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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⑧ <입선> "괜찮은 사람"

"낯선 땅, 익숙한 곳에서의 마침표를 찍는 날"
Written by. 강현우   입력 : 2018-10-04 오후 4: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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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땅에서의 첫걸음은 복잡한 감정으로 시작했다.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떤 일이 있을지 쉽게 예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겐 여수시 경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의 첫걸음이 그랬다. 처음 여수 부둣가에서 바라본 경도는 거리감 있는 섬이 아니었다. 배를 타고 몇 분만 가면 되는 거리였고, 부둣가에서도 바다 건너에 있는 섬의 윤곽이 다 보였다. 부두 가장 가까운 곳의 건물이 하얀색이고 나무의 초록을 가득 머금고 있는 섬. 경도'라는 섬은 여수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름만 알고 있는 정도로 학생이 50명도 안 되고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오는 학생도 있다는 것은 복무하면서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보조하는 일은 내게 낯선 일이었다. 새로 접해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해야 할지, 말투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솔직히 특수학생을 보조해야 한다는 말에 지레 겁먹었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처음 만난 ○○이가 내겐 낯설었다. 간밤에 생각해 놓았던 말들은 잊어버리고 "안녕.ˮ이라면서 ○○이에게 말을 건넸다. 어떤 특별한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많이 긴장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이는 "안녕하세요, 선생님.ˮ 이라고 말하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 아이의 웃음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웃음을 짓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아이와의 시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갈 것 같았다. 그런 웃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내 도움이 필요할까 할 정도로 조금 말을 더듬는 정도로만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편하게 흘러갈 그 아이와의 시간을 생각했고 그 생각들에는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흔히 사람들이 미래를 생각 할 때 편한 쪽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마주한 ○○이는 조금 낯설었다. 교실을 가득 채우던 책상 치는 소리를 기억한다. 주위의 몇몇 아이들이 잠깐 ○○이를 바라볼 뿐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주 있는 일인 듯 했다. 그때 본 ○○이는 처음 마주했던 얼굴과는 조금 달랐다.

 침착해, 라고 말하면서 책상을 치는 손을 잡았을 때 그 애는 내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때 나는 그 아이의 손을 감싸고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 애의 움직임이 멎고서야 손을 놓았다. 작은 손바닥에서 느껴졌던 뜨거움이 손바닥에 흥건한 땀으로 남아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부담스러워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고 스스로가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어영부영한 채로 첫 달이 지나갔다. 수업에 들어가 아이에게 도움이 되어주려 노력했지만, 아이의 행동은 바꿔지지 않고 성질이 나면 소리를 지르며 수업시간을 엉망으로 만들어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이와의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에 교육청에서 특수학생 보조 목적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다른 학생들을 보조했다. 일주일 동안 특수학생들의 보조활동을 하면서 ○○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아이에게 했던 행동들이 맞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부담스러웠던 2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이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내가 먼저 해주던 행동들이 틀린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바다 건너 경도의 초록이 짙어지면서 여름방학이 끝났을 때 나는 조그마한 것부터 정리해 가기로 했다. 처음으로 ○○이와 함께 한 것은 신발정리였다. ○○이가 활동을 위해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원래는 내가 정리를 해주고 따라 들어갔다. 작은 부분에서 그 아이를 배려한다고 생각했던 내 행동은 결정적으로 그 아이에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체육활동을 하고 들어가는 ○○이를 불러 세웠을 때 많은 생각을 했다.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들어 간다면 어떻게 할까? 그 아이가 다시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먼저 아이의 신발을 정리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가 벗어놓았던 그대로 신발을 두곤 ○○아! "해볼래ˮ하고 말했다. 가만히 내 행동을 보고 있던 아이는 자신의 신발코를 모아 가지런히 두었다. ○○이의 신발코는 가지런한 모습이었다. 아이는 스스로 신발을 정리했다.

 솔직히 욕심이 생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나는 그 아이와 많은 것들을 함께 하고 싶었다. 가끔씩 문을 열고 교실 밖 복도에서 뛰어 놀곤 했는데 나는 아이의 눈을 마주 보며 "○○아, 수업 시간에 문을 열고 나가면 안 돼.ˮ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마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 후로 언젠가 ○○이가 다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한 적이 있다. 나는 가만히 눈으로 아이의 움직임을 좇았는데, 아이는 문을 열더니 잠깐 멈칫하고 다시 자리로 가서 앉았다. 다시 눈이 마주친 ○○이에게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주었는데, 아이도 웃으면서 가만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때 보았던 얼굴이 아직 기억 속에 남아있다. 휘어지는 눈매와 가만히 올라가는 입 꼬리, 언젠가 보았던 긴장을 푸는 웃음.

 ○○이가 주는 영향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와 지내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때 공개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같은 반 학생이 발표를 하는데, 많이 긴장을 했는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조차 어쩌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가 그아이에게 "화이팅!ˮ하고 외쳤다. 움츠려 있던 아이의 몸이 펴지고 아이는 조금씩 말을 짚어가며 발표를 마쳤다. 아무도 줄 수 없었던 용기를 ○○이가 그 아이에게 주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나중에도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오늘의 발표는 그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이의 용기에 그 아이는 자신의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아무도 내지 못했던, 말하지 못했던 용기를 ○○이가 말로써 건네주었다. 그 후에 ○○이와의 마찰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나에 대한 그 아이의 행동은 2학기가 지나고 다시 새 학기가 돌아왔을 때, 조금 달라져 있었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그 아이가 나를 때리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시작된 일이라 당황이 되고 이런 부분에서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지 생각이 많아졌다. 관계라는 것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챙기는 것이 아닌, 함께 이끌고 나가는 것이다. 내가 소중히 생각해도 아이가 그렇지 않다면 이건 올바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게 관계의 당연하지 않음에 대해 어떻게 하면 알려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를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특별한 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잘못된 행동에는 단호하게 "안돼.ˮ라고 말을 했다.

 ○○이는 더 이상 함부로 손을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하고 타인의 기분을 생각하는 ○○이를 보았다. ○○이와 생활을 하면서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틈틈이 ○○이에게 가르친 내용을 메모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가끔씩 메모가 된 것을 읽어 볼 때가 있는데, 아이와 지낸 날들을 적은 메모에 가장 많이 적혀 있는 단어는 인사'였다. 인사를 잘 하는 어린이가 예의바른 어린이지 어른들을 보면 안녕하세요' 해야 되는 거야 하고 가르쳤던 것이다.

 언제가 부터 다른 선생님들이 내게 아이에 관해 칭찬을 할 때, 인사를 잘하는 예의 바른 아이라고 말할 때마다 아이에게 고마움이 생기고 너무 기뻤다. 물론 그 행동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아이에 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는 처음의 ○○이가 생각나기도 했다. 써놓은 메모장을 읽을 때마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체감했다. ○○이와의 남은 10개월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날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와 내 나이차는 열세 살 차인데 지내는 동안 다툰 이야기, 즐거웠던 이야기, 행복했던 이야기, 사소한 기억들로 가득하겠지만 언제였던가 형과 동생 같다고 지나가던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가끔 ○○이 생각이 나 조금씩 간식을 사갈 때가 있었다. 그걸 받은 ○○이는 가방을 볼 때면 맛있는 것을 가지고 온 줄 알고 문 뒤에서 얼굴을 내민다. "○○이, 너 어제 말 안 들었으니까 오늘은 안 줄 거야.ˮ라고 말하면 아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문 뒤로 쪼르르 사라진다.

 부담스러웠던 2년의 시간이 있었다. 낯선 땅에서의 복잡했던 감정도 있었고, 걱정했던 만남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아쉬운 10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 익숙한 땅에서 떠나는 발걸음이 남아 있었고 ○○이와의 이별이 남아있었다. 이런 것에서 아쉬워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이와의 이별은 내겐 낯선 땅만큼이나 낯설다. 언젠가 다시 보면 아이가 나를 기억해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해본다. 선생님들께 "안녕하세요.ˮ라고 말했던 그날처럼 다시 만나는 나에게도 인사를 건네줄까. 메모해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처음 만났을 때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첫 수업 때 보았던 얼굴의 낯섦을 기억한다. 그리고 더 많은 표정을 보여 줄 ○○이를 생각한다. 그 애의 얼굴에서 더 많은
표정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가 "선생님, 고맙습니다.ˮ라고 말했던 날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가만히 그 아이 옆에 있었는데 갑자기 건넨 말에 나는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쑥스러운 표정을 기억한다.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당연한 일인데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더 쑥스러워 졌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아이가 말한 길지 않은 문장에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낯선 땅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내가 조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경도를 떠나고 아이와 헤어져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아이가 한 말을 생생히 담아두고 있을 것이다. 괜찮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내 미래를 꿈꾸려 한다.(konas)

여수경호초등학교 강현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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