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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㉖] 고양시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삶을 배우다

Written by. 김시원   입력 : 2017-09-23 오후 2: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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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재작년 겨울,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던 날 저는 ‘고양시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 지원하였습니다. 2015년 12월은 사회복무요원 신청 제도가 선착순에서 추첨제로 변경된 시기였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을 시작하기 전, 저는 두 가지 각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나라를 위해 내 젊음을 바치는 2년을 보람차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단순히 근무 환경이 편하거나 쉬운 일을 하는 곳 보다는 좀 더 힘든 곳에 가서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고, 제대로 봉사하고 오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32년을 특수학교 교사로 살아오셨습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 오셨는지, 무엇이 어머니를 힘들게 했는지….

 어머니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것. 자식 된 도리로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이겠지만 그 기회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사회에 봉사하는 동시에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고양시 주간보호센터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시 주간보호센터에서 복무를 시작하다

 한 달 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기관으로 배치를 받은 첫 날. 짧게 깎아 까슬까슬한 머리와 긴장한 마음을 잔뜩 안은 상태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근무가 시작되기 전, 아무도 없는 교실은 조용했고 저는 선생님과 함께 시설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습니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하고 센터에 이용하는 분들이 들어오자 조용했던 센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웃는 소리, 우는 소리, 그렇게 다양한 소리들로 센터가 가득 찼습니다. 그렇게 처음 이용하는 분들과 선생님들, 함께 일하게 될 사회복무요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주간보호센터에서의 첫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은 센터에서 미술관으로 현장학습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현장학습은 30명 정도의 이용인 분들과 함께 미술관을 방문하는 활동입니다. 저는 현장체험을 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렜습니다. 그런데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에 탑승하는 순간, 제 예상과는 정 반대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술관에 가며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용인 분들도 한층 들떠 있었기 때문에, 버스는 굉장히 부산했습니다. 또한 야외 활동인 만큼 선생님들은 혹시 모를 실종이나 사고에 대비해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저는 한 손으로는 잘 돌아다니는 이용인의 손을 잡고, 눈으로는 앞서 가는 사람의 뒤를 쫓고, 혹여 다른 관광객들의 관람을 방해할까 걱정을 하며 정신이 쏙 빠졌습니다.

 첫 날의 센터 일은 제 생각보다 고되었고,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지쳤습니다. 앞으로 2년을 여기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30년이라는 세월을 장애인과 함께 보내실 수 있으셨냐고...

봉사에의 마음가짐을 배우다

 일반적으로 센터에 오는 사회복무요원들은 살면서 장애인의 존재를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친구들처럼 장애인이 어색하거나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수 교사이셨던 어머니 덕분에 자주 어머니의 학생들을 보곤 했고, 함께 밥도 먹고 잠도 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간보호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서 그들을 맡는 책임을 가지고 돌보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먼저 이용인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교육에서는 막연히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차분히 행동하면 잘 처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센터에 있다 보면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무언가에 대처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달려오는 이용인 분에게 손바닥으로 얼굴을 맞아 안경이 반쯤 부서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 너무 화도 났고 서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생각하며 이용인 분을 먼저 진정시켰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자 다른 선생님들과 동료들이 중재해주었습니다.

 마음가짐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조언들은 그에 대한 대처에 큰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또한 어머니께서 전해주시는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들은 힘든 와중에도 항상 제 마음을 다잡게 도와주었고, 그 과정 속에서 어머니와 생각을 나누며 더욱 돈독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센터에서 느낀 따뜻한 정

 센터에서의 일상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장애인 시설에서 복무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막 센터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덩그러니 놓여 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여 직무교육과 소양교육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다 다른 것처럼 모두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이용인 분들에게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듯 적응해가는 과정에서의 고민을 해소하는 데에는 교육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저의 경우 사회복무요원 동료들 간의 따뜻한 배려가 그를 해소해 주었습니다. 저희 센터는 선임 사회복무요원과 후임 사회복무요원 간의 사이가 굉장히 돈독한 편입니다. 저는 센터에서 우연히 저보다 한 달 먼저 센터에 온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친구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대처 방법을 일러주고 위로해주며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다른 선임 사회복무요원들도 마찬가지로 처음 온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세심하게 챙겨주었습니다.

 센터에 온 두 번째 날 업무를 다 처리하고 센터로 복귀할 때였습니다. 저희 센터에서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에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꼭 문을 잠그고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문을 잠그고 들어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저는 그만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만약 문이 계속 열려 있었다면, 하원 시간에 이용인이 실종되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동료들이 다가와 이야기를 해주며 문을 닫아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동료들은 먼저 온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꼼꼼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덕분에 이제 저는 센터에 잘 적응하여 일하며, 주말에는 다른 사회복무요원들과 축구를 하고, 회식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곳에 적응하고,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과 어울려 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참 따뜻하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 경험이었습니다. 적응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서로 돕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잊지 못할 여름캠프의 추억

 센터에 오고서 시간이 지나며 점점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센터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가 다가왔습니다. 바로 2박 3일로 다녀오는 여름 캠프였습니다. 다른 활동에 비해 규모가 크고, 선생님과 사회복무요원들이 모두 3일 동안 이용인의 식사와 청결을 책임져야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캠프를 가기 전에 긴장하고 떨린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첫 여름 캠프를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맡게 된 이용인 분은 소리를 지르는 특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기분이 좋아도 소리를 지르고, 기분이 나빠도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저로서는 그 분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어서, 가장 맡기 힘들어하는 분이기도 했습니다. 캠프를 가는 동안 그 분은 처음 가보는 낯선 곳에 가기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불안해하셨습니다. 저 또한 긴장된 상태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첫 날을 보냈습니다.

 캠프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일은 예상외로 가글이었습니다. 물을 머금고 우물우물하는 가글을 시켜드리고 있는데, 물을 뱉으라고 말씀드리면 가글을 하지 않고 그냥 뱉으시고, 그게 아니라고 말씀드리면 물을 삼켜버리셨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고 여러 번 시범을 보인 끝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따라하는 이용인 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다시 한 번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은 물놀이가 있는 날이어서 이용인 분과 함께 물놀이 장에 갔습니다. 저는 그 날 제가 맡은 이용인 분이 웃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항상 찌푸려져 있던 그 분의 얼굴에 평소에 보지 못한 웃음꽃이 환하게 펴있었습니다. 그 날 저는 이용인 분과 6시간 정도 물놀이를 했습니다. 밥을 먹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물에서 같이 놀아야 했기에 힘이 들었지만, 이용인 분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너무 뿌듯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저는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물놀이에 흠뻑 젖은 속옷과 수영복을 챙기고, 몸을 씻겨드리고, 밥을 먹여드리고, 인솔을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용인 분을 눕히고 ‘잘자요’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분이 저에게 “잘자, 사랑해. 뽀뽀.”라고 말하셨습니다. 저는 그 세 단어에 이 캠프, 아니 사회복무요원으로 활동하며 힘들었던 모든 부분을 위로받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이용인 분을, 집에서 수 만 번 씻기고 침대에 눕히시며 그 분의 어머니가 하셨을 말, ‘내 아들 잘자, 사랑해. 뽀뽀.’라는 그 말을, 그 분이 저에게 들려줬던 것입니다. 저는 그 날 또 한 번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제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 소중하게 보관했습니다.

 어느새 고양시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일을 한 지도 일 년이 넘었습니다. 일 년의 시간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어느새 저는 센터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사회복무요원 대표를 맡아 새로운 요원들을 이끌어 주고, 센터와 사회복무요원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며 센터의 일을 같이 고민해나가는 어엿한 사회복무요원이 되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봉사를 하며 제가 이해하게 된 것은 장애인에 대한 것 뿐 만이 아닙니다. 저는 한평생 저를 돌보아주신 엄마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자세 또한 정비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제게는 1년 남짓의 복무 기간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도 열심히 복무할 것입니다. 저는 다시 새로운 시작 앞에 서있습니다.

김시원 / 고양시장애인주간보호센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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