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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역사 속의 한국광복군la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09-29 조회 조회 : 20915 

written by. 황의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가 잘살고 못살고, 흥하고 망하는 것은 외적인 요인보다 내적 정신문화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100년 전인 구한말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나랏일을 소홀히 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국권이 침탈됐고 519년 이어오던 종묘사직이 문을 닫게 됐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그러한 악순환의 역사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책을 읽던 선비들은 책을 덮고, 밭을 갈던 농부들은 괭이를 들고 호국의 길에 나서 15년이란 세월에 걸쳐 일본군과 싸웠다. 그리고 이들 의병들을 이어받은 만주독립군은 청산리·봉오동·대전자령과 같은 전투를 치르면서 20여 년에 걸친 무력투쟁을 전개했다.


 우리 임시정부에서는 무력에 의한 독립 쟁취가 보다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다는 판단 아래 노백린 장군을 군무총장에 임명하는 등 모든 독립요원의 무장화 정책을 위한 업무 추진에 나섰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만주 지방에서 움직이는 여러 갈래의 군사집단과의 유대와 임정 중심의 지휘체계 확립을 위한 노력과 병력 확보를 위한 국내외적 모병 운동을 전개했으며, 자체교육기관의 설립 운영과 황포·낙양 두 중국군관학교를 통한 기간병과 간부 양성을 위한 교육 훈련 등이 있었다.


 1940년 8월에는 이청천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총사령부의 편성과 인사를 단행하는 등 창군을 위한 막바지 손질에 나섰다.


 이와 같은 준비과정을 거친 우리 임시정부에서는 마침내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70년 전인 오늘(1940년 9월 17일) 역사적인 한국광복군의 창립을 내외에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정요원들의 창군을 위한 불굴의 의지와 눈물겨운 노력의 대가였고, 한 목숨 바쳐 나라를 찾겠다고 군에 자진 참여한 우리 애국청년들의 나라사랑 정신의 발로였다.


 따라서 우리 광복군의 창군은 우리 국군이 일제에 의해 해산된 지 33년 만에 그 맥을 잇게 됐다는 점과, 우리 군대가 있었기에 1941년 12월 대일선전포고는 물론이요, 미·영·중 등과 같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이 가능했고, 그 참전이 있었기에 광복 후 비록 2년이라는 유예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독립에 사실상 밑거름이 됐을 뿐만 아니라, 전후 세계질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창군의 의의가 더 큰 것이다.


 끝으로 조국독립의 제단에 삶을 바치신 광복군 선열들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빌며 황혼기에 접어든 광복군 노병들의 앞날에 부디 하느님의 축복이 같이하시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출처: http://kookbang.dema.mil.kr/
 
황의선(광복군동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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