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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광주 댁으로 이삿짐을 꾸린 우리 딸 은지
작성자 이현오 작성일 2017-04-03 조회 조회 : 10649 

 큰 딸 은지가 이제 광주 댁이 되는가 보다. 3월의 마지막 날 31일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봄비다. 마른 대지에 촉촉하게 방울져 내리는 빗발이 8층 회사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에도, 색색의 우산 속 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의 걸음새에도 부드러움과 촉촉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
 

‘이사하는 날 비가 오면 살 산다’는 말이 귓가를 간질이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딸네가 이사하는 날 비가 오는 게 아쉬움이 더 크게 묻어나는 것만 같고 그런 아빠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듯해 조금은 착잡해지기도 한다. 이런 저런 상념을 지우려 시선을 한데 모으자 통으로 된 유리창으로 또르르 굴러 내리는 빗방울이 연이어짐에 또 다른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화들짝 머리를 흔들며 의자를 끌어 당긴다.

 그리고 이내 딸에게 전화를 건다. 짧은 신호음이 울리기 무섭게 “응 아빠, 지금 아저씨들 오셔서 짐 내리고 있어”한다. 광주에서 사돈어른 친구 분이 하는 이삿짐센터 분들이 사돈어른과 함께 오시기로 했는데 새벽같이 일직 출발해 오신 모양이다. 딸이 금방 사돈어른과 전화 연결 해 주자 “그동안 잘 계셨지라. 몸은 건강하고요 잉?” 구수한 고향 사투리가 곧장 정겹게 다가온다.

 “네, 충성! 일찍 오셨네요. 날씨가 이런데 고생이 많습니다. 제가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전화상으로 대신 할 수밖에 없어서 어쩌지요. 죄송합니다.” 하자 “아따, 믄 그런 말씀을요. 요즘 많이 바쁘지라. 그래서 어제 올라와서 딸네 집서 자면서도 일부러 연락 안 했어라!” 하신다. 

 40년 이상을 체신공무원으로 봉직하다 작년 말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하시고 고향마을과 광주 집을 오가며 새로운 농사일에 푹 빠지면서 시내버스로 광주시내를 투어하고 계시는 청년 같은 사돈형님이다. “아 네 어제 오셨네요, 제가 미처 알지 못해서....”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나저나 은지가 아빠 곁에서 더 멀리 떨어져 살게 돼 서운하시겠지만 또 다음에 가까이 살게도 되것지요”하며 딸을 가진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려 위로의 말을 건네신다. 

 “그럼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사부인께서도 평안하시지요. 아이들 잘 부탁드립니다”. 멀면 멀수록 좋은 게 사돈지간이란 말이 있다지만 일단 우리는 전화부터 소주잔을 나누는 순간마다 즐거움의 연속이다. 한참 수다 아닌 수다로 위로와 격려 인사를 나눈 뒤 다음 만날 날을 기대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저녁 퇴근길 모처럼 딸 사위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지난 설날 집에서 모인 이후 두 달인가 보다. 첫째, 막내딸에 사위들과 모두 함께 다. 이삿짐은 오늘 갔지만 은지는 앞으로 두 달여 암사 집(친정)에서 직장을 더 나갈 예정이다. 해서 이 날 사위와 함께 주민자치센터에 가서 주민등록 이전을 했다고 한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혼인신고를 해 가족등록에서 빠져 나간 출가외인 딸이 불과 몇 개월 이지만 그래도 우리 집으로 온 게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게 세(貰)를 들어오는 또 다른 세대주로 온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는 일이기도 해 혼자만의 빙그레한 미소가 얼굴을 스친다. 

 지금이야 덤덤해진 상태지만 처음 은지가 사위의 직장 관계로 서울에서 지방(광주)으로 회사를 옮기고 저들도 이사를 간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당혹스럽고 서운함이 가슴 언저리를 어리게 했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만났다 헤어지고 또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별리(別離)와 해후(邂逅)의 연속일지니 그를 어찌 탓하고 안타까워만 할 수 있겠는가.

 개개인의 일생은 부모가 정해주는 것도,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늘 곁에 함께 있다고 해서 행복으로 도배되는 것이 아님을 서로가 알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스스로의 삶과 긴 여정을 찾아서 떠나야 하는 것이고, 그 또한 인생에게 정해진 단편이기도 한 것 아니겠는가. 

 저녁 모임, 막내 은경이가 웃으면서 “수돌 - 미니 미(손주 태명)야, 엄마 뱃속에서 더 컸네. 너도 엄마 따라 광주에 가겠네. 잘 갔다 와. 또 보자”한다. 모두가 은지의 부풀어 오른 배를 보며 유쾌한 웃음으로 자리 마무리다.

 2주가 채 덜된 만남인데도 그 때 비해 훨씬 더 컸나 보다. 우리 손주가. 역시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더니 뱃속 우리 ‘수돌 - 미니 미’도 쑥쑥 살이 오르나 보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쁨인가. 

 오늘도 나는 페달을 밟으며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손주 ‘수돌-미니 미’ 건강하게 씩씩하게 쑥쑥 자라서 빛난 웃음, 더 큰 기쁨으로 우리 곁에 올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옵소서!”. 눈가가 촉촉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4월이다. 회사 앞 커다란 가지에 목련이 활짝 피어나고 한강 자전거 도로 개나리 군락에 노란 물이 더해지는 계절이다. 화사함으로 천지사방 지천이 봄옷으로 갈아입는 이 계절처럼 광주 댁으로 새롭게 변신하는 딸 은지 네의 먼 훗날 그 날이 벌써 기대되는 이 날 이삿짐 가는 날이다.(금당)

이현오 / 수필가. 코나스 편집장(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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