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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우상화와 관료주의

Written by. 제성호   입력 : 2007-01-26 오후 3: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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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아에 도착해서 공항을 나오는 데 한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카다피가 두 손을 모으고 군중에게 화답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사진이었다. 이러한 사진은 리비아 시내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묵었던 호텔 1층에만 해도 4개의 대형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길거리를 오가는 도정에서 눈에 띤 사진 가운데는 특히 ‘37’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많았는데, 이는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1969년 9월 1일 혁명을 한지 37주년이 됐다는 것으로 이 대형사진들은 2006년에 전국적으로 부착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고지도자의 우상화와 관련해서 이 나라에서는 북한과는 달리 카다피의 동상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공항에서 나를 영접한 리비아 외교관에게 지도자가 나를 환영하고 있다고 농을 했더니, 그는 정색을 하며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나중에 주리비아 한국대사를 비롯한 우리 외교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이 나라에서 카다피라는 단어를 입에 오르내리는 것 혹은 지도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작년 하반기에 한 리비아 기자가 지도자에 대해 잘못 말했다가 그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카다피는 지금 아무런 공식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과거 그는 총리를 비롯한 각종의 지위를 모두 역임하고 지금은 최고지도자 내지 국가원로로 추대되어 있다). 하지만 리비아에서 그의 지위는 절대적이다. 외교사절의 신임, 파견도 그가 담당한다. 그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군주국가에서의 군주, 이슬람권 국가에서의 최고 종교지도자를 모두 합친 것과 같은 절대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해지고 있다.

 리비아에서도 후계자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들이 셋 있는데, 첫째는 무능해서 전혀 거론되고 있지 않고 둘째는 30대 초반인데, 서방언론에서 의하면 이 사람이 가장 유력한 사람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는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한 NGO의 장으로  리비아 인권문제와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불가리아 간호사 사형언도사건'(주사를 잘못 놓아 400여명의 어린이들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으로 1심,2심 모두 사형선고를 받았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으나, 2심에서 다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이다)에 관련해 서방세계에 대해 리비아의 인권상황을 변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얼마전 리비아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가 혁명원로들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셋째는 20대 중반으로 현재 이태리 축구팀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제스포츠친선교류협회(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음) 회장 직을 맡고 있다. 혹자는 둘째가 유력하지만, 카다피가 실각하면 리바아에 정치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널리 만연되어 있는 비밀주의가 팽배해 있다. 또한 관료주의와 관료부패가 고질적인 병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중국에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만만디’가 판을 치고 있다. 약속을 위반하기가 일쑤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첫째도 Patience, 둘째도 Patience, 셋째도 Patience라고 한다.

 주 리비아 한국대사는 자신의 신임장 제출에 관한 이야기를 필자에게 해주었다. 자신이 이 나라에 부임한 직후, 2달이 넘도록 신임장을 지도자에게 제출하지 못했다고 한다(통상 다른 나라에서는 늦어도 1달이면 신임장을 접수국 국가원수에게 제출한다). 그는 5-6개월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신임장을 제출할 수 있었다.

 하루 전날 늦게 리비아측으로부터 신임장 제출식 참가를 통보받았는데, 지도자에 대한 알현 장소는 트리폴리에서 500-600km 떨어진 Sirte(이곳은 제2의 행정수도로 건설되었지만 실제로는 행정수도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거의 모든 국정이 트리폴리에서 행해지고 있다. 다만, 총인민회의의 대회는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Sirte는 카다피의 고향이 인근에 있어 이런저런 이유로 지도자가 이곳에서 자주 머문다고 한다.)란 곳으로 다음날 오전 열시까지 여기로 오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통보내용은 이게 전부였다. 전화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또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하는지, 통보한 사항이 참말인지 아니면 장난전화였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외교관행상 대사의 신임장 제출을 위하여는 일주일 전에 대사관에 통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사는 무작정 새벽아침에 몇시간 동안 차를 타고 Sirte(여기에는 공항이 없어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없다)로 갔더니 거기서 가나 대사를 만났다고 한다. 그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고 한다.

 필자는 운 좋게도 리비아 도착시 리비아 외교관이 공항에 영접 나와 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베트남 참가자 2명은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아 잠시 헤멨다고 한다. 그리고 발표자의 비서쯤 되는 젊은 여자가 나에게 상당한 불평(?)을 늘어 놓았다. 그리고 내가 받은 대접을 꼼꼼히 물어보기도 했다.

 사실 필자도 리비아로 떠날 때 정확한 세미나 개최일자를 몰랐다. 대략 20일 하루로 알고 있었는데(주한 리비아 대사에게 물어보았더니 잘 모르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현지에 가서 보니 21일과 22일 이틀간 세미나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을 준비하는 것이 너무나도 서투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나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리비아에 투자한 경우에도 투자대금 전부를 회수하지 못하고 20%만 받은 적도 있다고 우리 외교관은 전했다. 그래서 참고 오랜 기간 잘 구슬러 현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나중에 보전을 받았다고 말했다. 약속을 제대로 잘 안 지킨다는 것이다.

 리비아에서의 관료주의와 비효율은 떠나올 때 공항에서 잘 확인할 수 있었다. 핸드 캐리지를 검색대에서 통관시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통상 1-2번 하면데 반해, 리비아에서는 무려 다섯 번이나 했다. 각기 다른 부서(예컨대, 항공안전국, 경찰의 경비국, 국가보안국 등)에서 나와 여권과 손짐을 조사하였다.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일자리 유지 차원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권력기관간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됐다. 구조조정을 비롯해서 이 나라가 더욱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비아는 과거 테러를 수출한 나라로, 테러지원국으로 이름을 떨쳤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아마도 지금 리비아 항공기를 테러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리비아 시내에 필자가 가 본 두 개의 호텔에서는 호텔을 드나들 때마다 흉기여부를 소지하고 있는지 자동으로 검색(신체 및 휴대물품 포함)을 하는 장치를 설치해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테러를 수출했던 나라가 테러를 당할 까봐 보안검색에 열심이라는 사실이 필자에게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이었다.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출처:프리존(http://www.freezone.co.kr/)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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