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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과 어느 국군 병사

국가와 국민도 60만 장병의 듬직한 보호자요, 응원군이 되어 우리 아들 ․ 딸들의 사기를 올려주고자 한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8-01-27 오후 2: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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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 자네는 언제까지 이 호 속에 있을 것인가?

병사 : 예! 각하, 저는 군인입니다. 군인이란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저의 직속상관으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이 있을 때까지 여기 있을 것입니다.

장군 : 명령이 없을 때엔 어떻게 할 것인가?

병사 : 옛! 죽는 순간까지 여기를 지킬 것입니다.

장군 : 오! 장하다, 자네 말고 딴 병사들도 다 같은 생각인가?

병사 : 옛! 그렇습니다, 각하.

장군 : 참으로 훌륭하다! 여기서 자네와 같은 군인을 만날 줄은 몰랐네. 지금 소원이 무엇인가?

병사 : 옛, 우리는 지금 맨주먹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놈들의 전차와 대포를 쳐부술 수 있도록 무기와 탄약을 많이 주십시오.

장군 : 음... 그리고 또 없을까?"

병사 : 옛! 없습니다.

장군 : 알았어. 여기까지 와 본 보람이 있었군!

 언론과 6․25한국전쟁 관련 책자를 통해 익히 보고 들은 6․25한국전쟁의 영웅이자, 영원한 한국민의 은인이기도 한 맥아더 장군과 참호에서 경계 중이던 한국군 병사와의 대화 내용이다.

 맥아더 장군이 6월25일 새벽을 기해 북한이 남침을 개시해 한반도에 전쟁이 났다는 보고를 받고 근무 중이던 일본 동경에서 1950년 6월29일 급거 한국으로 날아왔다.

 수원비행장에서 곧바로 국군이 방어 중이던 한강 방어진인 최전방 영등포 일대에서 브리핑을 받고 적 포탄이 사방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한강 너머 북한군의 동향을 살피던 장군의 눈에 전선 상황이 확연히 비쳐졌다. 예사롭지가 않았다. 북한군의 진격속도는 생각 훨씬 이상이었고, 한국군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미군이 도착하기 전에 국군이 부산까지 밀린다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 때 맥아더의 눈에 참호 속 한 병사(일등중사)가 눈을 부릅뜨고 한강변 전방을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당시 그 곳 방어는 급편한 수도사단 8연대 3대대가 담당하고 있었고, 그 병사도 전방에서부터 계속 밀려 후퇴해온 병사였다. 장군이 병사에게 다가가 질문했다.(당시 현장 통역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 김종갑(대령) 참모장)

 맥아더 장군이 진지를 지키고 있던 일등중사에게 “자네는 언제까지 이 호 속에 있을 것인가?”하고 물었다. 이에 그 일등중사가 “각하! 저는 군인입니다. 군인은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저의 상관이 철수하라는 명령이 있을 때까지 여기 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맥아더 장군이 병사의 말에 감격했음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그 이전 맥아더 장군께서는 채병덕 참모총장으로부터 ‘200만 장정 징집, 옥쇄(玉碎)’ 운운 브리핑을 받고 심사가 불편하던 즈음이었다. 이에 장군은 병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내가 곧 도쿄로 돌아가 지원 병력을 보내 줄테니 나를 믿고 안심하고 싸우라”고 말했다. 그리고 되뇌었다. “이런 병사가 있는 한 이 전쟁에서 한국군은 승리할 것이며, 이 병사를 위해서라도 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나갈 것이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이면에는 바로 숨은 이(런)한국군 병사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맥아더 장군을 감동시킨 이 병사는 2013년 사망한 故 신동수씨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2016년 정전협정 조인 63주년이자 정부가 2013년 국가기념일로 정한 <유엔군참전일>인 7월27일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서도 알려진바 있다. 영화 속 실화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필자는 시사회장에서 봤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을 꽃피우게 한 병사(兵士). 2016.8.5, 코나스> 제목으로 신동수씨와 관련해 칼럼을 썼다.

 故 신동수씨는 1950년 6월29일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서울 영등포의 한 진지(陣地)에서 맥아더 장군을 대했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그의 군인으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애국심을 보고 한국군을 적극 지원키로 마음먹고 지원군을 약속한다.

 맥아더 장군에게 인천상륙작전을 구상케 한 동인(動因)을 준 무명의 병사 신동수 씨는 전쟁이 터지자 스무 살에 자원입대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신 씨는 장군과 만난 사흘 뒤 후퇴 명령을 받고 퇴각하다 왼쪽 다리에 총상을 당하고, 결국 전쟁초기 후퇴 와중의 혼란된 상황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가 깊어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그럼에도 생전 그는 자신의 다리가 절단된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원망의 말을 뱉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만난 맥아더 장군으로 인해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지고 전쟁의 일대 변곡점(變曲點)이 된데 대한 자부심도 컸다고 한다.

 전황이 긴박한 시점이자 생사(生死)의 갈림길 상황에서도, 지휘관의 철수 명령을 받지 않았다며 참호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철저하게 수행한 군인의 모습은 숭고하고 거룩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맥아더 장군과 병사’의 대화 글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최강의 한파(寒波)와 동장군(冬將軍)이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한 이 순간에도 하늘과 땅, 바다, 국토의 전역에서 국토방위에 진력하고 있는 국군장병에게 감사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7년은 북한 김정은 집단의 6차 핵실험과 17회에 달하는 미사일 도발로 군 당국과 국군장병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5분대기조로부터 시작해 숱한 비상조치 활동, 각종 훈련은 물론 언제 터질지 모를 적 상황에의 대비태세로 단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전후방을 철통같이 지키는 국군장병이 있기에 국민은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고,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2018년 무술년에도 북한 김정은 집단의 도발은 언제 어느 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전해 올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은 60만 국군장병의 믿음직스럽고 튼튼한 보호막, 울타리가 있기에 든든하고 안도한다.

 국가와 국민도 60만 장병의 듬직한 보호자요, 응원군이 되어 우리 아들 ․ 딸들의 사기를 올려주고자 한다. 오늘도 찬바람 이는 휴전선 철책에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파고 높은 영해에서, 드넓은 창공 하늘에서 조국 대한민국 수호에 굵은 땀방울 흘리고 있는 장병에게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konas)

대한민국 국군 파이팅!(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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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아빠(heng6114)   

    이렇게 훌륭한 군인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을 지킬수 있었다. 우리도 국가안보의 제2보루로서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2018-01-29 오전 9:34:18
    찬성0반대0
1
    2018.6.21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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