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⑱] 스승이 되어준 아이들

Written by. 이원효   입력 : 2017-09-21 오전 9:49:57
공유:
소셜댓글 : 0
twitter facebook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선생으로 와서, 아이들에게 배우다

 나는 아이들이 싫었다. 2014년에 대학에 들어간 나는 전형적인 공대생이었다.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하고, 행동에 앞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있는 동안, 동아리에서는 누구보다 강력한 회장이었고, 일반생물학 과목의 튜터로서는 학우들에게 최고의 선배였다. 그런 나에게 가장 어려운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어린이들이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은 나에게 큰 어려움이었다. 아이들은 단순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 마음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며, 싫어하는 사람에겐 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불편할지 고민하지 않으며, 어리기에 자신의 행동이 낳는 결과를 잘 알지 못하고, 책임을 질 능력도 부족하다.

 나는 오랫동안 공부하여왔고,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대부분이 전공지식이었고, 덕분에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에 쉬운 말을 찾아 설명하는 것 역시 언제부턴가 어려워졌다. 그런 나는 편평족으로 인해 병역판정등위 4급 판정을 받게 되었고,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병역의 의무가 지워졌다. 2년간의 재충전 시간이라 생각하고 복무지를 찾아보니, 통근이 가능한 곳은 대부분 아동시설이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운 나에게 아동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것이 과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렇게, 나의 큰 도전이 시작되었다.

 희망 지역 아동센터에 배정된 첫 날, 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시끄럽고 산만한 아이들의 모습, 내가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내가 배워온 것들, 공부해온 것들을 전해주는 것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고 공부하기 위해 앉아있는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는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대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고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분명 나를 통해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차피 이곳에서 2년동안 일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나 역시 아이들과 같이 어린 시절을 보내온 선배이다. 그렇기에 분명히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은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진 않았다. 센터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 앉으면 5분도 지나지 않아 돌아다니는 아이도 있었고, 한 문제를 가지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말을 걸면 입을 닫고 엎드린 채 퇴근시간이 되도록 가만히 있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하면 아이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였고, 잘못을 알려주면 그 잘못을 다시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나에게 아이들은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어려운 대상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쳐가던 중 직무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과인 나에게 직무교육에서 듣는 것들은 너무 생소했다. 아이들의 발달과정, 심리를 가르쳐주었고 선생님들의 경험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이젠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때 강사님께 들은 말들 중엔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말이 있었다. 매일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들에게, ‘오토바이를 타는 건 상관없다, 그렇지만 안전하게 타라’라고 하시며 헬멧을 씌워주셨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단체의 보스였고 선배였고 튜터였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동료들, 후배들, 튜티들에게 많은 것을 지시하고 앞서 방향을 가르쳐줄 뿐, 그들을 이해한 적은 없었다. 나는 그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리더는 아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알았다. 교육 기간이 끝나고 생활복지사 선생님을 통해 아이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 중 한분과 사별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이 바쁘셔서 조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었으며, 어떤 아이들은 다문화가정이었고, 어떤 아이들은 한글조차 배우지 못했을 정도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나니 아이들의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남은 건 그런 아이들의 마음에 어떻게 다가가고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그 방법이었다. 이를 알기 위해 도서관에서 아동심리학에 대한 책들을 빌려 근무시간 이후에 조금씩 읽어보았고, 내가 어릴 때엔 어땠는지, 나를 어떻게 가르쳐 왔는지, 어머니와 상담도 해보았다.

 아이들의 입장에 공감해주는 것,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주고 스스로 생각하게 도와주는 것,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것. 내가 알아보며 깨달은 5가지 방법들이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 형, 오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제일 먼저 아이들과 공감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해 보았다. 그동안 깨닫지 못했지만,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학교의 이야기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오늘은 누가 누구를 때려서 혼났다, 오늘은 학교에서 뭘 만들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그동안 관심 없이 흘려보내온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는 의도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들어 가져온 묘하게 생긴 물건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에 대한 자부심이었고 아이들이 하는 말들은 선생님들과 한마디 더 하면서 친해지려는 노력이었다. 그동안 노력해온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조금 자신이 붙었다. 그렇게 조금씩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아이들도 점점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주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도와주며 기다려주어 보았다. 이것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온 학습시간에 가장 많이 드러났다. 그동안 아이들이 오랫동안 문제를 풀지 않고 있으면 옆에 가서 문제를 함께 풀어주어 빠르게 학습을 마치고 다음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조금 여유를 갖고,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아이들이 종종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면 조금 들어주다가 ‘자 그래서 그 문제 어떻게 푸는 거야?’ 하고 되물어 주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귀찮아했고 바로 알려주지 않는 나의 모습에 답답하고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은 잡담을 하다가도 다시 공부를 할 줄 알게 되었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게 되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고 그래도 모르는 것은 나에게 물어보고 결국 해결해내는 스스로 노력해서 해결하는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몇몇 아이들은 어려워하는 모습에 먼저 알려주려고 다가가면 ‘아 쌤, 제가 해볼거예요!’ 라며 웃곤 했다.

 나중에 그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첨엔 귀찮아서 맨날 물어봤는데, 혼자 해내다 보니까 어려운 문제 풀고 나면 기분이 좋아요!’ 라고 대답했다. 거기에 ‘그래도 어려운건 다 물어볼 거니까 이제 선생님한테 물어보는건 진~짜 어려울거예요!’ 라고 으름장도 놓았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은 좋은 선생님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더 헌신해 보았다. 아이들은 뛰어놀고, 뛰어놀다보면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 있는 동안 응급처치 2급 과정을 수료했던 경험을 발판 삼아, 아이들의 응급처치를 해주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에는 발목을 삔 아이에게 붕대를 감아주었다. 붕대를 감고 집에 간 아이는 다음날이 되도록 그 붕대를 풀지 않았고, 또 붕대를 감아달라고 했다.

 그렇게 며칠동안 매일 붕대를 감아달라고 다가온 아이는, 문제를 함께 풀어주려고 하면 엎드리고 책을 찢곤 하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이제 학교가 끝나면 센터로 달려오고, 제일 먼저 책을 꺼내서 공부하는 아이가 되었다. 비록 풀어내는 문제는 별로 없지만, 모르는 것이 있다고 먼저 말을 꺼내고, 문제를 함께 풀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또, 우리 센터에는 입이 험하고, 힘이 센 아이가 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절뚝거리며 센터에 왔고, 달려가서 무슨일이냐고 물어보니, ‘발에 가시가 박혔는데 안빠져요!’라고 눈물을 흘렸다. 가시를 빼주기 위해서 핀셋을 들었더니 무섭다며 더 우는 모습에, ‘이걸로 선생님이 가시 빼주면, 이제 안아플 수 있어! 용기가 생기면 얘기하렴.’ 하고 기다려주니, 이내 ‘선생님, 저 해볼게요!’라며 다가왔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결국 가시를 빼낼 수 있었고 이제는 욕을 하다가도 나를 보면 멈추며 화가 나도 한참을 참다가 이야기해주는 참을성 있는 아이가 되었다.

 지금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24개월도 이제는 8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아이들은 1살 더 자랐다. ‘센터의 아이들’은 이제 ‘우리 아이들’이  되었고, 내가 연가나 병가로 결근하게 되면 아이들이 나를 찾고, 나도 결석한 아이들 알고 찾는다. 어떤 아이들은 공부가 끝나고 나서도 내 옆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으며 놀이터에서 놀다가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나를 부른다.

 처음 왔을 때보다 조금 더 귀찮아졌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은 나를 통해 배우지만 나는 아이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는 상대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상대를 기다려줄 수 있고, 상대에게 공감해줄 수 있다. 나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정되어 아이들에게 선생으로서 일해 왔지만 아이들은 나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나에게 스승이 되어준 아이들에게 고맙고 아이들에게 나는 고마운 스승이 되고 싶다.

 글을 쓰는 오늘은, 내가 처음 맡았던 1학년 아이, 지금은 2학년이 된 아이의 생일이다. 누나는 준거집단 활동으로 놀러가고 아버지는 바쁘셔서 혼자 생일을 보내게 해서 미안하다는 누나의 말이 있어서 조금 걱정했던 아이이다. 오늘 빵집에 들렀더니 누나와 어머니와 함께 케익을 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을 가지며 오늘도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생일 축하한다’
‘어,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야, 선생님이 너희에 대해 모르는게 어디 있니?’
기뻐하는 호진이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뻐진다.

이원효 / 희망지역아동센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인쇄하기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17.12.14 목요일
핫클릭 뉴스 더보기
포토 & 동영상 더보기
쓴소리/단소리 더보기
북한 김정은의 친필 명령서
얼마 전에JTBC 회장직을 그만 두신 분이'북한이 .. 
네티즌칼럼 더보기
문정권, 중국과 손잡고 북핵..
문정권, 중국과 손잡고 북핵 폐기막는 전쟁 유발원흉이.. 
깜짝뉴스 더보기
日 야쿠자도 고령화…50대이상 조직원 40% 넘어·80세 두목도
일본 폭력조직인 야쿠자도 고령화 사회의 그늘은 비켜가지 못한 ..
세상사는 이야기 더보기
세영이가 100일 되던 날
코나스 웹진 구독하기
  • 성명서/행사정보
  • 관련사이트
  • 기사제보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