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훼손은 엄청난 안보 逆주행이다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는 어제오늘이다. 주한미군 감축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역시 예정코스대로 진척되고 있으며,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 불원간 결행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욱이 일부 친북(親北)개층의 '반미(反美) 구호'는 여전히 거세고, 우리사회의 안보불감증마저 턱없이 해이해진 터에 이제는 국가안보가 정치게임 또는 '포퓰리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동맹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갖고있으며, 왜 그토록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하는가.
동맹(同盟)이라 함은 둘 이상의 국가가 서로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함께 행동하기로 맹세하여 맺는 관계를 일컫는다. 달리 말해 '공통의 적(敵)'을 공유하는 나라, '적(敵)이 같은 나라'가 '동맹'이다. 사전에 나오는 정의(定義)가 그렇다. 한미동맹 역시 당초 그런 필요성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하여 출발했었다.
동맹국이 서로 '사이가 좋은 나라' '친한 나라'가 되어있음은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부수적 효과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를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설사 '동맹' 체결에 성공했을지라도 '공통의 적'이 없다면 그 관계가 성공적으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국제정치학상의 개념 풀이이다.
동맹이론의 선구자인 국제정치학자 조지 리스카(George Liska)는 '동맹이란 국제정치 그 자체와 동의어(同義語)'라고 말한다. "동맹관계는 당면한 위험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되며, '공통의 적(敵) 존재'가 우선적인 요건임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해 동맹이라 함은 결국 전쟁이 나면 같은 방향으로 총을 쏘겠다는 '국가간의 약속'이다. 이런 약속이 깨지면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국가 사이라 할지라도 동맹관계는 결국 유명무실해져 백지상태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친한 사이'라는 명분만으로 동맹관계가 존속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서로 친한 사이의 나라'라고 해서 반드시 동맹이 맺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동맹관계가 맺어지면 싫든 좋든 '국가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서야만 하는 매우 피곤한 상황에 당면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의 적'이 존재할 경우 서로 적대적인 국가끼리일지라도 동맹을 맺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대체로 큰 적에 당면한 경우에 그렇다. 2차대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사실상 '적대관계'에 있으면서도 히틀러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동맹을 맺었었다. 히틀러 패망 직후 미소(美蘇)동맹은 절로 깨지고 냉전시대로 돌입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한국 내 좌파(左派)들은 "우리가 이만큼 컸는데도 미국이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한미간에 문제가 생긴다"는 억지를 내세우며 "한미동맹 관계도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라고 '반미(反美)'에 불씨를 지펴왔다. 이 같은 발언들은 '동맹관계의 본질'을 곡해 또는 오해한 데서 나온 궤변이다.
한미동맹은 미국이 한국전쟁 휴전(1953년) 당시 '우리와 친해서' 맺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 논리에 동의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원해서'가 아니라, 당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외교적 기량을 발휘하여 맺은 조약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어렵게 맺은 결실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 막바지 무렵, 한미동맹을 체결해 주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휴전에 결사 반대할 것이며, 독자적으로라도 북진(北進)하여 통일을 이룩하겠다고 미국에 대해 집요하게 공세를 취했고, 제3의 해법(解法)을 찾지 못한 미국은 마지못해 우리의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제의를 받아들였다.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동맹의 부산물일 뿐이다. 친하니까 동맹을 맺은 것이 아니라, 동맹을 맺음으로써 친해질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옳다. 동맹관계는 이처럼 냉혹한 논리 위에 존립한다. 어느 한쪽만의 일방적인 '국익 취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미(韓美)동맹은 이승만 대통령의 끈기가 거둔 승리였고, '한국이 기선을 잡고 쟁취한 업적'이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의 이 '동맹관계' 체결은 세계 외교사(外交史)에도 특이사례로 기록될 정도로 전례 없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미국은 19세기 아편으로 매년 수천만금을 중국으로부터 앗아갔던 영국과 달리, 중국에 무역으로 매년 수 십만금의 이익을 주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게까지도 '괜찮은 나라' '부강하되 중국에 교만하거나 약소국(弱小國)을 능멸하지 않는 나라' 로 인식되어있다.
지난 50여년간 한국의 안보에 그야말로 '사활적인 도구' 역할을 다해온 것이 한미동맹이다. 미국이 한국전쟁 발발 후 1주일만에 군대를 한반도에 투입시키는 신속함을 보였음은 세계가 놀라는 사실이다. 김일성 역시 1949년에 미국이 한국에서 철수한 사실로 미루어 미국이 한국을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으로 단정했다.
북한은 미국이 그토록 빨리 한국전쟁에 개입할 수 있었던 데에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다. 좌파(左派)들이 '미국의 음모론'을 제기했던 것도 그런 의문에서였다. '미국이 공산주의와 싸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 공백을 만들어놓고 유인을 했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미주리주(州)의 작은 도시 인디펜던스의 고향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있었던 트루먼 대통령은 애치슨 장관으로부터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고 그 다음날 오후 워싱턴으로 돌아와 전황을 파악하고서 미군 파병을 결정했다. 최초의 보고 접수 후 1주일만이었다. 소련의 독일 침공 가능성에 대비하여 '미국의 힘'을 과시하고자 했던 의도에서 그런 신속함을 보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에 투입됐던 미국 병력 연인원은 자그만치 170만명이었다. 당시 미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여 그런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었다. 한국은 미국의 군사력 파견 중요도 우선순위에서 유럽 등지의 10여 개국 다음(12번째)이었다.(李春根박사 글 참조) 미국이 군대까지 파견해서 도와줘야 할 나라 중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음이 이 같은 전후 사실을 입증한다.
이처럼 지난 50여년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었던 한미동맹이 이제 '유명무실한 존재'로 추락할 위기에 놓여있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한미동맹 덕분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억제'는 물론, '경제적 번영'이라는 부수적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향후 한미관계의 실타래가 이완되고있음이 노출되면 한국의 고구려 역사 말살을 기도하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일본의 독도(獨島) 영유권 주장은 가일층 치열해질 것임은 '강 건너 불'을 보듯 확실시된다.
이제까지 패권국가 '미국의 존재'로 인해 영토확장 야욕을 숨겨왔던 주변 강대국들은 그동안 우리 곁을 지켜온 미국이 우리 곁을 떠나는 낌새를 보일 경우 이빨을 드러내어 다가설 것이다. 그것이 정해진 수순(手順)이다.
DJ정권 출범 이후 9년간의 가장 큰 실정(失政)은 민족공조를 앞세워 한미동맹체제를 되돌아올 수 없는 선(線)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이 나라 국가안보를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몰아세운 점일 것이다. (konas)
정 준 (코나스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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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오후 3:56: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