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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기
작성자 동두천 작성일 2019-03-26 조회 조회 : 57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9주기 추모식이 오늘 26일 오전 10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거행되었다.

18799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했다. 귀국 후 사재를 털어 삼흥학교·돈의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폐위, 군대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국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908년에는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해 경흥·회령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연해주 등지를 왕래하면서 구국의 방도를 모색했고, 1909년 봄에는 김기룡·조응순·황병길 등 동지들과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해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했다.

1909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다. 의거 당일인 10269시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 모두 명중시켰다. 러시아 헌병이 체포하려고 하자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안 의사는 1909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뤼순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돼 심문과 재판을 받으면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 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평화의 정착을 주장했던 안 의사는 1910214일 사형을 선고받고 326일 순국했다. 우리 정부는 안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됨

우리는 한시라도 나라를 위해 한 목숨 아끼지 않은 의사, 열사 분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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