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이전 지연과 주한미군의 장래
용산의 미군사령부와 전방의 미군기지를 2008년 말까지 평택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이 5년 정도 늦춰지게 돼 주한미군의 장래가 계속 불확실성에 휩싸이고 있다. 그러잖아도 전시 작전통제권 조기 이양 문제로 마찰이 비등한 상황에서 기지 이전까지 지연되면 실무협상의 진전과 관계없이 양국 지도부와 여론 사이에 다분히 정치적 갈등이 게재될 염려가 있다.
기지 이전이 늦춰진 표면상의 이유는 현지 일부 주민과 친북반미 단체들의 방해로 기지 개발이 지체된 것과 이전 비용 및 시설 책임 분담을 놓고 양국간 합의를 못 본 데 있다. 우리 측에 약 5조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드니 분담 문제는 물론 간단치 않다.
또한 한·미가 기왕에 합의한 연합토지관리계획(LPP)과 주한미군기지 시설종합계획(MP) 추진은 현실적으로 방대한 시간과 공간 확보의 싸움이므로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전쟁지휘부의 전술지휘통제체제(C4I)의 이전만 하더라도 전작권 단독 행사에 대비해야 하고 이전 비용도 기반체제 구축과 장비교체에 무려 2000억원이 드는 대작업이다.
따라서 순전히 실무적 차원에서 볼 때 지난주에 마무리된 방위비 분담 협상과 마찬가지로 최종 마스터플랜이 완성되기까지는 이전 기간과 예산 소요에 대한 시행착오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기술적 측면에 있는 게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정치적 인식 및 정책적 사고방식의 차이가 크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령부와 기지 이전을 추진하다 보니 안팎으로 동력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마치 주권이나 회복하듯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한미연합군사령부가 해체되고 유엔군사령부의 기능도 유명무실해지는 마당에 기지 이전 문제의 심각성이 정치적으로 제대로 인식될 리가 만무하다. 기실 용산의 미군사령부는 한국 측이 이전을 먼저 요구했고 전방의 미군기지들은 미국 측이 군사개혁의 일환으로 후방 재배치를 원한 것으로, 모두 안보환경 변화에 대한 고도의 전략적 판단을 요하는 군사동맹의 구조적 문제다. 즉, 오직 양국 지도부 간에 연합방위체제의 미래에 관한 확고한 정치적 합의를 바탕으로 군사적으로 신중히 접근해야 할 장기적 과제라는 뜻이다.
물론 기지 이전이 늦어지면 전작권 이양도 그만큼 지연되니 한국군이 원하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현 상태의 갈등과 마찰이 양국의 다가오는 대선 정국과 맞물려 확산되면 애써 큰 비용 부담하느니 아예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하거나 철수하라는 반미 및 반한 감정적 요구가 양쪽에서 동시에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가 언제까지 미군에 의존해야 하느냐”며 “당장이라도 전시작전권을 단독행사할 수 있다”고 이미 호언장담했고, 심지어 용산기지를 ‘점령군의 유물’로 폄훼하며 좌파들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한 적도 있다.
지난 12일 역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대장 10명이 버웰 벨 연합사령관에게 전작권 이관과 연합사 해체를 반대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은 바로 이같은 배경에서 읽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연합작전체제의 전쟁억제력과 방어력의 효율성을 잘 아는 이들이 이렇게 들고 나선 것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무지와 판단착오로 국가안보 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이 핵무장해도 우리가 군사적으로 우월하다든지, 북핵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어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북핵을 용인한 듯한 망언일 뿐만 아니라 안보를 걱정하는 모든 국민을 참담한 절망감에 빠지게 한 일종의 자기배신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은 한미 안보동맹의 미래에 대한 정치적 확신과 군사적 자신감을 양 국민들에게 심어줄 때이지, 기지 이전 문제로 지엽적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더욱이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 위기가 절정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 보다 대승적 차원에서 동맹의 기본정신에 충실해 양국 지도부의 전략적 결단이 있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남주홍 / 경기대교수·국제정치학
** 이 글은 문화일보 12월15일자 '포럼'으로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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