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납북자 등 自國民 포기事例
문전박대·외면, 적극적 질책(?)까지
Written by. 김성욱
입력 : 2007-01-29 오전 11:47:42
중국 선양(瀋陽)영사관의 박대 속에서 극적으로 한국행에 성공한 납북자 최욱일氏 件으로 정부의 「자국민보호」 행태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90년대 이래 국군포로 59명, 납북어부 4명이 한국으로 탈출했으나, 아직까지 단 1명의 국군포로나 납북자도 정부의 적극적 노력에 의해 귀환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납북자 중 未귀환자가 485명에 이르고, 4만 명 이상의 국군포로 중 현재 500여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으며, 10만 명 이상의 탈북민이 중국 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유랑하고 있지만, 정부는 탈북민 보호는 물론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당신 세금 낸 적 있어요?』 이재근氏 件
김대중 정권 이래 對北굴종정책 아래서 탈북자·납북자·국군포로에 대한 정부의 보호대책은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다.
1998년 탈북한 최초의 납북어부 이재근씨가 중국 칭다오(靑島)영사관에 구원을 요청했을 때, 한국 외교관은 『당신 세금 낸 적 있어요? 왜 국가에 부담을 주려고 그래요?』라고 면박을 주었던 적이 있다.
이재근씨는 탈북하고도 2년간 중국을 방황하다가 月刊朝鮮 김용삼 기자에게 구출돼 2000년 여름 귀국했었다.
△「강제북송 후 凍死」 국군포로 가족 9명 북송
2006년 10월11일에는 국군포로 가족 9명이 탈북 후 중국 선양(瀋陽) 주재 한국 총영사관 직원이 주선한 민박집에 머물던 중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다.
외교부가 이들의 강제북송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변을 당한 지 며칠 후였다. 외교부는 『중국 공안의 일제 검문검색에서 체포됐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검문이나 검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포로 가족들이 투숙했던 복수의 민박집 관계자들은 『그 사람들(국군포로 가족)이 온 지 1시간쯤 돼서 공안(公安)들이 들이닥쳐 「북조선 사람들 어디 있느냐」며 잡아갔다』며 『이들의 투숙 사실을 미리 알고 있는 듯했다』『공안이 검문검색을 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강제 북송된 국군포로 가족 9명 가운데 1명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조사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최근 전해졌다. 1월19일 한 對北소식통은 『북송 가족 중 노인 1명이 한 달 전 보위부에서 동사(凍死)했다』면서 『현재 나머지 가족의 행방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내 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최욱일氏 件
납북 31년 만에 북한을 탈출한 오징어잡이 어선 「천왕호」의 선원 최욱일(67)씨는 1월2일 중국 선양(瀋陽) 총영사관측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담당 직원과 통화하자 오히려 번호를 알게 된 경위를 질문 받는 등 박대를 당했다.
崔씨는 영사와 직접 통화를 하길 원했지만, 영사관 직원들은 『우리 일이 아니다』면서 전화를 이 부서 저 부서로 계속 돌렸다.
『우리는 동북 3성 한국인 사건사고를 다루는 곳이지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곳이 아니다』『탈북자 담당을 연결시켜주겠다』는 등의 답변만 되풀이했다.
보다 못한 崔씨의 부인 양영자씨가 崔씨 대신 『탈북자가 아니라 한국인이다』『통일부와 외교부에 구명 요청 공문을 보냈는데 받지 못했느냐』고 묻자, 영사관측은 『그런 문건을 받은 적이 없다』『상부의 지침이 없었다』『한국 정부에 전화하라』는 등의 말만 반복했다.
崔씨는 수차례 전화 끝에 탈북자 담당자 휴대전화를 알아 내,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담당자는 『제 전화번호 어떻게 아셨어요』『누가 가르쳐줬느냐』『10분 후에 다시 영사관으로 전화하라』고 힐난했다.
崔씨가 10분 후에 다시 전화를 해서야 이 담당자는 崔씨의 생년월일 등을 묻고 회의 후 다시 전화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사관측에서는 3일 오전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최욱일씨는 1월5월 납북자단체의 도움으로 한국정부에 신병이 인도됐고 16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정부는 모르겠다 속편한 소리만...』 국군포로 한만택氏 강제송환
국군포로 한만택(73)씨는 2005년 12월27일 탈북 했다가 하루 만인 28일 중국 공안(公安)에 체포된 뒤 강제북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한국 정부가 송환을 요청하기 전인 12월30일 북송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韓씨가 북송된 후인 지난 해 3월 한국의 조카와 전화통화한 내용에 따르면, 韓씨는 1월6일까지 중국에 억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정부의 공식발표를 뒤엎는 내용들이었다.
한국의 조카 며느리인 심정옥(51)씨는 『삼촌의 체포 소식을 듣고 12월 29일과 30일 이틀 동안 국방부와 외교부에 구명 요청을 했다』며 『중국이 한국정부의 송환 요청을 받고서도 북송한 것이 아닌 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韓씨는 육군 8사단 소속으로 형 만순씨와 함께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1953년 6월 중부 전선 「김화(金化)」 전투에서 중공군 포로가 된 뒤 함북 무산의 탄광에서 일했다. 韓씨는 1월 6일쯤 북송된 후 함북 청진시 보위부에서 한 달여 고문을 받은 후 함북 무산의 집에 가택 연금됐으나, 지난 4월쯤 再탈북을 시도하다가 발각돼 평안남도 북창정치범 수용소(평남 북창군 18호 관리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韓씨의 조카 정구(55·직장인)씨는 2006년 1월31일 청와대를 찾아 한국 정부의 대처방식에 항의하며 삼촌에게 수여된 화랑무공훈장을 반납했다. 그는 송환촉구 탄원서를 함께 제출하며 이렇게 말했다.
『삼촌이 중국 공안에 체포된 것이 12월 말인데, 그동안 정부는 「모르겠다. 확인 중이다」 「설마 국군 포로인데, 강제로 북한으로 보내겠느냐?」는 속편한 소리만 계속 했잖아요. 이렇게 정부가 성의 없이 대처하면 앞으로 누가 이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나가겠습니까?』
△『도와줄 수 없어요』 대사관女. 장무환 氏 件
2006년 11월 국군포로 장무환씨가 1998년 駐中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도와줄 수 없다』며 매몰차게 전화가 끊겨버린 동영상이 재공개돼 물의를 빚었다. 이른바 「대사관녀」 사건 때문에 외교부는 공식 사과를 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방송에서 張씨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나 국군포로인데 한국대사관 맞습니까』라고 했다. 이 여직원은 『맞는데요』라고 대답한 뒤 張씨가 『좀 도와줄 수 없는 가해서…』라고 하자 『아 없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답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사관녀」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지난 18일 600회 특집 「진실과 희망 찾기, 그 15년간의 기록」을 통해 지난 1998년 10월18일 방송된 「국군포로 장무환-50일간의 북한탈출기」편을 다시 내보내면서 불거진 것이었다.
장무환씨는 98년 8월10일 북한을 탈출해 납북자단체의 도움으로 9월30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국민 죽는데 가족면담도 만류』 최영훈 氏 件
최영훈씨는 2003년 1월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항에서 탈북자들의 탈출을 돕다 체포돼 중국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지난해 11월 3년11개월 만에 석방된 뒤 귀국했다. 한국 정부는 수감돼 있는 崔씨를 단 한 번도 면회 오거나 확인하지 않았고, 심지어 가족의 면담요청을 만류하는 등 자국민 포기의 극단적 사례를 연출했다.
북한인권국제연대(대표 문국한) 등이 참여하고 있는 「중국당국의 최영훈 탄압 진상규명위원회」는 1월18일 서울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탈북자 지원 활동가 최영훈(43)씨에 대한 중국의 인권탄압 실상 보고대회를 갖고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보고대회에서 『지난해 9월 국제 민간단체들과 함께 인도주의적 탈북자 지원활동을 벌이다 중국 감옥에 수감돼 있던 崔씨는 당뇨와 고혈압 등으로 주사를 맞으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간수들이 10여명의 죄수들을 동원, 침대에 팔다리를 묶고 강제로 약물을 투여해 수차례 의식을 잃게 했다』며 『구타와 고문을 견디기 어려워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자국민이 중국 감옥에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고통과 비명 속에 죽어가고 있는데도 駐中 한국담당 영사는 당시 단 한 번도 면회 오거나 확인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가족이 면담요청을 하지 말도록 만류하고 중국당국에 대해 면담요청 거부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듣거나 그 결과를 가족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성욱/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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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90년대 이래 국군포로 59명, 납북어부 4명이 한국으로 탈출했으나, 아직까지 단 1명의 국군포로나 납북자도 정부의 적극적 노력에 의해 귀환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납북자 중 未귀환자가 485명에 이르고, 4만 명 이상의 국군포로 중 현재 500여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으며, 10만 명 이상의 탈북민이 중국 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유랑하고 있지만, 정부는 탈북민 보호는 물론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당신 세금 낸 적 있어요?』 이재근氏 件
김대중 정권 이래 對北굴종정책 아래서 탈북자·납북자·국군포로에 대한 정부의 보호대책은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다.
1998년 탈북한 최초의 납북어부 이재근씨가 중국 칭다오(靑島)영사관에 구원을 요청했을 때, 한국 외교관은 『당신 세금 낸 적 있어요? 왜 국가에 부담을 주려고 그래요?』라고 면박을 주었던 적이 있다.
이재근씨는 탈북하고도 2년간 중국을 방황하다가 月刊朝鮮 김용삼 기자에게 구출돼 2000년 여름 귀국했었다.
△「강제북송 후 凍死」 국군포로 가족 9명 북송
2006년 10월11일에는 국군포로 가족 9명이 탈북 후 중국 선양(瀋陽) 주재 한국 총영사관 직원이 주선한 민박집에 머물던 중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다.
외교부가 이들의 강제북송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변을 당한 지 며칠 후였다. 외교부는 『중국 공안의 일제 검문검색에서 체포됐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검문이나 검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포로 가족들이 투숙했던 복수의 민박집 관계자들은 『그 사람들(국군포로 가족)이 온 지 1시간쯤 돼서 공안(公安)들이 들이닥쳐 「북조선 사람들 어디 있느냐」며 잡아갔다』며 『이들의 투숙 사실을 미리 알고 있는 듯했다』『공안이 검문검색을 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강제 북송된 국군포로 가족 9명 가운데 1명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조사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최근 전해졌다. 1월19일 한 對北소식통은 『북송 가족 중 노인 1명이 한 달 전 보위부에서 동사(凍死)했다』면서 『현재 나머지 가족의 행방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내 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최욱일氏 件
납북 31년 만에 북한을 탈출한 오징어잡이 어선 「천왕호」의 선원 최욱일(67)씨는 1월2일 중국 선양(瀋陽) 총영사관측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담당 직원과 통화하자 오히려 번호를 알게 된 경위를 질문 받는 등 박대를 당했다.
崔씨는 영사와 직접 통화를 하길 원했지만, 영사관 직원들은 『우리 일이 아니다』면서 전화를 이 부서 저 부서로 계속 돌렸다.
『우리는 동북 3성 한국인 사건사고를 다루는 곳이지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곳이 아니다』『탈북자 담당을 연결시켜주겠다』는 등의 답변만 되풀이했다.
보다 못한 崔씨의 부인 양영자씨가 崔씨 대신 『탈북자가 아니라 한국인이다』『통일부와 외교부에 구명 요청 공문을 보냈는데 받지 못했느냐』고 묻자, 영사관측은 『그런 문건을 받은 적이 없다』『상부의 지침이 없었다』『한국 정부에 전화하라』는 등의 말만 반복했다.
崔씨는 수차례 전화 끝에 탈북자 담당자 휴대전화를 알아 내,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담당자는 『제 전화번호 어떻게 아셨어요』『누가 가르쳐줬느냐』『10분 후에 다시 영사관으로 전화하라』고 힐난했다.
崔씨가 10분 후에 다시 전화를 해서야 이 담당자는 崔씨의 생년월일 등을 묻고 회의 후 다시 전화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사관측에서는 3일 오전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최욱일씨는 1월5월 납북자단체의 도움으로 한국정부에 신병이 인도됐고 16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정부는 모르겠다 속편한 소리만...』 국군포로 한만택氏 강제송환
국군포로 한만택(73)씨는 2005년 12월27일 탈북 했다가 하루 만인 28일 중국 공안(公安)에 체포된 뒤 강제북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한국 정부가 송환을 요청하기 전인 12월30일 북송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韓씨가 북송된 후인 지난 해 3월 한국의 조카와 전화통화한 내용에 따르면, 韓씨는 1월6일까지 중국에 억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정부의 공식발표를 뒤엎는 내용들이었다.
한국의 조카 며느리인 심정옥(51)씨는 『삼촌의 체포 소식을 듣고 12월 29일과 30일 이틀 동안 국방부와 외교부에 구명 요청을 했다』며 『중국이 한국정부의 송환 요청을 받고서도 북송한 것이 아닌 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韓씨는 육군 8사단 소속으로 형 만순씨와 함께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1953년 6월 중부 전선 「김화(金化)」 전투에서 중공군 포로가 된 뒤 함북 무산의 탄광에서 일했다. 韓씨는 1월 6일쯤 북송된 후 함북 청진시 보위부에서 한 달여 고문을 받은 후 함북 무산의 집에 가택 연금됐으나, 지난 4월쯤 再탈북을 시도하다가 발각돼 평안남도 북창정치범 수용소(평남 북창군 18호 관리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韓씨의 조카 정구(55·직장인)씨는 2006년 1월31일 청와대를 찾아 한국 정부의 대처방식에 항의하며 삼촌에게 수여된 화랑무공훈장을 반납했다. 그는 송환촉구 탄원서를 함께 제출하며 이렇게 말했다.
『삼촌이 중국 공안에 체포된 것이 12월 말인데, 그동안 정부는 「모르겠다. 확인 중이다」 「설마 국군 포로인데, 강제로 북한으로 보내겠느냐?」는 속편한 소리만 계속 했잖아요. 이렇게 정부가 성의 없이 대처하면 앞으로 누가 이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나가겠습니까?』
△『도와줄 수 없어요』 대사관女. 장무환 氏 件
2006년 11월 국군포로 장무환씨가 1998년 駐中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도와줄 수 없다』며 매몰차게 전화가 끊겨버린 동영상이 재공개돼 물의를 빚었다. 이른바 「대사관녀」 사건 때문에 외교부는 공식 사과를 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방송에서 張씨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나 국군포로인데 한국대사관 맞습니까』라고 했다. 이 여직원은 『맞는데요』라고 대답한 뒤 張씨가 『좀 도와줄 수 없는 가해서…』라고 하자 『아 없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답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사관녀」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지난 18일 600회 특집 「진실과 희망 찾기, 그 15년간의 기록」을 통해 지난 1998년 10월18일 방송된 「국군포로 장무환-50일간의 북한탈출기」편을 다시 내보내면서 불거진 것이었다.
장무환씨는 98년 8월10일 북한을 탈출해 납북자단체의 도움으로 9월30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국민 죽는데 가족면담도 만류』 최영훈 氏 件
최영훈씨는 2003년 1월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항에서 탈북자들의 탈출을 돕다 체포돼 중국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지난해 11월 3년11개월 만에 석방된 뒤 귀국했다. 한국 정부는 수감돼 있는 崔씨를 단 한 번도 면회 오거나 확인하지 않았고, 심지어 가족의 면담요청을 만류하는 등 자국민 포기의 극단적 사례를 연출했다.
북한인권국제연대(대표 문국한) 등이 참여하고 있는 「중국당국의 최영훈 탄압 진상규명위원회」는 1월18일 서울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탈북자 지원 활동가 최영훈(43)씨에 대한 중국의 인권탄압 실상 보고대회를 갖고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보고대회에서 『지난해 9월 국제 민간단체들과 함께 인도주의적 탈북자 지원활동을 벌이다 중국 감옥에 수감돼 있던 崔씨는 당뇨와 고혈압 등으로 주사를 맞으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간수들이 10여명의 죄수들을 동원, 침대에 팔다리를 묶고 강제로 약물을 투여해 수차례 의식을 잃게 했다』며 『구타와 고문을 견디기 어려워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자국민이 중국 감옥에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고통과 비명 속에 죽어가고 있는데도 駐中 한국담당 영사는 당시 단 한 번도 면회 오거나 확인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가족이 면담요청을 하지 말도록 만류하고 중국당국에 대해 면담요청 거부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듣거나 그 결과를 가족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성욱/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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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누구를 위한 정쟁이며, 그 당시 국군포로는 얼마였는가? 그 포로중 중국에 탈북한분을 도로 북송되도록 방치한 외교통상부는 무엇하는자들인가? 자국의 국민의 권익과 신변보장을 외교적으로 해결키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상주시키는 외교관이 본분을 망각했다면 단호히 대처를해야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
2007-01-30 오전 8:56:41역사위 6,25분단후 엄청난 북남 포로 교한시에 사상검정없이 쇠뇌 정신 교란 사상의 철학으로 고향과 부모를 등돌인 분들 바로 포로입니다? 현재도 통일부는 남북 좋훈이유류 충성위 포로들은 북에서 인생을 한탄하며 대한민국을 한탄하며 부모형제의 고향 을 바랍며 통곡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
2007-01-29 오후 7:17: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