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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에 대한 칼 마르크스와 아담 스미스의 조언

Written by. 김영환   입력 : 2006-12-05 오후 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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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파업, 시민피해 줄이기 위해 제도적 장치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대형 파업사태를 걱정하며 조언하는 글들이 그 동안 넘쳐흘렀지만, 최근까지 이어진 대한항공ㆍ포항 사태ㆍ현대자동차 노동투쟁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총파업투쟁 깃발이 올랐다. 기업은 하릴없이 정부 눈치를 살피지만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지친 시민은 답답한 마음에서 자경단을 만들어 보지만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하여 지하에서 민주노총을 보고 있을 칼 마르크스와 아담 스미스에 자문을 구해 보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1848)에서, 노동은 부르주아(bourgeois)의 밥이기 때문에 계급차원으로 단결하여 정치세력을 만들고, 과감하게 투쟁하여 부르주아 계급을 사회에서 몰아낸 다음,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선동했다. 그리고 근대국가기능을 부인하고 정부는 부르주아 문제를 관리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분쇄해야 할 대상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볼 때, 민주노총이 강력한 파업투쟁을 계속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지배하는 이상사회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며, 반대로 노사평화는 노동이 후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권력과 자본의 탄압과 통제를 분쇄하기 위하여(강령 4)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강령 2), 산별노조를 건설하여 전체 노동운동을 통일하겠다(강령 3)고 다짐한다. 그리고 산업별노조 건설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자리에 가면 구체적으로 노동의 계급적 단결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만약 민주노총이 마르크스에 자문을 청한다면, 자신의 교리를 실천한 소련이 오래 전에 자멸한 사실은 숨기고, 민주노총의 투쟁방법이 미온적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건재 한다며 더욱 강력한 총파업투쟁을 주문할 것이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에 자문을 청하다면 전연 다른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경제가 싹트는 18세기 영국의 진로를 훈수한 스미스는, 국부론(1776)에서 노동과 자본의 미래를 예언했다. ‘일’을 가운데 두고 노동과 자본을 노동시장에서 만나게 하면 서로 생존하는 길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의 예언대로 ‘일’을 노동시장에 맡겨 두고 노동과 자본이 경쟁하도록 만든 영국은, 노동이 ‘일’을 지키는 노동조합을 개발하여 존속 번영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스미스는 노동이 노동시장을 떠나 정치적 지배주체로 등장한 소련이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자멸한 예를 들어 “노동시장으로 돌아가 ‘일’을 하라”는 조언을 할 것이다.

 이렇게 상반되는 조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공산당선언을 교본대로 실천한 소련이 자멸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지구상에는 마르크스 교리에 중독되어 환상의 그림자를 쫓는 집착증 증후군이 아직 남아 있다. 노동정치의 중앙무대에 올라 노동자 지배사회를 쟁취한다는 집착증에 도취된 노동지도자가 있다면 마르크스 주문에 따를 것이라는 분명한 답이 나온다. 이것이 교훈이다.

 우리는 아담 스미스형 해법에 기대를 걸고 20년 동안 불법폭력파업을 참고 견뎌 왔으나, 이제 파업피해에 힘을 소진한 시민이 자경단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시아나항공조종사 파업피해를 견디지 못한 제주도민이 대표단을 구성하여 파업 중인 노조와 직접 대결했던 사례나, 전문건설노조 파업피해에 항의하여 포항시민이 궐기한 사례는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파업피해에 시달리는 시민을 파업노조와 직접 대결하게 만드는 구도는 사회불안의 요소일 뿐 아니라 국가기능이 마비된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시민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근대국가기능이라면, 파업피해에서 시민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노조에 호소하고 권고하는 단계를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정부기능을 부인하는 노동 앞에서 불법파업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입법구상은 오히려 불씨를 키우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파업피해에서 시민권리를 보호하는 완충벽을 만들어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법파업피해에 노출된 시민이 정부에 도움을 청하는 길을 열어주고, 시민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가 불법파업 관리에 나선다면 노조도 시민집단이므로 저항할 구실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영국은 이미 이런 방법을 개발하여 중앙무대에서 노동정치에 빠진 노조를 작업현장으로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작업현장에 돌아온 영국노조는 지금, ‘일’을 가운데 두고 경영의 파트너가 되어 생산성향상에 협력하고 있다.

 파업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노조의 자유라 치더라도, 파업피해를 시민에 강요할 권리는 없다. 그동안 한국노동운동은 파업특권을 남용하여 정부의 세금보다 무거운 불법폭력파업 피해를 시민에 강요해 왔다. 세금보다 무거운 물질적 정신적 부담을 강요하는 불법파업을 노조의 선택에 맡겨 두는 환경에서 시민자경단이 나왔다.

 지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식적인 보호요청 절차를 제공하여, 시민자경단을 구성하는 대신 정부에 도움을 청하게 만드는 것이다. 노동에 우호적인 정부라 하더라도 이정도의 완충벽 설치를 주저한다면 파업 피해시민과 파업노조가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사태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Konas)(출처:자유기업원)

 김영환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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