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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28)은 유관순 열사 추모일

유관순 열사의 삶과 죽음을 초월한 거룩하고도 숭고한 독립정신과 애국애족정신에 삼가 옷깃을 여민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7-09-28 오전 9: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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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가족이 독립운동가가 아닌 분이 없다. 감옥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이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외쳤다. 그러나 일제의 잔혹한 총칼은 더욱 거세고 피도 눈물도 없었다. 아버지는 日 헌병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와 함께 일제의 만행 앞에 무너졌다. 오빠도 공주 영명학교 학생 대표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체포됐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국내에서, 만주와 하와이로 유랑걸식하면서도 민족혼은 꺾일 줄 몰랐다. 어린 소녀에서 7순을 바라보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왕과 관헌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고 태극기를 꺼내 만세운동 대열에 앞장섰다. 개인의 안위는 없었다. 오직 독립된 나라가 먼저였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의 한과 울분을 털고 후손들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런 나라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대의(大義)가 우선이었다.

 그 독립운동가 중에 독립 혼과 애국 혼으로 똘똘 뭉친 유관순 열사가 계셨다.

 유관순 열사(1902. 12. 16.~1920. 9. 28.)는 1919년 4월 1일 아우내(川) 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한 대표적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6년 이화학당(梨花學堂) 교비 장학생으로 입학해 고등과(高等科) 1학년 3학기 때 거족적인 3ㆍ1 독립만세운동을 맞이하였다. 3월 5일 남대문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열사는 조선총독부의 강제 명령에 의해 이화학당이 휴교되자 독립선언서를 갖고 귀향한다. 인근 교회와 청신학교(靑新學校) 등을 돌아다니면서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고 천안ㆍ연기ㆍ청주ㆍ진천 등지의 교회와 학교를 돌아다니며 만세운동을 협의하였다. 또한 기독교 전도사인 조인원(趙仁元), 김구응(金球應) 등과 만나 4월 1일 아우내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한다.

 4월 1일 아침 일찍부터 아우내 장터에는 천원군(옛 천안 지역에 있었던 행정구역) 일대뿐만 아니라 청주와 진천 방면에서도 장꾼과 시위 군중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오전 9시, 3천여 명에 달하는 군중이 모이자, 조인원이 긴 장대에 대형 태극기를 만들어 높이 달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곧이어 아우내 장터는 삽시간에 만세소리로 진동하였고, 열사는 미리 만들어 온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대열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독립만세운동이 절정에 달하던 오후 1시경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대열의 선두에 있던 한 사람이 칼에 찔려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열사는 군중과 함께 최초의 희생자를 둘러메고 헌병 파견소로 몰려갔다. 이들은 무참하게 살해된 동지의 시체를 파견소 앞마당에 내려놓고 일제의 만행을 격렬하게 성토하였다. 사태가 험악해지자 일본 헌병들은 파견소 내로 들어가 숨어버렸고, 시위 군중은 조인원의 설득으로 충돌 없이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오후 2시경, 응원 요청을 받은 헌병 분견대원과 수비대원 30여 명이 트럭을 타고 도착하여 총검을 휘두르고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였다. 시위 군중이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일본 헌병들은 이들을 끝까지 추격하면서 총을 발포하고 칼로 쓰러뜨렸다. 이 같은 일제의 만행으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오후 4시경, 열사는 좌복부와 머리를 칼에 찔려 숨진 아버지의 시신을 업고 유중무, 조인원, 김병호, 김용이 등 40여 명과 함께 파견소로 몰려가, 소장을 비롯한 일본 헌병들에게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열사는 한꺼번에 부모를 잃었을 뿐 아니라 독립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공주 검사국(公州檢事局)으로 송치되었다. 여기서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 대표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체포된 오빠 유우석(柳愚錫)을 만났으니, 열사의 가족은 모두 조국의 광복을 위한 애국투사가 아닌 이가 없었다.

 결국 열사는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7년형이 확정되어 서대문형무소에 감금되었다. 열사는 옥중에서도 어윤희(魚允姬)ㆍ박인덕(朴仁德) 등과 계속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모진 고문 여독으로 1920년 9월28일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열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오늘(9.28) 충남 천안 병천면 아우내 장터에서는 유관순 열사 순국 97주기 추모행사가 천안시와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사의 추모각에서 열린다. 한반도를 죽음의 검은 핵구름으로 몰아치려는 북한 김정은 집단의 민족말살 파괴행위가 6․25전쟁 이래 가장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현상을 목도하면서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온몸으로 열망하며 저항한 열사의 삶과 죽음을 초월한 거룩하고도 숭고한 독립정신과 애국애족정신에 옷깃을 여미며 이 시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새삼 되 뇌이게 된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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