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관계된 비화들"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주관 강연회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건국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이 老 강사에 의해 밝혀질 때마다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잘못 전해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안타까움이 교차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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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회장 이홍구)와 우남 이승만 연구회(회장 이주영)가 주최한 제20차 콜로키엄이 15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정동 배재학술지원센터 회의실에서 ‘이승만과 관계된 비화들’을 주제로 개최되었다. 발표자는 허도산 전사연구원 원장이었다.
이 자리에는 이홍구(전 국무총리)기념사업회장을 비롯, 강영훈 전 국무총리 등 우남 이승만 박사를 기리는 사람들이 강연장을 꽉 메웠다.
허 원장은 이 날 1시간 30여분 간 진행된 강연에서 해방 후 이 전 대통령의 미 군정치하에서의 남북협상 관계에서 반민특위, 6·25전쟁, 김창룡 육군특무대장 저격사건, 장충단 공원 집회사건과 3·15 정·부통령 선거관계 등을 중심으로 속사포처럼 일사천리로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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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원장은 당시 이 박사는 물론, 조병옥 박사나 여운형, 장면, 김준현 등과 같은 해방정국에서 한국 현대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과의 연분을 중심으로 세세한 사항까지 줄줄이 엮어 나가 마치 한편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에 젖게 만들었다.
허 원장은 누구보다도 이 전 대통령을 '오직 국가와 민족만을 생각한 전형적인 지도자'로 평했다.
허 원장은 군정초기 군정장관인 하지 중장과 이승만과의 불협화음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었다. 하지 장군은 이승만을 싫어하고 김규식을 좋아해 그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려고 막후에서 노력했으며, 이승만이 미국에 가서 트루만 대통령을 만나고 귀국하려 했을 때 이를 방해해 결국 이승만이 중국의 남경으로 날아가 장개석 중국 총통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으며 이 과정에서도 맥아더 장군의 도움을 받게 된 내용들을 상세하게 설명 했다.
그는 남북합작 과정과 관련해서 김규식이 북한으로 협상하러 간다해 이승만은 제대로 돌아올 것인가 염려를 하면서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서는 친동기처럼 대하고 남북협상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왜 저러나 하고 눈물도 흘렸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김구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나 평양 군중대회 시 김일성은 상석에 앉고 김구는 땅바닥에 앉혀놓은 가운데 김일성이 폭언을 해 김구 선생이 '창피해서 어떻게 남으로 돌아가느냐'면서 자살소동까지 벌였다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분개해 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민족 지도자에 대한 암살배후에 대해 송진우 선생의 암살범은 그의 경호원이었던 유근배와 한현우 라면서 여운형의 암살범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분명치 않다고 말하고 다만 이승만의 배후설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또 김구 선생 암살 배후에 대해서도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장석형씨의 말을 인용해 한마디로 '정신 나간 소리'라고 배후설을 부인하면서 이 박사 또한 정적들로 돈암장 시절을 비롯,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여러 번 피습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장면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면서 이 박사는 장면을 여러 면에서 챙겨주었지만 장면은 이 박사를 자주 욕하고 헐뜯었다고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결코 그래서는 안될 일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6·25전쟁과 관련해서는 1948년 아이젠하워, 리미츠, 레이제독 등 미 장성들이 모여 한국은 전략적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해 1950년 에치슨이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하는 에치슨라인을 발표했지만 이에 앞서 49년 맥아더 장군은 한국에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사실을 1천여통에 달하는 전문을 본국으로 전송했지만 무용지물 되었다고 말하고는 이는 미국이 한국에서 전쟁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맥아더 장군은 당시 미 육군참모차장인 리지웨이 장군에게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라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전쟁과 관련해 우리 군의 최고 원로이자 6·25 전쟁영웅으로 존경 받는 백선엽 대장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는 자신이 백선엽 장군을 존경해 지금도 가슴에 백 장군의 사진을 품고 다닌다고 운을 뗀 뒤 "백선엽 장군이 다 잘했지만 한가지 잘못한 점이 있다" 며 "당시 공비를 잡아 정보를 입수해 보니 한강이북에서 백선엽의 1사단을 포위코자 해 그대로 두면 문산 방면에서 돌출돼 완전 포위될 우려가 있어 김홍일 장군이 채병덕 총장의 지시를 받고 부대를 빼라고 했지만 총장의 명령이 없으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부대가 패퇴하는 상황까지 간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전사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또 맥아더는 가장 존경받는 사람인데 비해 아이젠하워는 한국을 기만한 장군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미 공군대장을 지낸 리메이 장군의 증언을 소개하면서 미국이 처음부터 강하게 나갔으면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을 제기했다.
그는 또 후일 미 합참의장과 월남전을 지휘한 테일러 장군의 말을 인용해 맥아더 장군이나 한국의 이승만 같은 사람이 월남에 있었다면 월남은 적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하고는 시일이 지난 후 하지 장군도 한국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사사건건 (자신의 주장에) 간섭했지만 그(이승만)의 말이 옳았다고 고백했고 브래들리 장군도 트루만 대통령이 큰 실책을 범했다고 밝혔음을 상기 시켰다.
3·15 부정선거와 관련한 부분에서 허 원장은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그는 3·15부정선거 결과로 이 대통령이 그만 두었다는 말을 들을 때 제일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내가 정치 고문을 했더라면 괜찮았을 것이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자유당 정부 부통령 후보로 나선 이기붕은 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해 김준현을 후계자로 하라고 군부에 지령을 내렸지만 안되었다며, 4·19후 이 박사를 찾아가 김준현이 인사하니 이 박사가 낭산(김준현 호)을 진작 후계자로 했어야했는데 하면서 후회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는 강연의 말미에 박정희 정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소 서운한 기색이 보이는 듯 했다. 이 박사는 일본과의 국교관계에 대해서는 일본이 한국을 36년 착취했으니 40억달러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장면정부에 와서는 15억달러로, 그리고 공화당 정부에 와서는 결국 5억달러로 차관이 성사되었다고 차관 도입과 관련한 내용을 거론하고는 이외에도 이 박사는 확고한 해양주권설을 선언해 일본 배가 독도 근처 등 우리 영해에 단 한 척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만 이것마저 크게 변질되고 말았다고 말해 독도에 대한 김종필 전 총리의 책임론도 거론했다.
그는 또 반민특위에 대해서도 최근 좌파들에 제기되고 있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강한 반감을 내 비췄다. 이 박사의 정책이 잘못 전해지고 있는데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해산했다고 하는데 대해 "끝까지 재판을 위해 나섰다"면서 관련 사실을 조목조목 들이대기도 했다. (Konas)
이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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