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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지하철 임산부 석을 비워둔 어떤 신사
작성자 이현오 작성일 2017-05-24 조회 조회 : 22073 

 아침 출근길 잠실역에서 2호선 성수역 방향으로의 지하철을 탔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 평상시에 비해 이날 출근시간은 덜 붐비고 한산하다는 느낌이다. 차 내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곧장 들어온 건 한 곳 비어있는 좌석이다. 바로 쟁탈전이 벌어져야 할 자리다.  

 

 바쁜 하루의 일상이 시작되는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에서 빈 좌석을 발견한다는 건 하나의 작은 행운이 될 수 있는 즐거움이자 상사들과의 관계에서 하루 업무가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동시에 감지하고 충족 시켜줄 수 있는 저마다의 허상이 되기도 한다.

 

 평소 한강 자전거도로를 애마(자전거 세븐-11호)로 달리기에 지하철은 궂은 날이거나 필요 발생시점에서 이용하기에 붐비는 시간대에 타는 경우는 크게 많지 않다. 또 출근길 이용하는 구간도 암사에서 잠실을 거쳐 뚝섬역으로 향하는 구간이기에 이 지역은 흔히 말하는 한여름 지옥철(?)과도 머리가 먼 편이다.

 

 이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경우였다. 열차가 도착해 차에 오르자 내가 들어선 출입구와는 다른 방향에서 오르는 한 남자 승객도 빈 좌석이 있는 곳으로 곧장 다가왔다. 거의 동시적인 시각에 빈 자리 앞으로 이른 것이다. 하지만 바로 눈에 띄는 건 붉은색 바탕아래 임산부 석임을 알려주는 글귀.

 

 열차에 오름과 동시에 반대방향 출입문 앞에 선다. 그리고 방금 올라 선 상대방 남자의 동향을 살핀다. 좌석에 앉으려던 그 분은 순간 망설임이 역력했다. ‘앉을까’ 아니면 ‘앉지 말아야 하나?’를 판단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리고 결심이 섰나 보다. 앉지 않고 바로 내 곁으로 서는 것이다. 흘낏 바라보니 40대 후반에서 50 초반으로 보이는 인상이 후덕해 보이는 배도 조금 튀어 나온 분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나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왜 일까? 당연히 큰 아이가 결혼해임신한 몸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차가 이내 출발하고 몇몇 승객들의 이동이 있었지만 그 곳에 앉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위치에는 멋지게 치장을 한 젊은 여성이 자리에 앉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현재 상태에서 진짜 그 자리에 앉아야 할 적임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후면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주인공을 잉태할 수 있는 젊은 여성이 앉은 것이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만의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아침 복잡한 출근길에서 조금이라도 편히 앉아서 가고자 하지 서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전 날 파김치가 되도록 야근으로 피로가 풀리지 않는 직장인에서 부터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던 학생에서 과음으로 몸과 마음이 풀릴 대로 풀려버린 이들에게 있어 잠시만이라도 차에서 앉아 갈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서 행운의 복권당첨과도 같은 ‘운’으로도 연결 지을 수도 있을지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날 아침, 누군가 꼭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가 오기를 기대하며 앉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굳세게 빈자리를 지킨 그 남자의 마음에 담긴 호의가 나에게는 무척이나 고맙고 감사하게 여길 분으로 다가왔다. 역시 임신한 딸을 둔 아빠만이 아는 또 다른 마음이라고 하면 통할려나.

 

 얼마 후 그 분은 몇 정거장을 지난 후 다른 빈자리가 나서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나만의 삼매경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금당)

 

금당 이현오 / 수필가. 코나스 편집장(holeekva@hanmail.nw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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