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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 4월의 호국인물 故 최종봉 공군소령 선양행사 열어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기여하고 백구부대 여의도기지 작전 성공적으로 이끌어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8-04-05 오후 4: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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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당시 공군 백구부대 여의도기지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4월의 호국인물 故 최종봉 공군소령을 선양하는 행사가 5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유가족 및 공군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1926년 11월 경상북도 청도면에서 출생한 故 최종봉 공군소령은 청도 공립심상소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다치아라이 육군 비행학교를 졸업한 후 1949년 2월 17일 육군 항공군 사령부에 조종 하사관으로 입대하였다.

 1950년 4월 공군 소위로 임관한 최 소령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L-4 연락기 조종사로 복무하며 정찰, 전단살포, 지휘관과 부상병 수송 등의 임무를 맡았다. 또 연락기에 무게 30파운드(약 14㎏) 폭탄과 수류탄을 싣고 출격해 남하하는 북한군을 공격해 공을 세웠다. 

 ▲ 6·25 당시 공군 백구부대 여의도기지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4월의 호국인물 故 최종봉 공군소령을 선양하는 행사가 5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유가족 및 공군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konas.net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필사의 방어작전을 수행할 때는 총 65회에 달하는 정찰임무를 통해 북한군의 상황을 세밀하게 제공함으로써 유엔군이 방어선을 사수하고 반격을 준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50년 9월 대한민국 공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평양의 미림비행장까지 진출하면서 일부 작전요원과 비행장 확보 인원을 대전기지에 잔류시켰는데, 당시 대전기지의 잔류병력을 지휘하던 김신 중령은 조종사와 정비사 등 총 20명으로 1개 전투단위 부대를 창설했다. 이것이 바로 백구부대다.

 이 기간에 최 소령은 한국 조종사 9명과 함께 F-51D 전투기로 1차 기종 전환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전투비행중대로 편성됐다.

 ▲ 4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故 최종봉 공군소령의 유족이 5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에서 거행된 선양행사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konas.net

 1951년 3월 백구부대로 전속되어 여의도 기지(K-16)로 이동했다. 최 소령은 딘 헤스 중령과 F-51D 전투기를 타고 출격하여 평강 북쪽 신대리 적 후방보급로 공격을 시작으로 4월 10일까지 북한 서부지역의 적 주요 보급로 차단작전과 아군 지상군에 근접지원작전 등 총 10회의 적진 출격작전을 감행하여 연료 집적소 2개소, 보급품 적재 차량 18대 등을 파괴하는 등 다대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4월 16일 편대장으로 편대를 이끌고 이천지구에서 적의 후방보급로 차단을 위해 출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지상포화에 피탄되자 귀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애기(愛機)와 함께 적진에 돌입하여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전공을 기리어 전사 후에 소령으로 일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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