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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⑪ <입선> "손을 잡는다는 것"

Written by. 박민혁   입력 : 2018-10-10 오전 9: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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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씩 나른해지던 2시쯤, 찾아오는 졸음을 겨우 견뎌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복도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작은 신발이 복도를 걸으며 나는 소리. 머릿속에 노란 유치원 가방을 등에 맨 채로 선생님의 손을 의지한 채 특유의 걸음걸이로 복도를 걸어오는 아이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집니다. 반가운 마음에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잘못 들은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아쉬운 마음에 잠시 복도를 바라보며 서있었습니다. 왠지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아이가 복도로 걸어 들어올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2016년 12월 병무청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1지망으로 신청했던 디차힐에 선발되었다는 문자였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아동 보육시설. 집에서도 가깝고, 복학하기에도 가장 좋은 시기에 가게 된 것이니 분명 좋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 속 한편에는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복지시설에서 근무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습니다. 복지시설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이라면 응당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생각에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왔던 2년, 그러나 제가 손에 쥔 것은 성취가 아니라 좌절뿐이었습니다. 꿈을 이루면 행복해질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참으면 돼. 2년동안 제가 속으로 되뇌며 저를 억누르던 말은 견딜 수 없는 무게의 고통이 되어 저를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힘들고 외롭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둘러보았지만 주위에 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두들 저보다도 힘든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내가 복지시설에 가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2년에 대한 불안이 되었습니다.

불안이 현실이 되다

불안은 현실이 되어 저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시설의 모든 사람들이 제게 정말 잘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닫힌 마음은 쉽게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와 웃으며 말을 하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했던 저는 아이들과 마주치는 상황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될 수 있으면 피했고, 정말 피할 수 없이 마주치게 되면 웃음을 잃은 채 아이들의 인사를 받기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저를 어려워하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애초에 이제 막 시설에 온 낯선 사람인데 웃지도 않고, 인사도 잘 받아주지 않으니 아이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도 이런 제 모습이 싫었습니다. 근무지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저를 질책했습니다. 질책은 또 다른 우울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우울은 다른 우울을 집어삼키며 몸집을 불려만 갔습니다. 앞이 깜깜해보이던 디차힐에서의 생활은 ○○이를 만나면서확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이와의 첫 만남

 아직 여름의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던 가을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고 오느라 조금은 지쳐 있었던 제 귀에 시설을 떠나갈 정도의 큰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울음에 쏟아내듯 선생님 손을 잡은 낯선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울고 있던 아이와 마주쳤습니다. 아이는 마치 내가 울렸다는 듯이 엉엉 더 크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강렬했던 첫 인상처럼, ○○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말을 하지 않았고,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지도 못했으며, 사람들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며 제가 가장 먼저 떠올렸던 단어는 자폐증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설로 오기 전까지 좋지 않은 보육환경 속에서 자라며 제대로 된 검사도 받은 적이 없던 ○○이었기에, ○○이가 정확히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족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을 위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았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 덕분에, ○○은 첫 날 그토록 울었던 건 잊은 듯 즐겁게 웃기도 하고 온 몸을 흔들어 즐거움을 표현할 정도로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이는 첫 만남의 인상으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저를 보고 더 크게 울었던 아이. 그 기억이 ○○이를 마주칠 때마다 저를 움츠리게 만들었습니다. 세 번, ○○이를 선생님 대신 잠시 맡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의 흥미를 끌기 위해 30분 동안 자전거를 끌고 다니기도 했고, 아무거나 꺼내고 다니는 아이의 뒤를 따라다니며 물건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아이는 제 통제를 벗어나서 회의 중인 사무실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거기로 가면 안 돼.ˮ라고 말하자마자 혼자 계단을 내려가려 하는 ○○이를 제지하기 위해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아이는 황급히 자신의 손을 제 손에서 빼냈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아이의 눈에 담긴 감정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이와의 관계는 제가 소집해제를 하는 날까지 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손을 잡다

 올해 초 매우 추웠던 날로 기억합니다. 청소를 막 마치고 관리실에 들어가려는 저를 간호 선생님이 불러 세웠습니다. ○○이가 유치원에서 발작 증세를 일으켜 쓰러져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했습니다. 간호 선생님과 함께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아이의 상태는 괜찮았습니다. 몇 가지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거라며 간호 선생님이 응급실로 들어가셨습니다.

 대기실에 앉아 시간을 보낼 것을 찾던 제 눈에 우울증 자가 진단 팸플릿이 들어왔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들이 괴롭고 귀찮게 느껴졌다, 모든 일들이 힘들게 느껴졌다, 갑자기 울음이 나왔다…. 30, 33, 36…. 점수를 계산해보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이와 선생님이 응급실에서 나왔습니다. 아이는 휠체어 탄 채 울고 있었습니다. 수속을 밟으시는 선생님 대신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에게 손을 뻗다가 문득, 주저하고 말았습니다. ○○이가 싫어할 텐데. 그렇게 제 손은 허공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뜨거운 온기가 제 차가운 손에 느껴졌습니다. ○○이의 작은 손이 제 손을 쥐었습니다. ○○이는 훌쩍이며 제 손을 잡고 제 옆에 섰습니다. 그 날 밤 침대에 누워 오른손을 하늘 위로 들고는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이는 왜 내 손을 잡았던 걸까? 너무 아팠기 때문에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서였을 겁니다. ○○이의 눈앞에 마침 내가 서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날 저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이의 조그만 손의 온기가 제게 알려준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정말 도움이 필요했던 건 나였구나. 위로가 필요했던 건 나였구나. 도움을 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히려 건네준 위로가 너무나 따뜻했기 때문에, 정말 오랫동안 울었습니다.

소중한 발자국

○○이의 마지막 수면 뇌파 검사가 있기 전날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선생님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장애아동 보육시설로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이가 처음 시설에 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일반 아동과 장애 아동의 보육은 다르게 접근해야 되고, 일반 아동 보육 시설에서 장애 아동에게 좋은 보육 환경을 제공하기는 어려웠으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자,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날따라 ○○이는 유난히 검사를 받기 싫어했습니다. 두 차례의 검사때는 얌전하게 검사를 받았었는데. ○○이는 검사실이 있는 복도에 있는 것조차 싫은 듯했습니다. 검사를 위한 약한 수면제를 먹었음에도 ㅇㅇ이는 잠들기는커녕, 자꾸만 움직이고 싶어 했습니다. 간호 선생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검사 하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 ○○이랑 한 바퀴 돌다 와도 돼요.ˮ

 ○○이의 손을 잡고 2층을 한 바퀴, 두 바퀴, 계속 돌았습니다. ○○이는 좋아하지 않는 검사실을 나오자 기분이 좋은 듯 보였습니다. 이제 슬슬 검사실로 가야 할 시간이 되어갔지만, ○○이는 조금 더 걷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 조금 더 걸어도 되겠지. 그렇게 제 기억 속에는 그 날 ○○이와 걸었던 발자국들이 소중한 자국으로 남았습니다.

 봄이 찾아올 무렵, ○○이는 저희 시설을 떠나 장애아동 보육 시설로 갔습니다. ○○이가 처음 온 날이 떠오릅니다. 하루 종일 울었던 ○○이의 모습. 그리고 떠나던 날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마음을 쉽게 열지 않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던 ○○이는 떠나는 날, 선생님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할 정도로 변해있었습니다. ○○이는 새로 간 곳에서도 아마 첫 날은 많이 울었겠지요. 하지만 좋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나, 금방 적응해서 좀 더 많이 웃게 되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소중한 자국으로 남기 위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면서 항상 쫓기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하고, 위로를 줘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의 깊은 상처 때문에 저는 그 역할을 하지 못했고, 이 사실에 항상 스스로를 자책했습니다. 저는 항상 상대방의 손을 잡으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알지 못했습니다. 주저 앉아있던 건 저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사실을 ○○이가 알려주었습니다. ○○이의 손이 말했습니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손과 한 사람의 손이 만나 맞잡는 것이라는 걸요. 도움이라는 건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웃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의 작은 손이 그렇게, 주저앉아 있던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건물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돌아왔나 봅니다. 처음엔 이름도 몰랐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제는 목소리만 들려도 머릿속에 누가 말했는지 얼굴이 그려집니다. 하루하루, 아이들의 목소리가 제 기억 속에 소중한 자국으로 남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제 기억 속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이들과 함께한 기억들이 아로새겨질 거라고 믿습니다. 저 또한 열심히 아이들의 기억 속에 소중한 자국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남은 복무기간 동안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konas)

디차힐 박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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