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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⑲] 아빠는 사회복무요원

Written by. 정진호   입력 : 2017-09-21 오전 9: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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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입영통지

 정확한 날짜가 기억이 나질 않지만, 2016년 3월 말 정도 쯤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아직 오후 3시가 안됐었던 것 같은데, 바깥의 날씨가 참 어두웠다. 입영통지를 문자 메시지로 받은 나의 기분을 하늘이 알아주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당연히 가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확정된 입영일을 바라보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직 100일이 안 지난 딸아이와 한국생활에 적응이 안 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필리핀 아내를 두고 들어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입영 전까지 남은시간은 40여일 정도, 필리핀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 온 것이 잠깐 후회가 되기도 하였지만 내 자식들을 꼭 당당하게 한국에서 키우겠다는 지난 다짐을 되새기며 나는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자랑스럽게 수행해야할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준비한다.

4주 기초 훈련

 사회복무요원도 기본적으로 꼭 받아야하는 4주 군사 기초 훈련. 모두 현역을 다녀온 내 친구들은 겨우 4주 다녀 올 캠핑 걱정하지 말고 푹 쉬다 오라고 나를 놀렸다. 그것은 이미 다녀 온 자들의 여유였다. 참으로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마음으로 더 열심히 군사 훈련을 받았다. 내 자신에 대한 도전이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매사를 임했다.

 비록 현역 군인들이 받는 훈련들에 비하면 쉽고 어렵지 않을 수 있으나, 나는 완전군장으로 행군을 마친 내가 자랑스러웠다. 훈련소 수료식 날 4 주 만에 보는, 나를 행복한 모습으로 반갑게 맞이해주는 아내와 딸아이의 얼굴은 그동안의 걱정과 피로를 날리기에 충분하고도 넘쳐났다.

 집으로 돌아온 뒤 군복을 입지 않은 내 모습이 오히려 살짝 어색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앞으로 23개월의 오랜 시간으로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첫 출근

 ‘어떤 것이든 처음은 언제나 설렌다’라고 누군가 그랬던 것 같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나서는 나의 첫 출근길은 물론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 대한 설렘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인터넷으로 찾아본 다른 사회복무요원들의 복무사례나 사건사고를 보고 긴장도 되었다.

 아침 9시, 복무기관장님을 찾아뵈어 인사를 드리고 이제부터 내가 근무를 시작할 근무지와 업무를 배정받았다. “대소중학교에서 장애학생활동 지원을 할 것입니다.” 인상이 좋으신 복무기관장님은 웃으며 어렵지 않을 거라고 말씀해주셨지만 왠지 인터넷에서 봤던 다른 사회복무요원들의 고충과 불만토로들이 떠올랐다.

 막상 학교에 가서 교장 교감선생님을 뵙고 학습도움실(장애 학생 활동 지원)반의 선생님들께 인사드리고 전체적인 학교 분위기와 밝게 맞아주는 학생들을 본 순간, 내가 여태 헛걱정을 한 것 일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장애학생들은 어려웠다. 내가 불편했고 답답했으며 이해 할 수 없었고 짜증도 났고 복무지재지정도 생각이 났다.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하고 숫자도 모르는 지체장애 학생과, 몸이 불편해서 항상 모든 것이 느린 학생, 동문서답만 해대는 말이 통하지 않는 학생, 자신의 분노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여 책을 찢는 자폐증학생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항상 보낼 생각을 하니 어떻게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척 피곤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집안일로 바쁜 아내를 대신해 딸아이를 돌보는데 아기가 계속 울면서 칭얼거렸다. 분유를 먹지도 않고 잠을 자려 하지도 않고 기저귀도 깨끗했는데 뭣 때문에 그런지 몰라서 다급히 아내를 찾았다.

 아내는 수면등을 켜고, 태블릿으로 아기들이 진정할 수 있는 백색소음을 재생시켰다. 그러자 딸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내 품에 안겨 자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직 말이 통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장애학생들과 천천히 하나씩 서로 맞추어가며 알아 갈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어쩌면 아기 돌보기만큼은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소양교육

 첫 출근 뒤 소양교육을 가기까지 4개월의 기간, 학교에 근무하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들을 겪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보는 앞에서 장애학생에게 맞아 보기도 하였고, 나의 부모님에 관한 안부와 욕을 듣기도 하였다. 방학 중에는 학교 중앙화단의 꽃들과 해바라기들을 미숙하게 관리하여서 폭염으로 꽃들이 금방 시들기도 하였다.

 왠지 교감선생님께서 내게 믿고 맡기셨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굉장히 죄송했고 실망을 안겨드린 것 같아서 초조했다. 하지만 교감선생님께서는 처음 하는 일이여서 그럴 수도 있고 날씨도 엄청 더웠기 때문에 내 탓이 아니라고 격려해주셨다. 안심이 되고 힘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찾아온 사회복무요원 소양교육. 10월 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나왔다. 아내와 딸아이를 두고 다시 집을 잠깐 나가야 되었지만 그래도 훈련소 때만큼 걱정은 들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4박5일을 받아야하는 기존 일정보다 하루 적게 받는 3박4일이였기 때문에 부담이 적었다.

 나는 소양교육도 하나의 사회복무요원 복무의 연장선으로 보고 소양교육을 받는 내내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처럼 사회복무요원 제복을 입고 교육을 받았다. 학생장도 역임 하였으며 교육생 대표로 수료식 날 사회복무요원 센터장님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고 교육관님께서도 남은 복무기간도 열심히 하라며 칭찬과 응원, 격려를 해주셨다.

 사실 나는 근면 성실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게으른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라는 존재가 되고 나서부터 변화의 시작이 되었던 것 같고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다양한 장애학생들과 친절하고 헌신적인 특수학급 선생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던 것 같다. 사회복무요원 소양교육을 받으며 배운 내용 중에 내게 각인된 하나의 문장은 절대로 잊지 못한다.

 강사 한 분께서 말씀하셨다. “ 서울에서 런던까지 가는 제일 빠른 방법을 아시나요?” 여기저기서 여러 가지의 답들이 나왔다. 비행기, 로켓, 텔레포트, ktx 등을 듣고 강사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답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제일 빠르니까요. 여러분의 사회복무요원 생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함께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하면 시간이 빨리 가다 못해 너무 아쉬워서 느려졌으면 할 것입니다."

 답을 듣고 몇몇 교육생들은 순 억지라며 이야기하였지만, 나처럼 진지하게 듣고 공감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의 로맨틱한 버전이랄까, ‘서울에서 런던까지 가는 제일 빠른 방법’은 현재 나의 사회복무요원 복무신조다.

새로운 시작

 사회복무요원 소집 9개월째, 나는 정 들었던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한다. 나를 때리고 욕했던 장애학생의 졸업, 든든한 동료이자 언제나 즐거운 사회복무생활을 도와주셨던 멋진 선생님들의 발령. 하루하루가 아쉬웠고 한 달이 일주일도 안 되었던 것 같은 서울에서 런던까지의 시간이었다.

 졸업하는 장애학생에게 ‘ 더 잘 해 줄 수 있었는데... ’ 후회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함께하는 졸업여행에서 해맑은 얼굴로 지치지 않고 눈썰매를 계속 타며 즐거워 하던 학생을 떠나보내며 나도 모르게 진짜 선생님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학교로 전근가시는 학교선생님들을 위한 저녁모임에서 함께 했던 특수학급 선생님이 나를 호명해주시고 고마웠다고 말씀해주실 때 내가 그동안 사회복무를 완벽하게 잘 하지는 않았어도, 절대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하였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자부심도 들었다.

 나 또한 그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했고 아직 1년 하고 2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나는 내가 소집해제를 하는 날까지 초심 변치 않고 근면 성실하게 복무 할 것이라 다짐했다. “어쩌면 인터넷에서 올라오는 다른 사회복무요원들의 고초와 불만토로는, 사회복무요원이 생각을 달리 하며 직무에 임하는 순간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응원과 격려로 이어지지 않을까?” 나는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제도와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되면서 ‘새로운 시작’, 새로운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함께하는 새 학기를 준비한다.

아침의 에너지

 새 학기가 시작 된 지금, 이제는 진짜 1년이라는 시간이 딱 남은 것 같다. 처음에 언제 끝날까 길게만 느껴졌던 시작의 반에 왔다. 맹세컨대 거짓이 아니라, 나는 아침에 출근할 때 항상 사회복무가(사회복무요원 노래)를 들으며 출근한다. 내가 좋아하는 구간이 있는데 2절의 「청춘의 표상되자, 모두를 위해. 힘차게 비상하자, 미래를 위해」 이 부분을 들을 때면 정말 희망차고 에너지를 받는 느낌으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 쉬는 시간이나 학생들 수업시간에 할 일이 없으면 사회복무요원 헌장을 읽어 본다. ‘사회를 밝히는 희망의 등불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사회복무요원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데, 사회복무요원들은 자신들의 맡은 바 직무를 성실하게 자랑스럽게 자부하며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싶은 말

 현재 복무중인 다른 사회복무요원들에게, 앞으로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할 동료들에게 감히 충고와 조언을 한다면 ‘서울에서 런던까지 가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복무요원헌장과 사회복무가(사회복무요원노래)를 한번 꼭 외워서 복무해보라 하고 싶다. 한 문장 한 단어를 되새겨보면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사회복무요원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누군가 그러하지 않았던가, “연탄을 함부로 짓밟지 말라! 당신은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존재였던 적이 있는가?”라고,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누군가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나는 당당히 자부심을 가지고 복무하라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우리 자신들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분명 사회를 위하여 친절과 헌신으로 국민의 행복에 이바지할 뜨거운 존재, 사회복무요원들의 감사한 도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24개월은 낭비 또는 허송으로 보내는 시간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함께 일 할 수 있는 이들의 일을 도와 사회발전에 도움을 준다. 시청 군청에서 민원을 받는 사회복무요원, 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을 돕는 사회복무요원, 외로운 노인들의 말동무와 그들의 소소한 행복의 한 부분이 되어주는 사회복무요원, 그 밖의 사회를 위하여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모든 사회복무요원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자랑스럽다 말하고 싶다.

 끝으로 충북음성교육지원청 음철이 복무기관장님과 2016학년도 학습도움실 한수현 선생님, 김태희 선생님, 정연희 선생님, 2017학년도 김미선 선생님, 양이숙 선생님, 대소중학교 손기준 교장선생님, 노수경 교감선생님과 정문섭 교무실무사님, 그 외 사회복무요원 생활에 도움과 격려, 응원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이 글을 마친다.

정진호 / 음성교육지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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