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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0주년 특집기획>
내가겪은 6.25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올해는 수백만 목숨을 앗아간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세대조차도 세월의 흐름속에 기억조차 아물거린다. 이에 KONAS는 6.25주요 전투에 참가한 참전용사들의 경험담과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여 먼 후일 역사의 산 교훈으로 삼고자 특집기획을 마련하였다.

  • 학도의용군 戰史 반듯하게 정리해야
    학도의용군 戰史 반듯하게 정리해야
    스탈린에게 전쟁 재가를 받고 중국으로부터 병력지원을 약속받은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남침 명령을 내렸다. 전쟁 발발 3일 만에 한강인도교가 끊겼고 정부는 부랴부랴 서울을 떠났다. 그러나 이 땅에는 국가관이 투철하고 혈기왕성한 애국 학생들이 있었다. 대한학..
  • <특별좌담>6.25전쟁 60주년의 의미와 국가안보
    <특별좌담>6.25전쟁 60주년의 의미와 국가안보
    김종찬(맨 왼쪽) 국방일보 발행인의 사회로 진행된 6·25 특집 좌담회에서 백선엽(오른쪽 둘째) 예비역 육군대장, 김구섭(왼쪽 둘째) 한국국방연구원장, 홍두승(맨 오른쪽) 서울대 교수 등 참석자들이 6·25전쟁 60주년이 주는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국방..
  • [특별기고] 왜  북괴는 6.25南侵赤亂을 자행했나?
    [특별기고] 왜 북괴는 6.25南侵赤亂을 자행했나?
    북한지배집단은 또다시 우리 남한에 대해 천인공노할 '천안함폭침'이라는 군사적 기습공격을 자행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동맹국 미국을 비롯하여 정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는 이를 '침략'으로 간주하고 비난함과 동시에 즉각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제소하였다. 그런데 ..
  • 6·25 결정적 전투들 ⑫ 안악골전투와 유격전
    6·25 결정적 전투들 ⑫ 안악골전투와 유격전
    동키 20부대 부대장 박동호는 “국가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국가와 민족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하지만, 실제로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을 실천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6·25전쟁 당시 반..
  • 6·25 결정적 전투들 - ⑪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1951년 12월 38도선 인근에서 전선이 고착된 가운데 유엔군은 협상을 통해 전쟁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결말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반면 북한과 중공군은 계속적인 증원으로 세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해 양측 세력이 점차 균형을 이루게 됐다.  이로써 지상에서는 대..
  • 6·25 결정적 전투들 - ⑨ 백마고지전투
    6·25 결정적 전투들 - ⑨ 백마고지전투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 사상 가장 치열하게 진지전이 전개됐던 시기인 1952년 10월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 9사단이 중공군 38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열흘 동안이나 이를 막아내며 고지를 사수한 전투다. 이 전투에서 국군 9사단은..
  • [6·25 참전용사들의 오늘]영웅들이 울고 있다
    [6·25 참전용사들의 오늘]영웅들이 울고 있다
    6·25전쟁 때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최득수(83)씨는 이젠 더 이상 훈장을 달고 다니지 않는다.휴전 직전인 1953년 6월 하순, 강원도 양구 비석고지전투에서 3중의 적 기관총 진지를 박살 내 고지탈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공(戰功)을 인정받은 훈장이었다. 태극무공..
  • “조국은 당신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
    “조국은 당신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유골이다! 삽 내리고, 호미들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형심 팀장(상사)의 명령에, 땅을 파던 팀원들이 일제히 삽을 내렸다. 땅을 판지 2시간 만에 찾은 유골이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팀원들의 옷은 땀 범벅..
  • 6·25 결정적 전투들 ⑧ 지평리전투
    6·25 결정적 전투들 ⑧ 지평리전투
    지평리전투는 중공군의 1951년 2월 공세 당시에 미2사단 23연대와 이 부대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원주 북방의 지평리에서 중공군 3개 사단 규모의 집중공격을 막아 낸 방어전투다. 이 전투에서 미23연대와 프랑스대대는 좌우 인접부대가 중공군의 공격에 밀려 철수하게..
  • 6·25 결정적 전투들 - ⑦ 장진호전투
    6·25 결정적 전투들 - ⑦ 장진호전투
    인천상륙작전에서 주력부대로 활약했던 미 1해병사단은 맥아더 원수의 원산상륙작전계획에 따라 다시 원산항으로 이동했다. 원산에는 북한군이 3000여 기의 기뢰를 설치해 두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사단은 기뢰를 제거할 때까지 20여 일 원산 앞바다에서 대기하다가 10월..
  • 6·25 결정적 전투들 - ⑥ 평양탈환작전
    6·25 결정적 전투들 - ⑥ 평양탈환작전
    1950년 10월 29일 오전 9시 30분, 정일권 국군총사령관을 비롯한 군부요인들의 환영 속에 이승만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가 평양의 능라도비행장에 착륙했다. 이어 평양시청에 마련된 환영식장에 도착한 노(老) 대통령은 감격한 어조로 운집한 5만여 명의 군중에게 자..
  • “평화는 누가 주는게 아니라 내가 지키는 것”
    “평화는 누가 주는게 아니라 내가 지키는 것”
    60년 전 사지를 헤매던 열 아홉 소년은 백발 노인으로 바뀌었지만, 전쟁의 기억은 잠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참혹한 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남은 삶은 ‘덤’이라며 제 2의 인생을 살았다는 윤병국(79) 대한학도의병동지회장. ■ 잊을 수 없는 1950년 ..
  • 6·25 결정적 전투들 - ⑤ 인천상륙작전
    6·25 결정적 전투들 - ⑤ 인천상륙작전
    낙동강전선에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국가존망이 달린 백척간두의 위기를 넘긴 국군과 유엔군은 인민군을 일거에 포위격멸 및 구축할 전략목표하에 전쟁 초기부터 대반격작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상륙작전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다.인천상륙작전은 전쟁이 채 일..
  • 6·25 결정적 전투들 - ④ 기계-안강전투
    6·25 결정적 전투들 - ④ 기계-안강전투
    기계-안강전투는 1950년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기계와 안강, 포항과 경주 북부 일원에서 국군 1군단 예하 수도사단이 북한군 유격부대인 766부대로 증강된 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한 방어전투다. 1950년 7월 말까지 지연작전을 수행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8월 1일을 기..
  • 6·25 결정적 전투들 - ③ 영천전투
    6·25 결정적 전투들 - ③ 영천전투
    영천전투는 6·25전쟁 초기 아군에게 불리한 전세를 극적으로 역전시켜 전쟁의 마지막 보루인 낙동강방어선에서 위기를 구한 구국의 일전이었다. 이 전투는 1950년 9월 2일부터 13일까지 국군 8사단이 북한군 2군단의 공격을 방어한 6·25전쟁의 일대 전환점이 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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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6.19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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