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진보정당활동을 통해 '자주민주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
'일심회' 이정훈 前민노당 중앙위원 공판
1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는 '일심회'사건으로 구속된 이정훈 前민노당 중앙위원의 공판이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 이정훈 씨는 '평소에 생각했던 자주민주통일을 현실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민노당에 가입했다"며 민노당에 입당한 배경을 밝혔다. 그는 또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문건의 중심내용은 제가 정리한 것이지만 세부 내용이 다르다. 누가 작성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장민호와 서로 자료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 알 수 없다"며 심문 대부분에 대해 진술을 거부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먼저 이정훈 씨의 경력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정훈 씨는 2000년 해외 유학을 마친 후 민노당에 가입했다. 당 중앙위원, 서울시당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민노당 활동과 더불어 인터넷 영어교육업체를 운영하며 생활했다. 그는 82년 고대에 입학, 한국사회연구회에 가입했고 85년에는 美문화원 점거사태에도 가담했다. 졸업 후 93년까지 소위 '노동운동'을 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후 '노동운동'을 그만 두고 호주와 영국으로 유학, 동북아 지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초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소위 '진보정당활동'에 대해 공부하려고 다시 유학 준비를 하다 민노총이 합법화되고 민노당의 활동이 왕성해지는 것을 보고는 국내에서 영어관련 사업을 하며 눌러앉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민노당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허인회 前열린당 청년위원장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고교 선배인 장민호씨를 만나게 되었다고 밝혔다.
장씨를 만나면서 그가 성균관대 운동권 출신인 점, 주한미군이었으며 미국시민권자라는 것 등을 알게 됐고 이후 자신과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통한다고 판단, 자주 만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씨의 진술에 따르면 장민호씨가 이정훈씨를 '포섭'한 게 아니라 이정훈씨가 장민호 씨에게 '민노당을 위해 재정 지원을 비롯 여러 면에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 만나면서 장민호 씨의 재정지원은 지지부진한 반면 정세분석과 정책 등에서 뛰어난 면을 보여 민노당에 대한 여러가지 사안을 논의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장민호씨의 민노당 입당 여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장민호씨는 그가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 사규 때문에 당원이 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 외부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내 문제를 다양하게 의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정훈 씨는 검찰이 압수된 문건 내용을 중심으로 누가 문건을 작성했는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장민호씨에게 보고한 사실이 있는지, 북한 대남공작요원을 만난 사실이 있는지 묻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작성한 게 아니다' '북한 사람을 만나기는커녕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다'며 관련 사실 대부분을 부인했다.
그는 특히 검찰이 민노당 내에서만 알 수 있는 지구당 위원장의 개인적 능력과 성향 평가, 노선, 사업내용, 활동 정도 등에 대해 자세히 서술된 자료와 민노당의 선거 평가 등을 읽어주며 '본인이 쓴 것 아니냐'고 묻자 "전반적인 부분은 제가 쓴 게 맞지만 제가 쓰지 않는 표현들이 있다"며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이 "당신 컴퓨터와 집에서 압수된 디스켓에 있던 문건"이라고 추궁해도 "어떻게 내게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다.
중국에서 북한 대남공작요원을 만난 혐의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중국에 간 사실은 있지만 누구를 만나러 간 게 아니라 영어관련 사업을 하다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저작권에 대해 알아보려고 시장조사차 갔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검찰 측이 "그럼 피고인은 중국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자 "중국어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저작권 시장 문제는 책의 유통만 살펴봐도 알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서점과 백화점을 돌면서 시장조사를 했다"는, 조금 황당한 주장을 폈다.
이정훈 씨는 당시 중국에 처음 갔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전한 기억도 없고 가이드도 동행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검찰 측이 황당해하며 "그렇다면 당시 사업을 하면서 법인세를 낸 기억은 있느냐"고 묻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검찰 측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자 "요즘은 가이드 책이 잘 나오기 때문에 책 몇 권이면 (중국 지리는) 훤하게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되자 그는 "제가 작성한 적이 없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술거부하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일부 문건 내용에 대해서는 "제가 작성한 문건과 내용은 비슷하지만 세부 표현이 다르다. 누가 작성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장민호씨의 대북보고문건에 대해서도 "장민호 선배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장민호씨가 혐의를 일부 시인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검찰 측이 심문 중 밝힌 압수 문건에는 주체사상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거나 기회주의자라거나 합법적 선거주의를 표방한다거나 하는 등으로 민노당 주요 인물들의 성향이 자세히 평가돼 있었다. 또한 '일심회'가 민노당, 특히 민족해방(NL) 계열이 주도하는 자주통일위원회를 활용해 민노당을 소위 '통일전선 대중정당'으로 만들려 했다는 것이 드러나 있었다. 이를 위해 민노당 내 김 모씨와 권 모씨를 시켜 만든 하부조직이 '선군정치연구회'와 '8·15' 조직이다. '일심회'는 이와 함께 미군기지이전, 서울 상암동 박정희 기념관을 어린이 도서관으로 바꾸는 사업 등을 통해 문제를 크게 만들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문건에 따르면 이들은 민노당을 '통일전선 대중정당'으로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합법적 선거를 통해 이기려는 태도를 큰 문제점으로 보고 있었다.
이와 같은 문건은 대부분 장민호씨와 이정훈씨에게서 압수한 디스켓과 컴퓨터에서 삭제된 걸 복원한 것이라고 말해도 "자신의 문건과 내용 줄기는 일치하지만 세부 표현에서 다르다"며 작성 사실을 부인했다. 장민호 씨와 서로 자료를 주고받은 것은 인정하면서도 언제 어떻게 받아 보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진술로 일관했다. 재판이 2시간을 넘어서자 이정훈 씨는 진술거부로 일관했다.
이날 재판에는 50여 명의 방청객이 모였다. 민노당원이나 좌파단체들과 애국단체 회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법원 경위는 지난 번 재판과 같은 상황을 우려한 듯 "이 곳은 법정이지 피고인을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의견을 나타내는 곳이 아니다"며 재판 중 정숙해줄 것을 주문했다.
한편 재판 진행에 앞서 검찰 측에서 '2만 페이지나 되는 공소사실을 일일이 피고에게 보여주면서 심문할 수 없어 질문만 하겠다'고 하자 변호인 측에서 '검찰 심문 내용을 변호인 측도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재판이 5분 가량 늦어지기도 했다. 변호인 측은 또한 검찰이 심문 과정에서 "장민호씨가 주사파라는 걸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주사파라니? 그런 표현은 예의가 아니다"고 항의하는 등 이전 재판에서 논란을 빚었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konas)
전경웅 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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