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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㉙] NO LITTLE PEOPLE, NO LITTLE PLACES

Written by. 성의진   입력 : 2017-09-24 오후 1: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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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이상한 시선

 사회복무요원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은 아마 사회복무요원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본 고민일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사람들은 군인의 신성한 병역의무에 대해서는 곧잘 이야기하지만, 사회복무요원은 어딘가 문제 있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그 이유는 아마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복무요원이 그저 ‘시간 많고 편하게 사무일하는 사람’ 정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를 위해 일하면서도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복무요원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선지 우리 사회복무요원들도 일에 자신감을 갖기란 쉽지 않다. 지난 5월, 사회복무연수센터에서 만난 한 친구는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이 허무하게 느껴진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또 어떤 친구는 요양원에서 나이든 어르신들을 돕는 일에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깊은 회의에 빠져있었다.

나 역시 내가 하는 일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하지만 우리마저 사회복무요원을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이웃에게 봉사하고 사회를 지킨다는 사회복무요원의 숭고한 정신을 체험하고, 나아가 이를 실현해내기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일에서 발견하는 소중한 가치

 나의 일터는 항구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고운 모래톱이 백사장을 이루는 작은 해변마을에 있다. 아침 일찍 해변을 따라가다 보면 언덕 위의 현남면사무소가 눈에 들어온다. 나의 일과는 사무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민원인을 기다리며 엑셀을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는 농사와 관련된 업무를 돕고 있다. 봄부터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제법 바쁘게 일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만 앉아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마다 집배원 아저씨가 기분 좋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는 얼른 편지를 받아 사무실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우편물에게 주인을 찾아준다. 신문이나 잡지는 민원인들이 볼 수 있도록 자리에 잘 펴놓는다. 공무원 선생님들이 부탁하는 심부름도 하고, 행사가 있는 날이면 환경미화 등 각종 지원을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시골 농정업무에 어울리는 복장, 그러니까 발에는 장화를 신고 손에는 삽을 든 채 진흙에 뛰어들 각오도 필요하다. 언제나 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크게 어려운 일 없이 평화롭게 흘러가는 나의 일상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런 일상이 무료하다고 생각했다.

산더미 같은 일감에 둘러싸여 있으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은 의지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에 흥미를 붙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단순 반복되는 서류작업은 마치 내가 기계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면사무소를 찾는 민원인들의 얼굴은 왠지 다 똑같아 보였고,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 언제나처럼 사무실 문을 차고 들어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댈 때면 나는 그냥 귀를 닫아버렸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사회복무요원에게 좀 더 비중 있는 일이 맡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사회복무요원은 군인보다 더 자유롭고 좋은 환경 속에서 일하지만, 오히려 군인이나 공무원보다 훨씬 덜 힘들고 특별히 어렵지도 않은 일을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회복무요원은 공무원의 일을 대신하지 못한다.

신입에게 무슨 권한이 주어지겠느냐마는 내가 맡은 일은 전체업무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내가 없어도 업무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하는 일은 결국 하찮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나도 하찮은 존재가 아닐까. 내 머릿속은 이내 온갖 이상한 생각들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하루는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를 불러일으킬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전산 시스템에 숫자를 잘못 입력하는 큰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나는 농사와 관련된 업무를 돕고 있다. 그중에서도 농사짓는 땅의 크기에 따라 농부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직불제’가 나의 주된 업무다. 그런데 내가 시스템에 농지면적을 입력하던 중 뒷자리의 0을 하나 빠뜨렸던 것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실수였지만, 그것은 내 일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했기에 나도 모르는 동안 타성의 늪에 빠져버린 결과였다.

 꼼꼼한 성격의 담당 공무원 선생님이 내 실수를 발견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다행히 마감기한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두고 있었기에 내 실수는 어렵지 않게 바로잡을 수 있었다. 만약 공무원 선생님이 내 작은 실수를 보지 못한 채 지나갔다면 그 농부 아저씨는 보조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농부 아저씨의 마음도 많이 상하고 최악의 경우 담당자가 손해배상을 하게 되는 일까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숫자를 잘못 입력하는 실수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 항상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저지른 실수는 어떻게 보면 누구나 흔히 저지르는 하찮은 실수였다. 하지만 이 하찮은 실수는 내가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일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사회복무요원은 사회복지, 보건의료, 교육문화, 환경안전, 행정의 다섯 가지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요양원과 같은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을 돕거나, 응급구조 활동에 나서거나, 아이들의 학습을 돕기도 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주민센터의 행정을 돕는다. 알고 보면 사회복무요원은 사회 곳곳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복무요원의 일을 단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아마 ‘이웃을 돕는 일’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 것 같다.

 ‘이웃을 돕는 일’에는 실로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따뜻한 인사 한 마디, 복사 해드리는 일, 친절한 안내, 꼼꼼하고 성실한 일처리…… 그렇게 작은 일들을 모아 종착역을 향해 간다. 그리고 목적지에 이르면 사회복무요원의 역할은 명확해진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이웃을 사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한 목표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복무요원은 겉보기에 멋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이미 우리 사회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 지금까지 무료하게 여겼던 수많은 일들도 사실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비인기 종목의 올림픽 선수

 사회복무요원은 올림픽 선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각각 다른 이름과 규칙을 가진 경기에 나선다.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종목이 있고, 그렇지 않은 종목도 있다. 하지만 선수들이 바라보는 목표는 모두 같다. 올림픽의 경우 그것은 바로 우승하는 것, 그래서 조국을 빛내는 것이다.

 쉐퍼라는 사상가는 이렇게 말했다. “하찮은 사람, 하찮은 일은 없다(no little people, no little places).” 그는 이 세상에 보잘 것 없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사회를 밝히는 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그것은 크든 작든 모두 동일한 가치를 지닌 훌륭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역시 결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열악한 환경에 있더라도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구석구석에서 해내는 이들이야말로 실은 정말 중요한 일을 해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비록 종목은 다르지만, 비록 남들과는 다른 일을 하지만, 비록 군복은 입지 않았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해 작은 일에도 충성하며 묵묵히 달리는 이들이 있다. 혹 누가 그들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들이 바로 우리, 사회복무요원이라고 답하고 싶다.

성의진 /  양양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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