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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이 가을 나도 사랑에 빠지고 싶다!
작성자 이현오 작성일 2016-11-16 조회 조회 : 13756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눈앞을 아련케 하는 봄의 초록 기운은 여심(女心)을 녹이고, 여린 바람에도 하늘대며 우수수 떨어지는 추풍낙엽(秋風落葉)은 남자의 심장을 울렁이게 한다던가. 정말 그런가 보다. 진부하고 철 지난 얘기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해마다 찾아오는 봄은 여자의 계절이요,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면 지금 남자인 내 마음에 와 닿는 이런 감정이 바로 가을은 남자의 계절임을 체득하게 해 주는 기분이 아닌가 싶다.

 

 회사 앞 도로에도 가을이 익었다. 노란 은행잎이 바로 알려 준다. 인근 서울 숲은 불타오르다 못해 휘황한 자태다. 넓지 않은 연못에 둥실 떠 있는 연잎들은 또 하나의 미(美)를 창조키 위해 숨을 고르다 가도지나 가는 잉어에게 살폿한 몸짓으로 미소를 던진다. 간밤에 떨어져 내렸나 보다. 보도(步道) 위를 뒤덮은 옆집 아이 엉덩짝보다도 더 풍성한 누렇게 변색한 플라타나스 잎새가 지금이 깊어가는 가을의 한 정점임을 일깨워 준다.

 

 가을이 불타고 있다.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 이 계절이 앞 뒷산, 들녘과 길거리 곳곳에 족적과 향연을 남기며 소리 없이 스러져 가고 있다. 난 아직 이렇다 할 산행도, 집 가까운 언덕배기도 올라보지 못했는데 가을이 녹아들고 있는 것이다.

 

 정겨운 이, 사랑하는 이와 어딘가로 떠나 알 듯 모를 듯 저만의 눈짓을 주고받기도 하고, 노랗고 빨갛게 물든 고운 단풍잎으로 귓불을 간질이며 비비꼬는 몸짓아래 둘만의 사랑가도 읖조려 보고, 거기다 두 몸 꼭 동여맨 한 몸인 양 어깨동무 해가며 낙엽 밟는 바스락거림으로 두 눈 마주한 채 무언의 얘기를 나누고도 싶지만 이 가을에도 난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아련해지는 내 심장의 고동을 더 빠르고 더 힘차게 솟구치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이는 남자만이 느끼는 호젓한 분위기의 계절을 마냥 맥 빠지게 해선 안 될 것 같은 강박감도 크게 작용할 수도 있는 거고.

 

 주말이던 지난 12일 오후 난 시내 한 공원으로 무심결 들어섰다. 무언가의 힘에 의해 빨려드는 기분이기도 했다. 블랙홀과도 같이 날 이끈 건 다름 아닌 고운 자태로 유혹의 손길을 뻗어 내린 색채였다. 그것은 그리고 빛이기도 했다. 길 옆 잔디로 덮인 수풀은 낙엽으로 담요를 대신하고 하늘을 덮듯 울창한 나뭇잎사귀는 형형색색 단풍으로 물들어 저마다의 모습을 다투어 내세우기라도 하듯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올 가을에도 단풍 행락을 갖지 못한 나에게 잎사귀들은 마치 ‘제1 단풍의 백미가 바로 저랍니다’하며 경쟁적으로 자신을 내밀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두리번 두리번 이 쪽 저 쪽으로 눈길을 돌려대다 이내 주머니 속 휴대전화기를 꺼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를 어떤 힘과 위력이 절로 카메라를 꺼내게 한 것이다. 이름 모를 길손이지만 저를 찾는 이에게 내미는 단풍 소녀의 아름다운 유혹의 손길인지도 모를 일이고 그 손길을 모른 척 하는 것은 더더욱 예의가 아닐 것 같은 생각이었음이다.

 

 그것은 또한 바로 그곳에 가을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타오르는 단풍과 낙엽만의 가을이 아닌 사람의 귀한 내음이 있었고. 비워지는 막걸리 병을 사이로 바둑장기에 여념 없는 할아버지, 빙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 깡총대며 뛰어노는 어린이들, 거친 호흡으로 농구공을 던져대는 청소년들, 거기에 사람이 있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고, 가을 남자의 향기가 더 크게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 날 나는 생각지도 않은 가을에 잠기고 있었다.

 

 이 가을 나는 먼저 더 큰 사랑에 빠지고 싶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저마다의 멋스러움과 사랑의 꽃을 피우며 열정을 과시하듯 우리네 일상 속에서도 이 가을 타오르는 단풍잎처럼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이웃과 내 주변을 이해하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고향 팔금과 대한민국을 더 크고 넓게 사랑하는 가을 남자가 되고 싶다.

 

 봄기운에 젖어든 여심(女心)이 깊어가는 가을기운에 젖어 또 다른 사랑에 빠져드는 것처럼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나 또한 대한민국과 봄의 초록 기운 여심(女心)의 바다에 한번 빠져보고 싶다. 이 가을에.....

 

금당 이현오 / 수필가(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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