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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① <최우수상> "디딤돌이 되어주는 길"

"청각장애 딛고 지역아동센터 학생들 꿈이루게"
Written by. 최동원   입력 : 2018-09-28 오전 8: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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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무청이 지난 4월부터 2개월 동안 사회복무요원을 대상으로 체험수기를 공모해 채택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8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집 「2018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7일 발간했다. 코나스는 우수작을 중심으로 편찬된 수기 내용을 병무청의 협조아래 게재한다. 아래 내용은 병무청이 이 날 발간한 「2018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최우수상’ 글임.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저는 춘천지역아동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 최동원입니다. 현재 초등학생 1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총 30여명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함께 웃고, 때로는 울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여태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선생님이라고 듣게 될 것이라고 예상을 못했지만, 이곳에서 저는 선생님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앞으로 그 친구들이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며 진정한 멘토가 되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10대의 시절

 저는 6살때에 심각한 중이염에 걸려 서울에 있는 아산병원에 주기적으로 왕복하며 병원생활을 하며 다녔습니다. 큰 수술을 10번 정도를 하며 그 동안에 한쪽 귀가 잘 들리지가 않은 상태로 자랐습니다. 잘 들리지가 않아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고, 이러한 이유로 대화도 잘 못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프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힘이 되어주시고, 저의 버팀목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가족들이 있었고, 그 곁에 항상 계셨던 교회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10년동안 지내고 16살이 되었을 때에 마지막 수술을 하여 잃었던 청력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저는 세상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고, 저를 지켜주시고 버팀목이 되어준 모든 가족들에게 감사하며 살아야겠구나하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대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진학을 하면서 저는 어떻게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보답해야 할지를 고민을 했습니다. 그 고민을 계속하며 결론을 내린 것은 제가 꿈을 찾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 사람의 버팀목이 되어서 도와주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상 못했던 길

 마지막 수술을 하기 전에 의사 선생님께서 한 가지 물어볼게 있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술을 하게 되면 청력이 회복하여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지만, 남들처럼 군대를 가야한다. 하지만 이 수술을 하지 않고 때를 놓치게 된다면 수술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가 스스로 결정을 해라.” 저는 정상인처럼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고. 그렇게 살기 위하여 모두가 저를 응원하셨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한 후 병무청에 가서 검사을 받았더니 그 결과 눈 시력이 안좋아서 신체등급 현역2급을 받았습니다. 제 주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면제를 받거나 혹은 4급을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빠지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저는 부럽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현역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겠지만 그만큼 얻어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활을 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조언을 구했는데 그 중에서 군대를 장교로 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꿈과 관련되어 있는 공군으로 가기 위해 휴학을 하고, 영어공부를 비롯한 장교시험을 준비하며 4년을 보냈습니다. 체력검사를 위해서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 할수록 무릎이 너무나 아팠지만, 끝까지 참고 계속 준비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혹시 모르니 무릎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그 권유를 받고 여러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지만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이대로 군대에 가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를 않아 마지막으로 의정부에 있는 병무청에 가서 재검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담당 의사가 저보고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거 같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왜 하셨는지를 몰랐는데 검사 결과 제가 한쪽이 틀어진 평발이었습니다. 그 이유로 저는 4급으로 판정을 받으며 사회복무요원으로 되었습니다. 그동안 장교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4년을 보냈던 시간이 너무나 아까운거 같아 억울했습니다. 장교가 되는 길을 평발이라는 이유로 포기하게 되었고, 늦은 나이에 입대를 하여 이곳 지역아동센터에 오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던 곳

 사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기 전까지는 지역아동센터라는 곳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이유가 아마 친구들이 공부방이라고 말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다양한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교육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친구,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친구,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온 친구, 부모님의 맞벌이로 집에 늦게 오셔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친구 등 많았습니다. 각자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어서 한 명, 한 명 마음으로 케어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있었고, 연구실에 다녔다는 이유로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맡았고, 저랑 같이 배정받아 함께 일하게 된 친구는 초등학생을 맡기로 했습니다. 중학생 친구들은 사춘기에 들어오면서 예민할 때가 많아서 처음에는 천천히 다가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적응을 하며 출근했는데, 어느 날 저의 10대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수술을 끝마치고 나서 결심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내가 그 날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주겠다고 결심을 해서 여기에 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하며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이 난 이후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무섭지가 않았고, 친구처럼 다가가 현재 무슨 고민이 있는지 듣고, 그 친구들이 부족한 과목들을 가르쳐주고,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도 필요한 문제집을 만들어주며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며 도와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니 아이들이 저에게 마음을 열어줬습니다. 이 친구들은 진심으로 저를 받아들이고, 나중에는 사제지간으로서가 아닌 친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사랑을 해줘야 하는 입장인데 오히려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아이들에게 분이 넘치는 사랑을 받아서 그런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친구들은 각자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여 지금은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지만 이 친구들이 나중에 사회에서 멋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번 맺은 인연은 다시 만난다고 하는데, 우리 모두가 멋있게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다시 보게 된다면 서로 웃으며 만나고 싶습니다.

디딤돌이 되어, 한 친구를 위한 꿈의 발판이 되어주고..

 저는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하기 힘들어했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인문계를 목표로 판검사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아이였습니다. 꿈을 포기하거나 바꾸는 등 여러 번 반복하며 살기 싫다며 힘들어 했습니다. 이 친구는 자신의 방법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성적은 이 친구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는 시험을 볼 때마다 자신감을 잃었고,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저는 이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이 친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먼저 상실했던 의욕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하며 이 친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었는데, 음식점 빕스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가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딱 이것이다 생각하고, 친구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이번에 평균을 30점을 올려서 70점을 넘기게 된다면 내가 빕스를 데리고 가겠다. 하지만 못할 시에는 방학 때 나와 함께 출근을 해야 한다.” 이 제안을 들은 이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첫 번째는 빕스를 잘하면 갈 수 있다는 것과, 두 번째는 그 친구가 평균을 30점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지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벌써부터 저와 같이 출근을 하는 것을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친구가 어떠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고, 이 친구를 도와줄 수 있는 다른 선생님들을 찾아봤습니다. 우리 센터에 가장 큰 장점은 대학부 청소년 교육봉사자 선생님들이 많았고, 근로 장학생으로 오시는 선생님들도 많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장점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전공을 살려서 과학을 맡고, 나머지 과목들은 도와줄 수 있는 선생님들을 찾아 이 친구를 도와주었습니다.

 몇 달 동안 이 친구는 과목별로 선생님들로부터 숙제를 받아 공부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가 않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조금씩 적응해가자 이 친구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중간에 한번씩 이 친구가 어떤지 생각도 듣고, 조언도 많이 했습니다. 이 친구가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친구들이 자기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하고, 가족들도 공부 안하고 게임만 한다고 구박하곤 했는데 대우하는 게 달라졌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한 사람이 변하면 주변 사람들까지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시험 본 결과 이 친구는 시험에서 평균 35점을 올렸습니다.

 아무도 예상을 못했던 것이라 지도했던 선생님들도 센터 종사자 선생님들도 엄청 놀라워했습니다. 저는 약속대로 이 친구를 빕스에 데리고 가서 같이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계기로 이 친구가 자신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밝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생각치도 못했던 강원도교육청에서 상까지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기뻐하고, 잔치를 벌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본 중학교 친구들은 이러한 수업방식에 같이 참여하게 되었고, 저는 이 수업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일지를 만들었고 나중에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엔 이 친구가 평균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인문계를 갈 수 있는 성적이 되었고, 결국 이 친구는 꿈에 그리던 인문계를 진학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끔씩 센터에 방문을 하여 자기가 요즘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근황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때를 생각을 하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구나 느꼈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 친구에게 너도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도 해주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디딤돌이 되어주는 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서 디딤돌이 되어주는 일은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하며 좋은 이미지가 되었지만,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엔 저는 똑똑하고 무엇이든 다 잘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성격도 인성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일처리 면에서도 실수할 때가 많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실수를 하고, 때로는 이러한 것들이 겹쳐서 좌절하고 다니기 싫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제가 받아온 사랑을 누군가에게 다른 방법으로 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는 일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특별한 경험도 없고, 잘하는 일도 없고,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그런 말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을 투자할 필요도 없고, 어떠한 능력도 필요로 하지 없고, 특별한 경험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모님이든 친구든 누군가한테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있으면 됩니다. 결국엔 사랑받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받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흘려보내어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저와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konas)
춘천지역아동센터 최동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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