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국가발전 모델은 고구려 다물(多勿)정신에서"
윤명철박사 조찬포럼서 주장
21세기 우리 민족의 발전 모델은 고구려 광개토대왕 및 장수왕과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를 중심으로 삼아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우리역사 전체로 볼 때 '한반도' 개념은 1천여 년 밖에 되지 않았으며, 우리민족의 핵심 활동 무대는 한반도 뿐만이 아닌 남만주 일대와 주변 해상을 포함한 것이였고, 고구려와 발해 역사 역시 주 활동무대는 한반도와 대륙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같은 주장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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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윤명철(역사학) 교수는 7일 아침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 전 의원)이 주최한 정례 조찬 강연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고구려 민족의 기상은 보통의 기상이 아닌 천손(황손)민족의식이 작용해 단군사상과도 일치한다며, 최근 방영되고 있는 사극 드라마 '주몽'에서의 삼족오(三足烏, 다리 셋 달린 까마귀)와의 상관관계를 결부시켜 설명했다. 그는 또 후손에 대한 교육에서도 고구려가 한 것처럼 스스로의 자존을 세울수 있도록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자식들에게 교육해야 한다고 참석자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21세기 한중일과 장수왕 모델로 본 역할'의 주제 강연에서 윤 교수는 우리민족이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1500년 전 고구려가 운명공동체적 의식을 갖고 인접국과 정치, 외교, 군사, 경제, 무역을 주도하며 국가발전을 도모했듯이 오늘의 대한민국 역시 고구려를 통해서 발전모델을 발견하고 중국, 일본과 더불어 공동체 의식을 형성해 나갈 때 동북아의 허브역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고구려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역사학자답게 고구려 당시의 시대정신을 발견하기 위해 직접 말(기마민족의 혼을 느끼기 위함이라고 부언)과 발로 뛰며 상황을 인식하고 자신이 작성한 당시 현장지도를 중심으로 강연내용을 축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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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역사는 부정보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우리역사서 중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참고가 되고있는 삼국사기에 대해서는 많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윤 교수는 최근 드라마 '연개소문'을 원용하면서 안시성 성주 양만춘 장군은 잘 알지만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충지로서 수나라 양제의 친정군(親征軍)을 막고 살수대첩을 감행케 하며 전방 방어선 역할을 담당한 요동성에 대해서는 왕족이 담당했을 것으로 예측하지만 성주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는 것은 중국이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패해 숨기려고 한 영향도 있겠지만 당시를 부정적 시각으로 본 시대적 상황도 있음을 토로했다.
윤 교수는 또 바다와 관련한 당시 활동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해양활동을 경시하고 대륙중심의 사관에 얽매인 지금까지의 자세를 비판하고 해양활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즉 지금까지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를 해양활동이 전무한 상태로 봄으로써 하나의 거점으로서 바다를 본 것이 아니라 바다에 둘러싸인 포위된 개념으로서 한반도를 바라봤다고 설명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이순신 장군이 부각되고 김대중 정권 하에서 장보고가 집중되면서 바다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논리를 폈다.
또 이와 연계해서 일본은 14세기 중반이후 바다로 등장하고 중국도 송나라 이후 뛰어난 활동을 펼쳤지만 우리의 전 역사과정에서 바다는 정치, 경제, 무역 등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 절대적이었고 특히 우리 민족(고구려)이 주인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과거 고구려는 장수왕때에 오늘날의 미사일에 필적될만한 800여필의 군마(軍馬)를 선박을 이용해 양산항을 거쳐 남경까지 보낼 정도로 대단위의 선박을 지니고 있었으며, 지중해보다도 더 다양한 자연환경과 다양성을 갖고 있었다면서 고구려가 이런 다양성을 이용해 동아지중해 코아 역을 수행했듯이 한반도 또한 머지 않은 장래에 동아시아가 하나되고 동아연방이 될 수 있을 것이니, 그 모델이 바로 고구려고 해상 모델로서는 장보고라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특히 1950년 6·25전쟁시 맥아더 장군에 의한 인천상륙작전은 냉전시대가 재편되는 시대적 상황(한국전쟁의 성격상) 속에서 나온 것처럼 396년 광개토대왕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 백제의 풍납토성을 공격한 것 또한,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4, 5세기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군주에 올라 백성에게 희망과 자신감, 자존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영토를 확장한 것은 정복군주로서의 공격작전만이 아닌 한 위대한 정치가이자 세계질서 재편을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또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이 427년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고구려의 국시(國是)인 다물(多勿, 옛 고조선 땅 회복)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당시 국제질서의 중심부에 고구려를 올려놓기 위한 국토재편전략의 일환이었다고 장수왕의 남진정책을 평가했다.
윤 교수는 고구려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해상봉쇄를 단행하면서 동아지중해의 코아 역할을 하며 등거리외교와 다중 다핵 방사선 외교를 시행해 강력한 나라를 이룰수 있었다며 이를 통해 동아의 허브역할을 다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고구려가 그 만큼 성장동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안시성 인근의 안산지역에서 채굴된 철과 다련항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고 중화 북방문명과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독특한 문화에서 비롯된 만큼 고구려는 사회조직체로서 문화를 발전시킨 문화국가였다며 오늘의 '한류' 문화와 연계시키기도 했다.
윤 교수는 끝으로 지도자의 리더십을 강조하기도 했다. 고구려가 운명공동체로서 허브역할을 했듯이 앞으로의 세기도 운명공동체가 필요한 만큼 추후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지도자들은 어느 한정된 리더십이 아닌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통해 문화적으로도 한반도가 허브역할을 다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Konas)
이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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