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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없다. 이젠 만리장성이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본 자랑스런 우리나라"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8-09-04 오후 5: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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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들 밖에 안 보였습니다. 그 다음에 태극기와 국민들이 보였습니다. 말로 표현할 정도로 너무 고맙고 감사한 생각이 제일 많이 지나갔습니다. 국민들 덕분에 금메달 땄습니다. 지금 내가 (메달을) 걸고 있지만 내 것이 아닌 국민들의 금메달 입니다.”

 온몸이 땀으로 절어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지만 지금까지의 힘든 여정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무너트린 손흥민 축구 국가대표(U-23세 이하) 선수의 인터뷰 말이다.

 경기장에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속에서도 뛰고 넘어지고 뒹굴며 목표를 향해 온몸을 던졌다. 축구 조별예선 첫승의 상대 바레인 전에서, 0-1로 내준 말레이시아 전의 안타까움, 8강전 우즈베키스탄 전의 천당과 지옥으로 오감은 말할 나위 없고, 최종 일본전에 이르기까지 살얼음판 같은 ‘2018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축구 경기를 지켜본 우리 국민들은 선수와 국민 모두가 하나 되는 일체감을 맛보았다.

 그 정점에는 영원한 숙적 일본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2018년 9월 1일 그날에 일본은 없어 보였다. 한국과 일본의 여자배구, 남자야구, 남자축구의 중계방송이 전파를 타던 경기장에서 욱일승천이라는 일장기(日章旗)는 폭우에 휘말려 축 늘어진 비둘기 날개마냥 측은하기 그지없었고, 일본은 아예 없었다.

 어디 그 뿐이랴? 그에 반해 손에 땀을 쥐고 태극기를 흔들며 선수들에게 기(氣)를 불어 넣고자 목청껏 소리치며, 응원에 일관하던 우리 교민과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은 영원한 나의 자랑스런 조국이었다.

 더더욱 그것도 상대가 아직도 우리를 얕보며 지난날 저들 조상들의 잘못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죄나 반성은커녕 힘센 나라에는 비굴하리만치 아부하면서도, 약한 주변국에 대해서는 경제력을 앞세워 ‘오만방자’하기 이를데 없는 일본이기에 우리선수와 국민의 기쁨, 자부심과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9월 1일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시간차를 두고 진행된 ‘한-일전’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시청자들의 눈과 귀는 방송사의 중계방송 채널 맞추기에 바쁘고, 그 때마다 선수들의 한방이 터질 때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함성과 박수로 함께 호흡을 같이했다.

 여자 배구 동메달 결정전, 2:1로 여유 있게 점수를 벌려가며 승기를 잡아 4세트 마무리를 앞둔 순간 듀스가 오가며 숨 막히는 접전의 마지막 고비에서 김연경 선수의 강타가 일본 진영에 꽂히며 승리를 거두는 순간 필자의 손바닥은 어느새 벌겋게 변색돼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국기(國技), 야구에서는 오히려 훨씬 여유 있는 관전으로 3 : 0 승리를 지켜봤다. 일본은 이미 침몰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이어 시작된 한국과 일본의 축구 결승. 숙명의 대결은 팽팽한 긴장 속에 찬스와 위기가 교차되면서 전·후방 90분 0 : 0이 휙 지나갔다. 다시 시작된 연장 전반 3분 손흥민의 도움과 이승우 선수의 선제 폭발적인 강슛-골, 이어 황희찬 선수의 추가 점프 헤딩슛이 작렬해 순식간에 2 : 0으로 앞섰다. 마지막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2 : 1 대한민국의 승리다.

 현지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은 말할 나위 없고, 저녁시간 TV중계를 지켜보던 국민들에게 이미 일본은 없었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단체 종목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은 배구, 야구에 이어 축구까지 완벽하게 일본을 제압, 붕괴시킨 것이다. 그 주역이 바로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청년들이었다.  

 일본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유독 대한민국에는 콧대를 낮추려 하지 않음을 본다. 근대사회 일제 36년 처절한 식민 지배를 통해 저들은 이 나라를 송두리째 앗아갔고, 분탕질했다. 1905년 11월 17일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회의가 경운궁(덕수궁)에서 열렸다. 일본 특사 이토 히로부미(조선침략의 원흉, 후일 초대 조선통감)가 참여하고 있었고, 궁궐 밖에는 무장한 일본 군인들이 회의장을 둘러싸고 감시하고 있었다. ‘제2차 한일협약’, 이른바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현장이었다.

 일단의 일 헌병과 군인들은 경성(서울)시내를 돌며 무력시위로 고종과 협약을 반대하는 조정 대신들을 압박하면서 대신들을 압박, 서명케 했다.

 이후 1910년 8월 한일병합과 함께 무단통치가 자행됐다. 경기도 수원 제암리 교회 학살, 총칼을 통한 3.1독립운동 만세진압, 관동 대학살, 위안부 만행에 우리 땅 독도를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 표기), 자국영토라 내지르는 궤변에 교과서 수록 등 어느 사실 하나 올바르게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 정가와 정객들은 물론 극렬 우익들의 치졸함은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오늘의 일본이다. 

 보도에 의하면 이번 결승에 앞서 일본축구협회(JFA)가 우리 대표팀 깎아내리기에 가관이었다고 한다. JFA는 경기 전 공식 라인업을 발표하며 시간과 장소 등을 알렸는데,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21세 이하 일본 대표팀 대 23세 이하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열립니다"라고 강조했다는 것. 우리의 와일드카드 3명(손흥민·황의조·조현우)을 의식한 행위다. 졸렬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9월 1일 결승전이 열린 인도네시아 보고르 치비노의 파칸사리 스타디움. 한-일전에 나선 우리 선수들은 모두가 의연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휘슬이 울리는 순간까지 혼신의 열정을 다한 선수들. 그 선수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를 불어 넣어주던 객석의 관중, TV앞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국민들, 모두가 대한민국의 애국자들이었다.

 이제 우리도 한 단계 더 도약하자. 배구에서, 야구와 축구, 전 스포츠 종목을 넘어 국민의식 수준에서도 일본을 앞서자. 그리고 나아가자. 오래지않아 ‘대국’이란 별칭이 무색하게 보이는 중국을 넘어설 기개를 갖추어 가자고.

 “선수들 밖에 안 보였습니다” “다음으로 태극기와 국민들이 보였습니다”라는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 선수의 말을 통해 새삼 되새기게 된다. ‘국가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더불어 자랑스런 국민으로서의 나, 우리가 있음으로 국가 또한 더 빛나게 된다는 사실도.(konas)

이현오(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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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18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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