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전범재판소를 방문하고서
필자는 11월 28일부터 12월 4일까지 네덜란드, 독일, 체크 등 3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3개국 여행은 모두 2차대전 중에 자행된 집단살해 내지 대량학살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필자는 9-10차례 독일을 방문했는데, 거의 대부분 동서독 통일문제에 관한 국제세미나 참석, 관계기관 방문 및 면담이 방문 목적이었다. 이번의 방문은 다소 특이한 것이었고, 필자에게는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필자는 독일에서는 쾰른과 뉘른베르크를 찾았다. 쾰른시에서는 ‘엘데 나치 기록보존소’(건물은 건축자를 기념해 통상 EL-DE라고 불리운다)를 방문했다. 이곳은 나치 히틀러 치하에서 경제장관을 역임한 헤르만 괴링이 창설한 비밀경찰, 곧 게슈타포(Gestapo: 정식명칭은 Die Geheime Staatspolizei) 쾰른지부가 있던 장소다. 이곳 지하에는 게슈타포의 감옥이 있고, 지상 3층까지는 관련 유물, 주요 피해자 현황, 피해자 및 가족의 증언이 수록된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피해의 주요내용은 나치 히틀러 체제 하에서의 젊음의 박탈, 건강의 악화, 비인간적 고문, 가족의 이산 및 해체, 연좌제 등이었다.
다음 뉘른베르크시에서는 독일의 ‘제국의회당전당대회장’(Reichstag- parteigelände, 제국은 히틀러의 제3제국을, 당은 국가사회주의당=NS, 즉 나치를 의미한다)과 2차대전 후 전범들을 재판한 뉘른베르크국제군사재판소가 개정된 법정을 방문했다.
먼저 나치전당대회가 이루어진 당사에 갔는데, 여기는 나치의 역사가 그대로 소개되고 있었다. 철제골절로 된 건물에는 70년전으로 돌아가 당시의 실제동영상과 함께 각종의 자료가 게재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히틀러가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친위대(Schutastafel: SS)와 청년근위대, 여성동맹, 노동자동맹 등의 조직을 건설한 사실이 잘 소개되고 있었다. 필자는 이틀러체제와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체제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히틀러의 생존권(Rebenraum) 사상‘과 김일성 주체사상, 아리안 민족주의와 조선민족제일주의, 수권법에 의한 군국주의/국가총동원체제와 국방위원장체제 하에서의 선군정치노선, 히틀러의 영토팽창과 반평화주의와 김정일의 대남 공산화통일전략과 자위적 핵억제력 강화노선 등은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앞으로 북한 연구자들은 독일의 히틀러체제와의 유사점 및 차이점을 비교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다음으로 뉘른베르크국제군사재판소를 찾아갔다. 필자는 이 곳을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어 했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소원을 이루었다.
참고로 앞으로 뉘른베르크법정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을 위해 말한다면, 이곳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다른 날 찾아가면 허탕을 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관광객을 위해 개방되지 않는다. 이곳은 현재 바이에른주 지방법원(뉘른베르크 및 인접시 관할)의 부속건물로 평일에는 재판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킨 까닭이다.
필자와 일행은 나의 주장에 따라 무작정 이곳을 찾아갔는데, 역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본청 건물로 들어가면 문이 굳게 닫혀있는 건물과 연결통로가 있고, 이곳 3층 600호실이 바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이루어진 법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법정에 들어가 보지 못해도 법정 문밖에서 사진을 하나찍을 생각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문이 열려있고, 그 안에서 두 직원이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개방이 금지된 날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이었다.
운 좋게도 뉘른베르크 법정의 내부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1945년 늦은 가을 개정된 국제군사재판소는 미,영,불,소 4개국에서 각기 임명된 군판사 8명(각국이 2명씩 선임)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약 1년간 재판이 진행되었다. 검찰측은 24명을 기소했는데, 대부분이 ‘평화에 대한 죄’(즉, 침략전쟁의 계획, 준비, 개시, 수행의 죄)와 ‘인도에 대한 죄’를 범했다는 것이 기소이유였다. 그 중 12명이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 24명중 첫 번째 피고인이 바로 헤르만 괴링이었다. 그는 맨 앞줄 오른쪽 첫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사형이 언도된 1946년 10월 1일 그날 밤에 자살했다. 사형집행일 하루 전날 연합국에 의해 치욕적인 사형집행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살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피고인 헤스(히틀러 다음의 자리인 부총통)는 사형 대신에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이다.
24명의 핵심 범죄인 외에도 미국 점령지역에서 12개 사건의 후속 전범재판이 실시되어 177명이 기소되었는데, 이 중에서도 일부는 사형 혹은 종신형이 언도되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의 현장을 보고 북한의 김정일을 생각해 보았다. 필자가 금년 1월에 쓴 바와 같이 미국 하와이대학의 한 국제법 교수(Van Dyke, 그는 하바드대학 로스쿨을 나온 우수한 국제법학자이다. 나이는 만 60세이다)는 김정일을 극심한 인권탄압의 죄명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소재한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현가능성과는 무관하게 다수의 많은 국제인권 NGO들도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필자는 김정일과 그의 수하들이 쾰른의 EL-DE 나치기록보존소와 뉘른베르크 군사법정을 한번 방문하면 어떨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 보았다. 자신들의 종말을 미리 안다면 지금과 같은 극심한 인권탄압과 핵무기 도박을 중단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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