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물푸레마을, 우리에게 왜 평화가 필요한가

참전용사의 기념비를 통해 우리에게는 어떤 방식의 전쟁도 필요하지 않고, 오로지 평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Written by. 이만종   입력 : 2018-02-26 오전 9:46:05
공유:
소셜댓글 : 0
twitter facebook

 정초, 겨울이 남아있는 용인시의 법화산에서 흰 꽃을 활짝 핀 물푸레나무를 만났다.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무적영웅인 아킬레우스의 창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나무다.

 북유럽 신화에서도 위그드라실(Yggdrasil)이라는 거대한 물푸레나무가 나온다. 우주를 뚫고 솟아있어 우주수(宇宙樹)라고도 하는데, 신들의 세계가 종말을 고한 후 전쟁의 신인 오딘이 이 나무 밑둥으로 남자를 만들고, 남자의 동반자가 되도록 곁에 있던 느릅나무 가지를 꺾어 여자를 만들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신화가 있다. 성경 창세기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이처럼 전쟁신화를 담은 나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어디를 가나 산속의 작은 개울가에 아름드리로 자라는 큰 나무로 잔가지나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푸른 물이 우러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럽의 신화만이 아니라 한국전쟁이 남긴 비극적인 역사에도 물푸레나무는 등장한다. 박건웅의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이라는 만화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게 패퇴하기 직전, 공산군에게 협력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군과 경찰들이 양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국민보도연맹’ 사건시, 그날의 참혹하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살육의 현장을 산속의 어린 물푸레나무가 목격하고, 이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형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물푸레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지역이어서 지명이 붙여진 곳 중의 한곳이 용인시에 위치한 법화산의 ‘무프레 고개’이며, 그 아래 마을 이 ‘물푸레 마을’이다.

 자연의 이름을 가진 만큼 공기좋고 아름다운 마을이지만, 이곳은 한국전쟁 시 가장 치열한 전투였던 ‘썬더볼트 작전’의 중심지역인 ‘검단지맥’의 시작점이다.

 검단지맥은 한남정맥 향린동산에서 분기되어, 법화산, 불곡산, 영장산, 남한산성, 검단산을 지나 팔당댐으로 이어지는 45km 정도의 짧은 산줄기를 말한다.

 한국전쟁 시 이곳 주변에서는 서울 재탈환을 위한 UN군의 총 공세작전인 ‘썬더볼트 작전(천둥번개작전)’이 전개되었다. 1951년 중국 인민지원군 및 조선 인민군의 대공세에 맞서 ‘매슈 리지웨이 장군’의 지휘 하에 국군 6사단과 미군 24사단, 그리스 연합군이 함께 실행한 반격작전이었다. 치열했던 전투의 전장이었지만, 이 작전은 유엔군의 서울 수복 전투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많은 전사자가 발생하고, 묻힌 곳이다. 2012년 5월 용인시와 육군 제55보병사단은 74구의 전사자 유해와 전투화, 군번줄 등 유품 500점을 발굴하고 뒤늦게나마 기념비를 세웠다. 법화산 정상의 ‘평화의 쉼터’이다.

 당시 치열했던 이곳 정상 아래는 지금은 물푸레 마을 휴먼시아 3단지 아파트가 있다. 녹음속의 콘도 같은 평화로운 아파트 단지로 명성이 있지만, 반세기전 그곳에 남은 국군의 희생은 역사 속에 고요하기만 하다. 이곳과 가까운 무명457고지에서는 산화한 국군 전사자 유해의 팔목 뼈에 주인과 운명을 같이한 손목시계가 채워진 채 발굴되었었다. 멈춰 버린 시간이었기에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처럼 처연함이 깊이 느껴진다.

 그러나 비극이 끝난 지 반세기도 넘어 68년이 된 지금도 한반도의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우리의 산하는 오래된 물푸레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허리가 동강나 있고, 준전시상태에서 하루를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무심한 등산객과 스산하기만 한 법화산 정상의 기념비를 보면서 과연 인류 역사에서 좋은 전쟁이 있었냐고 묻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어떤 방식의 전쟁도 필요하지 않고, 오로지 평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래서 이곳 평화의 쉼터 기념비는 나라를 위해 전쟁으로 희생된 조상들에게 다시 역사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반세기전 전쟁의 아픔을 포착하고 그 안에서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것을 의미하는 장소로서 기념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순국한 희생자들의 정체성은 영웅적 덕목이나 계보적 가치의 크기를 기준으로 측정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역사의 지평에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초 무심코 지나치는 산행의 길목이었지만 반세기도 더 넘는 시간동안 이산의 골짜기에서 조국을 지키다 아무 표지도 없는 채 뒤엉켜 묻혔을 주검과 이를 지켜보았을 물푸레나무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단단해 좀체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처럼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무명용사의 몇 조각의 뼈는 우리에게 평화가 왜 필요한가를 말해주는 역사의 뿌리에 여전히 박혀 있는 뼛조각들이다.(konas)

이만종(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한국테러학회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인쇄하기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18.8.19 일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깜짝뉴스 더보기
하계 휴가철 인터넷 사기(휴가 용품, 여름 가전 등) 주의!
2018년 하계 휴가철을 맞이하여 우리 국민은 55.2%가 여름휴가..
세상사는 이야기 더보기
아빠, 아빠! 세영이 먹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