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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의 첫눈과 연평도 포격전 7주년

북핵과 미사일 위협이 더욱 가속화되는 오늘의 현실 앞에서 백제 5천 결사대의 황산벌 전투를 떠올리며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7-11-28 오후 3: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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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에 첫눈이 내리던 11월23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가까운 백제 5천결사대의 빛나는 충혼이 서린 치열했던 전장(戰場) 황산벌에도 소복하게 흰 눈이 내렸다.

 백제가 무너진 지금으로부터 1357년 前 무적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로 나서기에 앞서 충신 계백 장군은 이미 기운 조국 백제의 운명을 알았다. 더 이상 신라와 당의 협공을 막아낼 길이 없음을 자인(自認)해야 했다. 동시에 자신의 황산벌 출전 또한 마지막임을 직감한 장군은 사랑하는 부인과 자식들을 자신의 손으로 영원히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전장은 그렇게 열렸고, 신라군과의 치열한 결전(決戰의 결과는 백제의 운명을 결정케 했다. 충남 논산시 부적면과 연산면의 끝자락 천호산을 중심으로 한 계백장군유적지 경내 묘역에도 이 날 눈발이 날리고, 하늘을 찌를 듯한 용사들의 담력과 번뜩이는 기지, 하나뿐인 생명을 초개와 같이 불사르며 한 날 한시에 황산벌의 호국영웅으로 산화한 백제 병사들의 혼이 담긴 산자락과 나뭇가지 위에도 황금빛 잔디위에도 흰 눈꽃이 피어났다.

 이 날은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난 지 7주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 김정은은 당시 서해 5도를 담당하는 4군단장 김격식을 앞세워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4분 우리 영토 연평도에 해안포와 곡사포 등 170여 발을 기습 발사하며 도발만행을 자행했다. 해병대 장병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민간인 12명(2명 사망)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가옥 파괴 등 재산피해도 컸다.

 1953년 7월 휴전협정 이래 민간인을 상대로 한 대규모 군사 공격으로 최초였다. 우리 해병대 장병들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병사의 철모에 불이 붙는 상황에서도 K-9 자주포로 적진지에 대대적인 응징보복을 가했다. 아군의 응징으로 북한군이 입은 피해 상황은 수혈용 피가 모자라 주민들로부터 응급 수혈을 해야 할 정도로 우리군의 수십배에 달했던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은 지금 그들이 승리한 전투라며 자축행사를 벌이고 있다. ‘연평도 포사격전투 승리’를 명칭으로 자축 기념행사를 7년째 계속하고 있다.

 24일자 북한 <노동신문>은 이 날 승전 기념식과 관련해 “연평도 포사격전투승리 7돌 기념 군민연환모임이 23일 강령군(황해남도 남부 해안에 위치)에서 진행되었다”고 전하면서 이 모임에 참석한 당시 포격 가담 북한 군인들에게 “꽃목걸이를 안겨주며, 혁혁한 군공을 축하해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연평도 주민이 사는 마을까지 무차별 포격도발을 자행한 범죄행위를 가리켜 “신성한 우리(북)의 영해에 총포탄을 쏘아대는 가증스러운 원수들에게 복수의 명중탄을 들씌워 무적강군의 진짜 총대 맛, 불벼락 맛을 보여준 연평도 포사격전투의 자랑찬 승리”라고 주민들을 부추겼다.

 또 “연평도 포사격전투의 자랑찬 승리는 침략자, 도발자들을 추호도 용서치 않고 단호히 징벌하고야 말 우리 혁명무력의 불패의 기상을 만천하에 과시한 쾌거”라며 웃지못할 사실로 호도한 채 호전성과 함께 기고만장해댔다.

 11월23일 오전 대전 국립현충원에는 이 날 내린 첫눈이 첫눈답지 않게 함박눈이 되어 펑펑 쏟아졌다. 현충탑으로 가는 길목에는 이 날 10시 있을 연평도 포격전 7주년 기념 추모행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고 행사장을 찾는 손님맞이로 헌병 안내 요원들도 바쁜 손놀림을 계속하고 있었다.

 7년 전 그 날 연평도 해병대 포진지를 비롯해 민간인 거주 마을까지 무차별 떨어지는 포탄도발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 장병들은 침착했다. 대응하는 K-9 자주포에 이상이 생겨도 신속하게 응급복구를 서둘렀다. 극한(極限)의 적 포격도발이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전쟁 공포감이 엄습할 법 한데도 흐트러짐도 당황함도 없었다. 모처럼 부모형제를 만날 꿈에 젖은 휴가길 이었건만 장병들은 뒤를 돌아봄 없이 부대로 달렸다. 그리고 포탄이 작렬하는 중심부에서도 그만의 자리에서 정위치 했다. 철모에 불이 붙어도, 부상으로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아도 눈동자와 모든 동작은 오직 적진을 향했다. 그렇게 우리 국군용사 해병대원들은 적과 싸웠다. 그리고 승리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 내손으로 조국 대한민국을 지켜내야 한다는 투철한 국가관과 강인한 군인정신뿐이었다.

 호국의 군인정신은 그렇게 2010년 11월23일에도 빛났고 지금 이 순간 눈 덮인 산하 곳곳에서도 빛나고 있으니, 나라를 위하는 호국정신은 시대적 차(差)와 무기의 변화는 현저할지라도 그 숭고함은 옛과 오늘에 크게 다름이 없다 할 것이다. 백제 황산벌에서도 그랬다.

 660년 7월 신라는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5만 군사로 탄현(오늘의 충북 옥천군 군서면과 군북면 경계)을 넘어 황산벌(충남 논산시 연산면 신앙리 일대)로 진군했다.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는 3갈래로 나뉘어 진격하는 신라군을 맞아 화랑 관창까지 살려 보내며 4번 싸워 4번 모두 이기는 승전보를 올렸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 결사대 모두가 순절(殉節)하고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고야 말았다.

 그러나 조국 백제를 위해 최후의 한 사람까지 운명을 같이 한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는 백제 멸망으로부터 1357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충절의 표상으로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 있으니, 이 날 계백 장군 유적지 백제 박물관과 장군의 묘소를 참배한 우리들은 경내를 돌면서 당시의 작전과 전술을 오늘에 비견하며 다시한번 선인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기도 했다.

 국가가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고,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되기에 국가의 번영도 발전도, 개개인의 윤택한 삶과 천부의 인권도 보장되는데 그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김정은 집단의 북핵과 미사일 위협이 더욱 가속화되는 현실 앞에서 황산벌을 떠올리게 된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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