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6자회담을 美의 강경수단 회피 장소로 생각한다"
武貞秀士 박사의 『북핵의 위협과 동북아 안전보장 페러다임』논문 요약
1990년대부터 한반도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문제로 시끄러웠다. 1994년 10월 미·북의 합의에 따라 미국은 "북한은 경수로와 중유의 지원으로 북핵을 포기한다"라고 믿고 북한의 태도가 변할 것이라는 가정에 도박을 걸었다. 그러나 북은 핵개발을 계속하였다.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을 은밀히 추진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2003년 8월 일본, 미국, 한국, 북한, 러시아, 중국 등 6개국은 북경에 모여 북의 모든 핵시설을 해체하기 위한 6자회담을 시작하여 2005년 11월 휴회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북의 핵 포기 유도를 위한 한국, 중국, 러시아는 '선 경제지원, 후 핵포기'를, 일본과 미국은 '선 핵포기, 후 경제지원'을 주장하여 두 그룹간의 미묘한 의견차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플루토늄형 핵개발 시설의 동결과 맞바꾸어 경수로와 중유를 공급하는 계획은 미국이 북의 체제 안전을 보증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제재와 비난이 강해질 것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사일과 핵실험을 하였는데, 이것도 "통일이 될 때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기본정책에 따라 '핵보유국이 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6자회담과 관련하여 북한의 공식입장 보도, 6자회담의 재개를 조건으로 요구한 내용, 군사동향 등 세가지를 보면 북의 정책중점은 세가지이다. (1) 주한미군의 한국방위 역할 종식 (2) 남북교류 추진으로 핵포기를 요구하는 미국과 한국의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 (3) 핵탄두의 소형화와 사정거리 연장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한미관계가 나빠지면 미국의 한국방위 의욕은 감퇴하고, 한국과 북한이 화해하면 한국은 북과 싸울 의지가 저하된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되면 '북에 대한 위협'이 감소하므로 한국이 북한의 경제력을 살리면서 남북이 대등한 상태로 통일하는 것을 동의하면 그 시점에서 북한의 핵 무기는 필요가 없게될 것이다. 한국사회에 공포심을 주는 핵무기는 통일에 있어서는 마이너스가 된다. 그래도 북한이 "통일까지는 억지력을 보유 한다"는 것은 미국을 의식하는 까닭이다.
북한에게 핵무기 개발을 단념시키기 위한 외교 교섭의 장은 6자회담 뿐이지만 현재 6자회담은 조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6자회담의 성격은 처음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꽤 많이 변했다. 2002년 10월 고농축 우라늄의 핵무기 개발계획의 존재가 분명해진 다음부터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문제 해결의 목표로 '돌이킬 수 없는 핵시설의 완전해체' 라고 하는 점을 강조했다.
당초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북이 1994년 10월에 합의한 약속을 위반한 것이라고 여기고 상대가 완전 해체로 향한 신제안을 하지 않는 한 북과의 직접교섭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미북합의는 "남북비핵화 공동선언(1992년 1월22일)의 취지이행을 일관해서 행한다"로 되어있고 공동선언에는 "남북은 핵무기 실험, 제조, 생산, 반입,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않는다"로 되었있다. 미국은 북한이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단정했다.
그후 미국은 중국이 움직이는 것이나 국제여론을 고려해서 미·중·북의 3자협의에 응해 2003년 4월 북경에서 3자협의를 개최하였다. 그해 회의 중간에 북 대표가 미 대표에게 "우리들은 핵을 갖고 있다"라고 귓속말을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북한이 스스로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북한은 미·중·북의 3개국 협의를 일·미·한·북·중·러의 6자회담으로 확대시키는 작전을 세웠다. 먼저 러시아의 입장을 타진한 후 설명하여 승낙을 얻었으며, 중국에 대해서는 6자회담의 실행 역할을 부탁했다. 이 사실은 그 시기에 참가한 국제회의에서 6자회담의 맴버국 정부고관에게서 직접 들었다. 중국은 미국, 일본, 한국, 러시아에게 이 구상을 설명했다.
2003년 5월부터 6월의 시기이다. 북은 고농축 우라늄형 핵무기개발 사실이 미국에게 감지되었다고 판단하고 미국의 '군사옵션'을 회피하기 위해 중국에 이어 한국·러시아라는 북한 이해자를 필요로 했기때문이다. 그 무렵에 북이 "타국간 협의에는 나가지 않는다"라고 주장한 것은 본의가 아니고, 6자회담의 구상이 북으로부터 나온 안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제안이라는 것이 판명되면 북이 6자회담에 출석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되기 때문이었다.
제1회 6자회담은 2003년 8월 북경에서 개최되었다. 협의에서는 미국과 북의 대립이 나타났고, 중국의 외교부부장이 행한 의장연설은 '평화적 해결'과 '북한의 안전에 대한 합리적인 관심을 고려한다'라는 것으로 "북한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핵무기개발을 한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라는 뜻으로 북의 주장에 중국이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이런 말로 인해 북은 '핵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쉬워졌다. 제1회 6자회담의 내용은 미·북 대립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6자회담은 난항을 하였으나 2005년 9월 19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문서에는 고농축 우라늄형 핵무기개발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모든 핵무기 그리고 기존의 핵 계획의 포기와 핵확산 방지조약 그리고 국제원자력 기구에 조기 복귀"라는 표현으로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할 때 협의는 진전할 수 없게된다. 좀 추상적인 말로 하는 대신 미국에 의한 북의 공격의 의도가 없는 것을 약속하고 에너지자원의 구체적인 언급을 한 내용이었다. 성명은 "대북 지원을 실행한다"와 "핵을 포기한다"의 두가지 안을 절충한 것으로 보이나 "존재를 인정한 핵개발 계획의 포기라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남겨둔 문서였다.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를 강경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금융제재의 영향이 심각하다는 것보다도 핵보유국이 된 북한에 차후에는 미국이 양보할 것이라고 판단한 까닭이다. 북한의 요구는 상승되고 평양에서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보도가 계속됐다.
11월 6일 북한이 일본은 6자회담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보도한 것은 핵 실험후 요구가 상승된 한 예이다.
한국의 보도로는 북은 11월 28일의 미·북·중의 협의,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결의의 효력정지와 각국의 대북한 제재조치의 해제, 에너지 지원 등 핵폐기의 반대급부 등에 대해 언급하고 종합적인 대북지원책을 요구한 것 같다.
6자회담의 일정이 결정되지 않는 것은 핵보유국으로서의 대우와 발언권을 요구하는 북이 요구사항을 상승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서 미국이 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실험을 한 뒤 보다 강해진 위상으로 6자회담에 출석한다고 기대하고 핵보유국으로서 데뷔하는 무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의 정세는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만 봐도 복잡하다. 미국은 6자회담에 이전 만큼 적극 적이지 않아 보인다. UN제재에는 중국의 협력과 북이 핵을 완전포기 한다는 2가지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중국의 속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을 갖고 북의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부시 대통령의 복안이다. "전적으로 핵시설과 핵계획을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완전히 해체하고 시간을 정하여 북을 압박한다"라는 정책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미국은 대량살상 무기 확산방지로 북핵문제 해결중점을 옮겨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일본은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가 일본에 있어서의 현안 문제이고 일·미는 항상 인식을 같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6자회담의 쟁점과 의의는 변해왔다. 이런 교착상태가 계속될 때 6자회담의 존재가 또한 불투명해질 가능성도 있다. 관련 6개국이 모이는 6자회담의 의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6개국은 나름대로의 입장의 일치점과 불일치점을 의논하는 유일한 장소이다.
이제부터 6자회담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회의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관점은 무엇인가. 북한은 6자회담이 미국의 강경수단을 피하는 대피장소라고 생각하고 중국·한국·러시아를 포함한 다국적간 회의로 시작한 출발점으로 돌아가 금후의 과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상의 것을 실천에 옮기고 교착상태에 빠진 6개국협의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지역의 안정과 테러대책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 등을 의논하기 위한 확대 6자회담을 검토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예컨대 인도·호주·EU를 포함하는 9자 회담을 창설하고 6자회담의 타개를 도모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Konas)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 日국방대 방위연구소 주임연구원)
** 이 글은 향군안보국제심포지움(12월14일)에서 필자가 발표한 논문을 요약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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