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③ <우수상> "사회복무요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사회복무를 통해 꿈과 직업을 그리다"
Written by. 김동호   입력 : 2018-10-01 오전 11:26:13
공유:
소셜댓글 : 0
twitter facebook

꿈과 희망이 말라버렸던 나

 대부분의 사회복무요원들은 별 탈 없이 훈련소를 입소해서 훈련소를 잘 마치고 사회복무에 관한 이야기를 싱글벙글하면서 시작을 할 텐데 저는 사회복무를 하기 전까지 별 탈이 많아서 사회복무를 하기 전의 얘기를 좀 들려드리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짐을 헐레벌떡 챙기면서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여행을 다녀오시나 보다 해서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그 이후 아버지는 저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새벽에 나가시고 저녁 늦게 들어오시거나 일주일 동안 집에 안 들어오시는 날도 많았죠.

 그 공백을 큰형과 작은형이 밥과 청소 학교가는 것까지 챙겨주었지만 두 형이 없을 때는 제가 혼자 알아서 밥을 먹고 청소도 했죠. 중학교 때는 건장한 아저씨들이 집에 소위 빨간 딱지(압류딱지)를 붙이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죠. 그 때까지만 해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 두 달이 안되어 가던 즈음에 아버지가 목을 매셔서 돌아가셨습니다. 딱 고등학교 첫 제주도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여서 즐거운 고등학교 생활의 시작이 아버지의 죽음이었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그렇게 떠나신게 저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꿈을 꾸는게 아닌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고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친척분들께서 귀뜸을 해주셨는데 저희 아버지가 도박을 하시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빚을 져서 결국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희 집까지 팔릴 위기에 있었는데 간신히 고모께서 빚을 갚고 막아주셔서 집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저는 꿈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 가득 했고 고등학교 절반을 무단 지각 무단 결석으로 채워졌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께서는 진지하게 학교를 그만 두고 검정고시를 권유하기도 하셨죠. 하지만 큰형과 작은형은 학교는 그래도 나와야 한다고 하여 꾸역 꾸역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목을 맨 집과 고향이 싫어서 서울로 도망치듯 올라가 고시원을 전전하며 막노동과 알바를 하다가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는데 제가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저희 집에 사회복무요원 소집 통지서를 보냈었는데 당연히 아무도 없는 집에 받는 이는 없었고 소집하는 날 소집되지 않은 저는 결국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피의자 신분으로 처음가본 경찰서의 공기는 차갑기만 했고 경찰관의 험악한 인상도 무서웠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이러면 안되었는데... 사회복무를 신속히 이행한다는 조건으로 검사님께서도 재판에 보내지 않고 관용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게 저의 첫 사회복무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많은 반성을 하면서 훈련소 생활을 별 탈없이 보냈고 저의 근무지인 여수 에덴동산으로 첫 출근하는 날 저의 꿈과 직업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꿈이 있었던 거주인들

 “세상에 나만 큼 힘든 사람 나와보라고 그래?” 사회복무를 하기 전 저의 머리 속에 뿌리 박혀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장애인 시설에서 근무를 해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생활하는 몇몇 분들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는 것은 기본이고 아예 부모님도 없고 친척이나 아는 분들도 없으셔서 명절 때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몸과 정신 또한 불편하셔서 사회복지사 분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은 저처럼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 대신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와 웃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계셨습니다. 늘 아침에 출근을 하면 ㅇㅇ씨와 ㅇㅇ씨가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서 활기차게 “김동호 선생님 안녕하세요.”인사를 해주십니다. 젊었을 때 교통사고로 팔을 다친 ㅇㅇ씨는 밥을 배식할 때나 목욕을 시켜드릴 때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저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해주셨는데 사실 저한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 하나가 그 분들에게는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다는 것을... 대부분을 거주시설 안에서 지내야 하는 장애인 분들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산책이나 나들이 드라이브입니다. 밖에 나가자고 말 떨어지기 무섭게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옷을 챙기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 또 소풍을 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복무에 대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서 말이죠. 그리고 이 분들에게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항상 감사하는 마음 뿐 만 아니라 저에겐 없는 또 다른 것이 있었는데 각자 작지만 소박한 꿈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ㅇㅇ씨는 한자를 마스터 하기 위해 태블릿 PC로 점심밥을 먹고 한자공부 앱을 다운받아서 공부를 하셨고 ㅇㅇ씨는 성경책을 독파하기 위해 하루 종일 성경책을 붙들고 계시는 분도 있었고 연애와 결혼 집사는 것도 계획중인 분도 계셨습니다.

 흔히 요즘 저희 세대를 보고 5포세대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집도 포기한 세대라고 말하는데 장애인 분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 뿐이네요. 이러한 자기 반성을 매번 집에 가는 버스안에서 하고 자다가도 하고 근무하면서도 문뜩 문뜩 구름처럼 스쳐지나 가면서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짐을 하게 되었는데 저처럼 혹은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꿈을 갖게 된 나

 그리고 어느 날 근무하는 곳의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사회복지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씀해주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또 한번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제가 힘들어서 남을 도와 주고 싶다는 감정이 있다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를 몇 개월 하지도 않았는데 장애인분들을 전문적으로 케어하는 사회복지사를 할 수 있겠는가...라는 고민을 일주일 정도 하다가 원장님에게 조언이라도 듣고 싶어서 저의 고민을 말씀 드렸는데 사회복무요원 2년간의 사회복지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이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발판이라는 원장님의 조언으로 아침 9시 ~ 오후 6시까지는 열심히 장애인 분들을 위해 일하고 퇴근 후 인터넷으로 사회복지사 2급 강의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사회복지사를 이론적으로 공부하다 보니깐 사회복무요원 헌장에서 “우리는 사랑과 나눔으로 맑고 밝은 사회복지에 기여한다.”라는 구절을 보고 사회복무요원도 어떻게 보면 “리틀 사회복지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무 활동을 정말 잘하는 것이 제가 미래에 사회복지사를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였죠. 사회복지사라는 꿈을 가지게 된 후 저의 사회복무요원 복무가 좀 더 책임감 있게 변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에덴동산 거주인 분들 하나 하나 행동을 보며 그 분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격은 어떠한지 그에 따른 대처방안은 어떠한지 면밀히 분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ㅇㅇ씨는 늘 실내를 배회하며 알록달록한 물건이 있으면 입에 가져가서 먹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실내에 알록달록하고 과자의 형태를 지닌 물건은 일체 놔두지 않아야 하고 밥을 드실 때는 항상 씹지 않고 삼키셔서 음식을 잘게 잘라드려야 합니다. ㅇㅇ씨는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며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면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고 옆 사람을 때리며 흥분을 하시는데 그런 행동을 보이면 잘 타이르고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어 드리면 금방 진정을 하고 웃곤 하십니다. ㅇㅇ씨는 밖을 항상 돌아다니면서 창고에 물건을 뒤지거나 하시기 때문에 창고는 항상 볼일을 보면 잠궈야 하고 밖에 위험한 망치라던가 곡괭이 같은 것은 쓰고 바로 창고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ㅇㅇ씨는 비만이라서 많이 먹으면 안되는 분인데 꼭 많이 달라고 하십니다. 건강에 안 좋다고 많이 안준다고 하면 얼굴표정이 어두워지고 곧바로 숟가락을 던지거나 화를 내시는데 육류는 최대한 줄이고 채소비중을 늘리며 ㅇㅇ씨에게 많이 줬다고 해야 ㅇㅇ씨는 웃으며 좋아하십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는지 이론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경험적으로 체득하는 것이 더 빠르고 좋은 것 같아요. 물론 거주인 분들이 흥분을 하거나 하면 힘들기도 하지만 이 분들의 마음을 최대한 이해를 하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고맙다고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이러한 뿌듯함이 사회복지사의 꿈을 한걸음 더 다가가게 만들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사회복무는?

 저는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나름 굴곡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사회복무를 하면서 장애인들이 불편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꿈이 있는 모습을 보고 제 인생을 돌아보며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죠. 내면의 성찰을 바탕으로 저의 꿈을 생각하게 했고 “사회복지사가 되야겠다.”라고 결단을 내리게 해준 것은 사회복무 덕분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경험은 학교 같은 곳에서도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좋은 경험인 것 같습니다. 대충 시간만 떼우고 2년을 보낸다면 그것은 사회복무요원에게 있어서 허송세월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하나라도 배워가야 하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회복무에 임한다면 저처럼 직업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겠죠.

 남은 1년 동안 사회복무를 열심히 하면서 장애인들에게 친구같은 사회복무요원으로 다가가서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사회복무가 끝날 때 즈음에 사회복지사 자격증 또한 따서 정말 후회없는 2년의 시간이 되었다고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기를 다짐해봅니다.(konas)

에덴동산 김동호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인쇄하기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18.10.22 월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깜짝뉴스 더보기
실수로 지나쳐 미납된 통행료, 간편하게 내는 법
깜빡 잊고 내지 못한 통행료! 영업소 방문 없이도 간편하게 납..
세상사는 이야기 더보기
아빠, 아빠! 세영이 먹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