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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물세 번째 발자국

인천광역시 남동구노인복지관 사회복무요원 공태빈 미담사례
Written by. 공태빈   입력 : 2018-02-14 오전 11: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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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배달을 하면서 마주친 단비 같은 하루

 일 년에 한 번씩 저의 가슴 속에는 어릴 때부터 새기는 발자국 그림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새 하얀 솜밭 같은 곳에 움푹 들어가 있는 발모양은 제 발사이즈만큼 매년 그렇게 꼬박꼬박 크기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올해로 23살이 된 저는 새해가 시작되는 날 가슴속에 발자국 하나를 더 새겼습니다. 예전처럼 더 이상 크기는 자라나지 않았지만 이번에 찍은 저의 스물세 번째 발자국은 제겐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일생에 처음으로 발을 내 딛는 방향이 달라지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 훈련소에서 군사교육소집을 마치고 남동구의 한 노인복지관에 배치된 지 한 달이 겨우 넘은 따끈따끈한 신입 사회복무요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복지관에 출근을 했을 때부터 선임 사회복무요원분들이 없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서류 정리 업무 같은 간단한 업무부터 차근차근히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어르신’ 이라는 대상은 평소 사회생활하면서 오며가며 잠깐 마주치는 분들이었는데 이제는 직접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대상의 변화로 나아가게 되어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매일 오전에 어르신들에게 도시락을 건네 드리는 식사 배달 업무는 혼자 사시는 독거 어르신들을 직접 마주해야하는 업무이기에 그 의미가 좀 더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식사배달을 처음 하는 날 첫 번째로 마주했던 한 어르신과 있었던 일입니다.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일러주시는 집으로 안내를 받아 겨우겨우 어르신 집을 찾아갔는데 밖에서 아무리 벨을 눌러도 안에서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순간 어르신이 주무시고 계시나 하며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돌려보았는데 문을 잠가놓지 않으셨는지 문이 쉽게 열렸습니다.

 “계세요 어르신? 저 남동구 노인복지관에서 나왔는데요...”

 어르신을 한 번도 뵌 적이 없기 때문에 기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몇 마디만 붙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저 멀리 불도 잘 들어오지 않는 음산한 느낌의 공간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시는 어르신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순간 너무 당황스럽고 겁이 나서 그저 시선을 땅에 둔 채 겨우 도시락을 건네 드렸습니다. 아마 그때 그 어르신께서도 낯선 총각 하나가 문 앞에서 멀뚱멀뚱 서있는 걸 보면서 적잖이 당황스러우셨을 것입니다.

 그 날 이후 그렇게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어르신과 저는 마치 벽이라도 껴 있는 것처럼 도시락을 사이에 두고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냈었습니다. 물론 도중에 먼저 어르신에게 말이라도 걸어볼까 했지만 생각이상만큼 먼저 말이 나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결국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라는 악 순환의 고리는 좀처럼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저는 그렇게 언제나 어르신에게 뒤를 보이며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속담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침부터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그 동안은 오전 내내 비가 오지 않더니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 비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식사 배달을 진행해야하는 제 자신에 대한 걱정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식사배달을 하다가 옷이나 신발이 젖지는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제가 식사 배달을 나서는 날, 비는 그 전보다 많이 내리진 않았고 우비를 입으면 크게 문제되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도시락을 하나하나 포장하며 식사 배달 길에 나섰고 어느덧 첫 번째 어르신 댁에 도착했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것이 있다면 제가 노란 우비를 입고 어르신 댁에 찾아간 것뿐이었고 저는 늘 그랬듯이 데면데면하게 어르신에게 도시락을 건네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는 어르신이 나지막이 “미안해요 총각..” 이라고 말씀하시며 슬며시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잠시 동안 어르신과 제 사이에는 짧은 정적이 흘렀고 저는 “아니에요. 괜찮아요.”하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다음 어르신 댁으로 향하는데 몇 안 되는 그 어르신의 말이 가슴에 남아 귓가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오랜만에 비가 와서 그런지 시간이 날 때마다 이상하게 자꾸만 창밖을 내다보게 되었고 저는 그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는 그날 이후 한 번도 바꾸지 못했던 제 인생의 발자국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평소 저의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제 입장만 고수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그제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 커지는 발처럼 가만히 시간을 보내며 사회복무 기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2년의 시간 동안 제 자신을 바꾸고 어르신 눈높이에 맞는 사회복무요원이 되기로 다짐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안녕하세요. 어르신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다짐 뒤에 이어진 저의 첫 번째 변화는 ‘식사 배달 길에 만나는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 드리자’ 라는 작은 목표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뵙기 전에 “안녕하세요 어르신, 오늘도 식사 맛있게 드세요!” 라는 짧은 멘트를 준비해 하루에 몇 번씩이나 머릿속에 각인시켰습니다. 그리고 어색한 말투와 표정을 고치기 위해 거울을 자꾸 보면서 연습했습니다. 충분히 연습도 많이 하고 제 스스로가 만족할 정도가 되자 조금씩 어르신들에게 다가가는 게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처음 며칠 동안은 어르신들에게 웃는 모습으로 다가갔고 또 며칠 뒤에는 “안녕하세요. 어르신” 하면서 조금씩 말을 붙여보았습니다.

 어르신들도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떨떠름해 하시거나 당황스러워 하셨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고개도 끄덕여주시고 웃음기 있는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니 마침내 하루 평균 30여 곳의 어르신들 댁을 방문할 때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식사 맛있게 드세요!” 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두 달이 흘러 따뜻한 말 한마디가 쌓이고 쌓이자 이제는 환해진 등불 아래에서 빈 도시락 통을 들고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어르신들과 저는 이젠 크게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도 눈만 마주쳐도 웃음 짓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늘 건네 드리는 따뜻한 도시락만큼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은 울림이 큰 울림으로

 제게 있어서 마음속으로 느낄 수 있었던 그 때의 작은 울림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식사 배달을 하며 만났던 어르신들이 30명이라면 복지관을 다니시는 어르신들은 그 보다 10배 많은 약 300명의 어르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가히 어르신들의 학교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정말 많은 어르신들이 복지관을 이용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식사 배달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힌 인사법을 십분 활용하여 복지관의 모든 어르신들께 가장 먼저 다가갔습니다. 인사를 드렸던 어르신을 다시 마주쳐도 “안녕하세요! 어르신” 하며 또 인사했고 급기야 복지관이 아닌 집 앞에서 동네 어르신을 만나도 저도 모르게 허리가 들썩 들썩 거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행동의 변화를 통해 어르신들에게 다가서자 어르신들은 “아이고 씩씩도 해라”, “원래 공 씨들이 성격이 좋아” 라며 기분 좋게 웃으며 받아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인사’라는 작은 행동수단은 복지관을 ‘하하 호호’하며 건강하게 웃을 수 있는 어르신들의 기분 좋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복지관의 관장님께서는 저의 그러한 부분들을 높이사주셨고 저희 복지관에서 최초로 사회복무요원 표창장과 포상 휴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르신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입니다. 예전에 복지관에서 설문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혼자 집에 살고 계셨고 집에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이 1년이 넘은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르신들에게 ‘인사’는 그러한 공허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좋은 역할이 되어주었던 것 같고 어르신들의 시원한 웃음소리는 그에 대한 큰 울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따뜻한 사회복무요원이 되겠습니다”

 지난 22년동안 찍어왔던 저의 발자국들을 돌아보니 제가 너무 제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혼자서만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찍은 저의 스물세 번째 발자국은 ‘마이웨이’가 아닌 ‘하모니웨이’처럼 “하얀 솜밭 같은 곳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겠다.” 라는 의지를 담은 저의 작은 표명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바뀐 발자국의 방향처럼 제 자신이 먼저 다른 이들에게 인사하며 다가서고 혼자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과 함께 걸어 나가는 발자취를 남길 것입니다.

 또한 저는 지난 사회복무요원들을 대상으로 한 직무 교육을 다녀와서 우연히 국가기관 홈페이지에 교육 후기를 남긴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2주라는 시간동안 ‘노인’이라는 대상이 어떠한 대상인지 또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워주었던 것이 저에게는 꽤나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부분들을 진솔하게 써 나갔던 것이 운이 좋게 한 달에 한 번 뽑는 우수 게시자에 선발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때 있었던 시간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즈음 우연치 않게 유명 포털 사이트에 제 이름을 쳐보았는데 그때 썼던 그 글이 조그맣게 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체 내용이 다 실려 있지는 않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던 제게 그때 썼던 단 한마디의 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사회복무요원이 되겠습니다.”

 아직도 그 글귀를 볼 때면 제 가슴속 한 편에는 불타오르는 무언가가 남아있습니다. 어르신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앞으로 많이 남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복무기간이 많지는 않지만 어르신들에게 좀 더 웃는 모습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내년에 찍을 스물네 번째 발자국에는 마른하늘에 단비가 내린 것처럼 누군가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보다 깊이 있는 발자취를 남기고 싶습니다.(konas)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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