시간은 느리게 갈까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날에는 페인트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호출되어 내려가니 1층에서 근무하시는 치료사선생님들과 사회복지사분들, 팀장님들이 실내놀이터의 미끄럼틀을 열심히 해체하는 중이었습니다. 사람 수 만큼 드라이버가 없어서인지 다들 동전을 꺼내서 미끄럼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저와 다른 사회복무요원들도 동전을 꺼내고 없는 사람은 서로 빌려가며 미끄럼틀을 해체하고 나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 작업이 페인트칠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사회복무요원 중에서는 저만이. 그리고 팀장님들, 국장님과 함께 페인트 통을 들고 모여, 미끄럼틀이 있던 자리에 보기 흉한 찌든 벽면을 페인트로 덮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독 그 한 주가 삽질에 여러 행사가 겹친 탓인지 몸이 조금은 고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머릿속을 비우고 그저 페인트칠에 전념했습니다. 의무감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팀장님, 국장님과 보조를 맞춰서 칠을 하기 위해 신문지로 벽이 아닌 다른 곳에 페인트가 묻지 않도록 꼼꼼하게 채우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 특이한 점을 깨달았습니다.

 페인트를 열심히 칠하고 있는데도 페인트에서 특유의 화학약품 같은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페인트 통을 자세히 보니 친환경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페인트가 잘 마르지 않아서 칠을 할 때마다 자꾸 밀려나서 고생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국장님은 페인트가 좋다고 계속 칭찬을 하였습니다.

 페인트칠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와서 수업이 시작하기 전 잠깐 동안 기다리며 페인트칠을 구경 하였습니다. 그제야 이곳이 아이들 공간이라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근무하는 3층에서는 아이들을 그다지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장애치료를 받는 아이들을 위해서 복지관에서 무엇인가를 하는가 보구나, 하고 막연히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사회복무요원 담당인 팀장님이 나중에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제 상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의무가 아닌데도

 실내놀이터의 미끄럼틀은 늘 골칫거리였다고 합니다. 장애아동들의 안전사고가 몇 번씩이나 있어서 복지관에서는 놀이터를 도서공간으로 재구성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성디스플레이의 사회공헌 활동 중 하나인 ‘봄드림’이라는 도서 지원 사업에 장애인복지관이 응모하고 당선이 되어, 도서를 지원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로서도 쉽게 이해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유한양행 대표이신 유일한 박사, 그리고 기업가들의 기부나 사회공헌 미담을 들어보곤 했습니다. 기업에서 사회복지시설에 후원을 한다는 것은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도서공간은 책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책이 있다면 책을 정리할 수 있는 책꽂이와 아늑한 공간들이 있어야 진정한 도서공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도서공간을 만들기 위해 사회복지사이신 팀장님은 지역사회 내에서 후원자를 발굴하고 관리하여 도서공간 인테리어 지원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원해 주신 분은 다름 아닌 현대자동차 당진지점에 근무하는 분으로서 작년 한 해 동안 300여대에 가까운 차를 판매하여 전국에서 3위의 영광을 받고, 무엇보다 늘 나눔을 실천하는 분으로 [차량1대당 1만원 기부하기]를 계획하고 실천하신 분입니다. 이러한 소식으로 책꽂이를 마련하기 위해 의뢰한 공방에서는 더불어 후원하기에 앞섰습니다.

 어떻게 하였냐구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친환경 목재인 편백나무로 책꽂이 및 수납의자 등을 제작하여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아동 및 보호자들에게 숲 속 같은 도서공간을 조성하였던 것입니다. 멍하니 ‘해야 하니까’ 페인트칠을 하던 저에게는 조금은 벅찬 이야기였습니다.

 퇴근길에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평소 제게 있어서 후원이나 사회공헌, 사회복지와 같은 말들은 저와는 거리가 있는 말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사회에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와 부모님이 낸 세금으로 국가가 알아서 사회복지를 실현하고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 이런 믿음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습니다.

 복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지만 사회복지사 분들과 같은 공간에서 복무하며 느낀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사회복지사 분들은 어지간한 일로는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사회복지 실현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장에서 장애인복지관 이용자분들과 직접 마주하며 일하는 사회복지사분들과 기업과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관심, 그리고 참여가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수많은 복지시설들이 제가 일하는 이곳처럼 운영이 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몇 일간 빨리 가지 않는 시계 탓만 했던 제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팀장님께 들었던 탁구처럼 이어지는 이 도서공간 후원 이야기는 그로부터 며칠 후, 복지관에 새로운 사회복무요원이 들어옴과 동시에 제 눈앞에 결과물로 나타났습니다.

편백나무 향기

 페인트칠을 끝내고 퇴근길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어치료사 선생님이 지나가시면서 제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페인트칠이 예쁘게 잘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는 장애인복지관에 새로 사회복무요원이 한 분 오셨습니다. 그 분은 새로 생긴 도서공간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사정상 자리를 비울 경우 제가 업무를 대신 할 수 있도록 인수인계를 지시 받아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3층에서 근무하는 저로서는 페인트칠 이후로 그곳에 처음 가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새로 오신 분께 인사를 건네고 바로 벽을 살펴봤습니다.

 잘 마르지 않아 애를 먹었던 그 페인트는 모두 단단하게 말라있었습니다. 언어치료사 선생님 말씀대로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페인트칠을 한 벽 전체가 스티커로 꾸며져 있었고, 편백나무 책꽂이가 향을 풍기면서 벽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도서공간 안에는 제 키의 반도 안 되어 보이는 조그만 아이가 책을 읽다가 막 나와서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의무’라는 어찌 보면 소극적일 수 있는 태도로 복무를 하다 보니, 생각치도 못하게 탁구처럼 이어졌던 이 조그만 도서공간을 만들기 위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 제가 참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총총 도서공간을 빠져나오는 아이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소극적인 태도로 임했으면서 뿌듯한 감정을 느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 분은 편백나무 냄새가 나요.”
 어느 사회복지사가 새로 온 사회복무요원을 두고 한 말입니다. 몇몇 사회복지사분들과 사회복무요원들이 함께 하던 식사 도중에 나온 이야기가 이어지다보니 결국 이 말이 제 입 밖으로 나와 버렸습니다.
“거기 제가 페인트칠 했어요.”

 무엇이 자랑이라고 떠드는 걸까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떠드는 스스로가 한심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그 도서공간에 저도 일정부분 참여했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고작 몇 시간 페인트칠한 것이 전부이지만 뿌듯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제가 복무하는 곳이 사회복지기관이고, 제가 사회복무요원이기 때문에, 저의 소극적인 태도로도 도서공간을 만드는 과정, 사회에 기여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복무가 끝나고 소집해제가 된 이후에는 사회복지사 분들처럼, 도서공간에 후원을 해주신 삼성디스플레이, 현대자동차 직원분들처럼, 아이들을 위해서 더 좋은 목재를 사용해서 책꽂이를 만들어주신 공방 사장님처럼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 없이는 아마도 제가 느꼈던 이 뿌듯함은 평생 느낄 수 없는 감정일 것입니다.

  복무기간이 끝나고 소집해제가 되고서도 당연하게 느끼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깨달음, ‘의무일 뿐’이라는 저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한 반성, 그리고 제가 처음 느꼈던 이 뿌듯했던 감정만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김영훈(당진시장애인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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