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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과 자랑스런 태극기

건군제69주년 국군의 날... 15년 전 그 날을 돌이키며 세계 최강으로 우뚝 선 우리 군과 국군장병에게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 보낸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7-10-01 오후 1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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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 일깨운 전화 한 통

 “안녕하십니까? 국군의 날 기획단 000 소령입니다.” 월말이 다 되어가던 8월 어느 오후 책상 위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린다. 득달같이 받으니 차분한 목소리의 군인아저씨다. “이번 국군의 날 행사 참석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 드렸습니다.” “아 그래요! 수고 많으십니다. 당연히 참석합니다.” 하고 고마움을 전하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자 나른해 지려던 순간의 기운이 갑자기 활기로 넘쳐 흐른다.

 올해 69주년 국군의 날은 추석 연휴가 낀 관계로 9월28일 개최됐다. 국군의 날을 맞으면서 행사에 참석한 많은 시민들은 필자 같이 동일하게 흥분된 추억과 기분을 안고 참석하게 됐으니 자랑스런 국군으로 우뚝 선 우리 젊은 장병들의 위용은 또 얼마나 힘차고 멋짐인가?

 요즘이야 초고화질 초스피드 인터넷 시대이다 보니 순간순간이 다르게 변하고 있어 옛말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묵은지가 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서 15년차 물오른 예비역으로서 지난 2003년 10월1일 국군의 날 행사 참석 이후 두 번째 이니 무려 14년만의 행사 나들이인 것 같다.

 필자가 ‘안보’ 전문 인터넷 매체에서 일하다 보니 매년 맞는 국군의 날을 데스크에서 맞고 취재기자들의 기사를 확인하기에 10월1일은 눈에 익은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 국군의 날은 직접 기념식장을 찾아 직접 국방안보 주역들의 늠름한 모습을 취재하면서 또 한사람 축하객이 된다는 설렘에 잠시 잊고 있었던 14년 전 그 날이 새삼 떠올랐다.

그 날의 감격 잊혀 지지 않아

 2003년 10월1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제55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오전 9시5분 당시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군용사, 3부 요인을 비롯한 정부 및 각계각층 인사들과 주한 외교사절, 참전용사와 재향군인회원, 학생, 시민 등 2만5천여 명이 참석했다.

 5년마다 시행하는 대규모 시가행진까지 있던 그해 국군의 날 행사는 전 국민이 국군장병에게 보내는 격려와 축제의 한마당 잔치였다. 필자의 손도 그랬지만 그 날 서울일원은 대형빌딩마다에서 쏟아지는 꽃가루와 거리를 수놓은 늠름한 국군용사, 첨단무기로부터 군의 위용을 빛내는 각종 무기와 장비, 거기에 연도에 늘어선 수많은 시민들의 손에서 나부끼는 태극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하나의 군무(群舞)였다.

 그 때 나는 군에서 전역한 지 1년여 밖에 되지 않은 햇병아리 예비역 군인아저씨였다. 하지만 국군의 날 행사장에서는 역전의 용사(?)에 포함되었다. 왜냐하면 참전유공자 어르신들과 더불어 무게 차에 올라 행사장을 출발해 시가행진을 하며 연도에 늘어선 수많은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 휘날리는 태극기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 그날에 대한 기억이 새로운 것은 현역시절 계룡대에서 거행하는 국군의 날 기념식에 매번 참석하다 전역 후 1년 만에, 그것도 대규모로 거행된 기념행사에 역전의 대선배님들과 함께 한 이유도 이유였지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열병식 내내 조영길 국방부장관께서 우산을 받쳐 들고 대통령을 보좌하며 사열에 임한 관계로 후일 이런 저런 얘기들이 한참 지면을 채우며 나돌기도 해 더 기억이 새록하기도 한 때문이다.

 ▲ 국군의 날 행사에서 헌병 사이카 대형을 선두로 시가행진에 나선 국군장병 시가행진. ⓒkonas.net

 

 시가행진은 서울공항 사열대를 한 바퀴 돌아 세종로 일대에서 장관을 연출했다. 특히 그 해 국군의 날에서는 군 원로 및 유공자분들에 대해 각별히 예우를 더 했던 것 같다. 해방 직후 격동과 혼란 속에서 세워진 초창기 군대의 모습을 재현한 창군원로 제대를 선두로 6․25전쟁 및 월남전 참전 용사, 보훈가족, 재향군인회가 사열대 앞을 행진, 시가지로 들어서 호국보훈 정신의 중요성을 상기시켰기 에서다.

 남대문과 광화문, 동대문 등 시내 일원에서는 5년 만에 거리를 가득 채운 시민들이 손에 쥔 태극기를 흔들며 1만3천여 명의 도보부대 국군장병과 기계화 부대에, 그리고 우리들이 대열을 이룬 참전용사와 보훈가족, 재향군인들에게 열렬하고도 따뜻한 박수를 쉼 없이 보내주었다. 우리들 제대를 이룬 대열의 참가자들도 연도의 시민들에게 팔이 저려올 정도로 손을 흔들며 태극기를 마주했다.

 태극기. 그때도 그랬지만 필자는 태극기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깊다. 누구나 자신의 나라, 조국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국기에 대해 무한한 경외감과 애정이 동반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거리에서건 학교나 정부청사, 시내 건물 게양대에서 바람 따라 휘날리는 태극기를 볼 때면 마치 100여년 전 가슴에 품은 태극기를 꺼내 들고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3.1독립만세운동 당시의 선열의 모습이 투영돼 가슴 뭉클해 질 때가 한 두 번 아니다.

 혹시 이런 기억이 있을지 모르겠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진입 톨게이트를 지나 시내로 들어오면서 좌우측 주변 빌딩 국기게양대에서 유유자적하게 휘날리는 대형태극기를 바라 본 기억. 또 강남구의 번화가 도로 한복판과 한강변 구리시가 설치한 대형 국기게양대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거기에 분단의 현장을 지켜보며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판문점 대성동 마을의 대형 태극기의 모습을. 스스로가 애국자는 아니지만 주변 곳곳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대할 때마다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은 태극기가 주는 또 하나의 이상이요 가치 표현이 아닐까 싶다.

태극기 앞에서

 우리는 태극기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난 3월 발표된 한 설문결과에 의하면 ‘태극기를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10명에 2명 꼴’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돼 ‘설마’ 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태극 문양의 파랑과 빨강의 위치를 반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건(乾 : 하늘)과 곤(坤 : 땅), 감(坎 : 물)과 이(離 : 불)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열에 한명이더라는 것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아파에서는 3․1절이나 국경일 등 태극기를 게양하는 날이면 전 날 저녁과 당일 아침 관리실 방송을 통해 “내일(오늘)은 태극기를 게양하는 날입니다. 주민여러분께서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해 주시기 바랍니다”하는 방송을 내보낸다. 3천여 가구가 입주해 있기에 그렇게 방송해주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이나 깜빡 잊고 있는 가가호호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방송이 나올 때마다 ‘잘하고 있다’는 응원을 보내고는 한다.

 국경일이나 태극기를 다는 날이면 잊지 않고 태극기를 게양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엔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함께 태극기를 들고 나가 베란다에 내건 기억도 있지만 국경일 태극기를 달고 아파트를 돌며 게양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이제는 하나의 습관화가 되었다고 할까. 그런데 매번 보면서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 어쩔 수 없어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98주년 3·1절과 8월15일 광복절 날은 더했다.

 ▲ 태극기 사랑 및 국경일 태극기 게양운동을 펼치고 있는 4.19혁명공로자회 경기도지부의 한 행사. 태극기를 들고 수원 화성행궁 일대에서 캠페인을 펼치며 학생행렬을 지켜보며 웃고 있는 4.19혁명공로자회 이재영 경기도지부장. ⓒkonas.net

 

 1개 동 평균 27층에 100가구가 넘는 집들이지만 그 중 많아야 20여 가구, 대부분 10〜17가구 안쪽만이 태극기를 내걸었다. 3․1절 아침, 아파트 단지를 돌며 일일이 숫자를 세며 메모지에 기록한 결과에 의하면 지난해 게양 호수 수치와 올해 수치 중 올해가 더 떨어졌다. 더욱이나 이번 8․15 전야와 아침, 관리실에서는 늘상 하던 방송마저도 없었다.

 지난 3.1절 TV 뉴스 보도에 의하면 강원도 춘천의 한 시민단체 조사 결과, 올해 태극기 게양율은 18.1%로 열 집 가운데 두 집이 채 안 된다고 했다. 2015년 25.4%에서, 지난해에는 23.6%로 떨어진 뒤 올해는 20% 아래로 뚝 떨어졌다고 했다. 이 단체가 태극기 게양을 독려하고자 태극기 게양 실태조사를 해 온 지 1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이번 8·15광복절 아침 비가 내려서인지 우리 아파트 태극기 게양 성적은 부끄럽다 못해 아예 태극기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내리는 비를 흠뻑 맞아 축 쳐진 채로 길거리 가로변을 묵묵히 바라보는 태극기만이 오늘이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8·15광복절임을 무언(無言)으로 깨우쳐주고 있었다.

군인 아파트 태극기 게양실태

 20년도 훨씬 전 현역으로 수도권 00부대에 근무하던 때다. 어느 국경일 아침 느긋한 마음으로 있는데 집에 설치된 군 전화기가 울려 받으니 사단장님 이셨다. “정훈공보참모, 지금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예하 각 부대를 돌면서 군인아파트 태극기 게양실태를 확인해서 내일 보고해”하는 지시였다.

 그 전에도 사단장님께서는 아침 상황보고 회의 때면 태극기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런가 하면 태극기를 다는 날이면 직접 부대 아파트를 불시에 방문해서 어느 집이 달고, 달지 않는지 확인하시곤 해서 사령부 간부 아파트는 거의 빠짐없이 게양하기에 이르렀다.

 지시를 받고 곧장 출발해 각 부대별 아파트를 돌며 확인하는데, 사단 사령부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1개 여단 아파트를 확인하고 다음 부대로 들어서자 벌써 소문이 났는지 해당부대 인사담당자가 부리나케 쫒아 나오는가 하면 필자가 보는 앞에서 서둘러 태극기를 게양하는 등 부대별로 난리 아닌 난리가 나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회의 때 각 부대별로 현상 그대로 보고를 드렸다. 물론 게양 성적이 낮은 부대에 대해서는 사단장님께서 야단을 치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태극기를 일괄 구입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군인 어깨에 부착된 태극기 자랑스러워

 예전에 비해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모습이 더 늠름해 보인다. 군복 자체가 예전 필자가 군생활 할 때 입던 군복에 비해 더 품격이 있어 보이는 것도 원인일 수 있겠지만 비례해서 전투복에 부착된 태극기가 있어서 더 그렇게 비쳐지는지도 모르겠다.

 태극기 부착 전투복을 입은 당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군복을 입어 보지 못한 예비역 입장에서는 한번 입어보고 싶은 충동과 함께 자랑스럽고 늠름한 군인, 멋진 군복으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이전 전투복에 태극기를 달고 있는 한미연합사(한국측), 해병대, 해외파병 군인의 사례를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 것으로 판단돼 부착했다는 태극기 군복은 훈련병 수료식 때 가족들이 전투복에 직접 태극기를 붙여주는 행사까지 하고 있어 새로 군인으로 등극(?)하는 장병의 애국심까지 곁들이게 된다고 하니 자긍심 또한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게 된다.

애국선열과 태극기

 안중근 의사는 1909년 단지동맹 결성하면서 건곤감리(乾坤坎離)의 사괘에 대한독립을 새긴 ‘혈서(血書) 태극기’를 제작했다. 독립군이 사용한 진군기(進軍期), 윤봉길 · 이봉창 의사의 한인애국단 가입 맹서(盟誓)의 순간 등 독립운동에는 언제나 태극기가 함께했다.

 영화 ‘암살’에서도 그렇지만 항일운동의 구심점에는 태극기가 중심이었고, 그에 따라 순국선열에게 가해진 모진 탄압이 태극기에도 행해짐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렇듯 조국 광복과 정부수립에 따라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던 태극기는 1949년 10월 15일 대한민국의 정식 국기로 제정·공포돼 국가수호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6․25전쟁 와중에 빼앗겼다 1951년 9월 27일 중앙청 옥상에 다시 게양된 태극기는 서울수복의 감격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국군의 날! 휘날리는 태극기

 세계 최강의 막강 위용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국군용사들. 오늘도 분단된 이 땅 산하를 지키며 하늘과 바다, 높은 산과 계곡 어디라 할 곳 없이 국토수호의 동력인 자랑스런 국군장병에게 우리 국민은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갖는다.

 내년이면 창군 7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국군. 국군은 이제 대한민국 수호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멀리 아프리카 남수단 재건지원단(한빛부대)에서 레바논 동명부대, 소말리아 해역의 청해부대에 이르기까지 2016년 10월 기준 UN PKO · 다국적군 평화활동 · 국방 협력 등의 형태로 총 13개국에 1천106명이 해외 파병돼 세계평화와 어려운 이웃 국가를 위해 무한대 활동을 펼치며 국위선양에 앞장서고 있다. 1964년 9월 베트남전쟁에 의료진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 파병이 처음이었으니 어느새 53년 해외 파병의 역사 속에 파병 또한 장년 국군이 된 셈이다.

 올해 국군의 날 아침도 나는 태극기를 게양한다. 국군장병이 대한민국을 수호하듯이 태극기 또한 국군의 날 국군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나 또한 15년 만에 다시 찾은 국군의 날 행사장에서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 국군장병을 응원할 것이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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