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로서 文의 문화와 武의 문화
어느 대상을 평가할 때 평가항목과 기준은 대단히 중요한데 우리사회는 어떤 기준으로 군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문화적 특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문(文)의 문화라고 지칭해도 좋을 만큼 그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비되는 문화의 특징으로 무(武)의 문화를 들 수가 있는데 이의 대표적인 것이 일본과 서양의 문화라는 것이다.
武의 문화는 국가단위로 오랫동안 전쟁과 평화가 교차되는 가운데 계속된 긴장과 대립 속에서 발달한 집단문화로 이러한 역사가 지속되었던 지역인 유럽과 일본이 대표적인 곳이다. 이 문화의 특징은 ①질서유지의 존중과 생활화와 ②실질의 존중이 그것인데 이의 파생문화가 합리주의와 무한추구의 철저성, 개량분석과 과학기술 그리고 경제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武의 문화가 반드시 군대문화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文의 문화는 문자와 문헌의 발달과 함께 비정량적, 추상적, 총체적인 농경적인 배경에서 발달한 문화로 천문지리와 사회현상의 원리가 일치하며 우주사회와 인간사회가 하나인 절대적인 이론으로 이러한 사회는 학문교양이 사회적인 신분의 척도가 된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일본문화를 무의 문화, 조선조의 문화가 문의 문화로 이는 오늘날의 우리의 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대표적인 사회계급도 일본의 무사와 한국의 선비가 있다. 이는 역사의 생활양식과 사상이 오랫동안 이어져 옴으로써 형성된 것인데 일본의 무사는 지주와 소작인으로 구성된 자경단에 변형된 장원의 사회보장제도를 지역기반으로 한 무력이 중앙의 정쟁에 개입하여 전국적인 하나의 계급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무사인데 무사는 1183년 이후 명치유신이 있던 때까지 700년 이상을 사회의 중심계급이 되어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였다. 반면에 조선의 선비는 주자학을 중심으로 유교를 숭상하면서 조선 초반 세종 이전을 제외한 400년 이상을 지배하면서 형성된 문화다.
武의 문화의 특징은 강한 단결력, 질서의 존중, 실질존중의 합리주의, 무한의 철저성이며 文의 문화의 특징은 하나의 가치를 지상화하고 이를 굽히지 않는 것과 학식을 존중하고 목가적인 자유와 자연과의 조화, 인공보다는 자연적인 것을 더 선호하는 것과 두터운 인정을 베푸는 사회가 그 특징이다.
무의 문화의 특징 중 강한 단결력은 일본이 분지라는 자연적인 장벽에 의하여 개개의 지역이 소국가를 이루어 번이 되었는데 에도시대에는 무려 265개의 번이 있었는데 이들 사이의 경쟁과 대립이 단결력의 원천이 되었다. 번 내부에는 빈틈없는 통제가 이루어져 이러한 현상이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는 부락이기주의로 발달하였다. 그러나 복종을 강요하면서도 부하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영하는 지극히 민주적인 요소도 있어 실질과 합리의 문화가 생성된 것이다. 경쟁과 대립은 힘의 정확한 측량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에 실질과 정밀성이 요구되었고 결과에 대해 구질구질한 이유를 대지 않는 것(앗사리;あっさり)이 특징이다.
이는 1853년 서양철선(黑船;くるぶね)이 일본개항을 요구할 때 서양의 무서운 힘을 알고 10년 이상을 고민하고 토론하다가 서구에 배우고 서구화하는 것을 택한 명치유신(明治維新)을 단행한 것이다. 또한 완전한 철저성은 유신개혁 이후 30년도 안되어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서 대국을 이기고 팽창과 부국강병이 안보불안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하여 온 나라가 전력 질주하여 결국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게 되었고 패전의 역사를 기록하는 과오를 범하였다. 무의 문화가 군국주의로 치달은 전형이었다.
우리문화의 특징인 文의 문화는 조선시대의 배불숭유정책에 기인된 바 크다. 그 이전에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시대였고 조선조가 시작된 이후 세종까지도 이러한 문무의 균형은 이루어져 왔다. 물론 중국을 중심으로 한 평화체제를 존중하는 조선의 건국이념이 문의 가치를 큰 비중으로 둔 것은 문의 문화를 예고한 것이다. 조선의 학문은 유교라는 단일가치의 판단만이 사회평가의 기준이었는데 이는 교양적인 인간의 무게만을 너무 중시하게 되어 사대부나 관료의 일상적인 인격과 채용에도 한시나 주자학이 중심이었다. 유교의 예(禮)에 대해서는 중국보다 더 철저한 변방적인 문화 특징으로 인하여 절대유일의 성전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격렬한 자기주장과 배타성이 특징이어서 다른 가치의 공존이 허용되지 않는 문화가 특징이다. 이러한 현상이 임금의 상례를 두고 당쟁의 주요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학식이 너무 존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도 과학적인 지식이라기보다는 주로 고전을 암기하는 주관적인 해석의 폭이 거의 없는 인문적인 세계의 것이었는데도 이는 사대부뿐만 아니라 평민들 사이에서도 보편적이었다. 이는 서양의 학문이 자연과학, 물리학, 수학, 해부학 등과 같은 실용적인 학문과는 너무 거리가 먼 학식이었다. 그리고 지식도 분석적 수량적이기 보다 종합적 추상적이었는데 이는 과거시험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교육상황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농업적이고 목가적인 자연을 즐기는 것과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일본은 집안에 인공정원을 가꾸는 대신에 한국은 풍광이 좋은 곳에 집을 지어 살면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이다.
조선조 시대에 우리의 문의 문화는 무인의 천시로 나타났는데 문신이 무신을 수직적으로 통제하는 여러 문무의 차별적인 제도들을 운영하였다. 이의 사례를 보면 첫째, 무반의 직급은 정3품 이하의 계급만 있고 그 이상은 문신의 계급만 있었다. 둘째, 권력의 핵심관직은 문신에 치우쳐있고 군의 주요자리도 문신과 무신의 겸직으로 하였다. 셋째, 군대의 최고직위인 삼군위인 무신의 대장 직위 위에 문신이 이를 통제하였다. 넷째, 무반은 문반에 비해 직위수가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이 많은데다 녹봉을 받지 않는 일시적인 녹봉직인 경우가 79%로 비정규직이 대부분이었다. 다섯째, 교육기관도 문신을 길러내는 교육기관인 서당, 향교, 성균관 등은 많은 반면에 무신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은 거의 없었다. 여섯째, 관리 등용시험에 합격한 인재의 관리인 명부가 무신의 경우는 잘 관리되지 않아 인적관리가 허술하였다. 그 만큼 무의 천시가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확연했다.
그러나 사실 문의 문화나 무의 문화는 어느 하나가 우열에 있는 것이 아닌 문과 무의 가치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군국주의인 과거 일본의 문화는 무의 문화로 치달아 전쟁으로 패망의 길을 가게 하였고 조선조의 문약한 문의 문화는 안보의 무관심, 무질서와 당쟁의 혼란으로 식민 지배를 자초하였다. 더구나 오늘날의 북한은 무의 광란으로 병영국가를 만들었고 우리는 다시 문약의 경향이 안보를 취약하게 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균형을 이루면서 안보와 경제 그리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던 우리의 성취를 군사문화의 단점을 침소봉대하여 비하하고 있다. 문무가치의 균형발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가 되고 있다. 중국의 양(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인 소통(蕭通)은 “문화로 내부를 화목하게 하고 무덕(武德)으로 밖으로부터 안전과 대외영향을 미치게 해야 한다”고 했다. 武는 일을 도모하지만 文의 반려가 없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文 또한 武의 보호막이 없으면 꽃을 피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가 강성해지면 백성들은 호전적이 되며 살기가 어려워지고 문이 강하면 백성들은 자유로워 살기는 편하지만 안전을 보장받기 어려워 전란을 당하기가 쉽다.
제국주의적 논리가 2차대전을 전후하여 정리되고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간의 긴 냉전의 경쟁은 1990년을 끝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새로운 질서로 이전되어 왔다. 세계대전의 위험성은 줄어들었지만 우리나라의 주위는 일본의 무의 문화의 바탕과 민족주의 및 군비경쟁의 안보상황은 보통국가의 명분으로 우경화되고 있고 북한의 병영국가의 건설은 군국주의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무력과 적화통일을 지상의 가치로 여기며 다른 가치가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편 공산주의의 이념적인 지향이 일당독재의 정치체제와 군사적인 가치를 전략의 주요수단으로 하여 무의 문화는 북한통치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위는 온통 무의 문화가 번창하고 있는데 우리만 문의 문화에 몰입하여 안보를 취약하게 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안보의 기반이 취약한 우리의 안보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제는 문과 무의 가치가 균형을 유지하여 안보와 내부안정과 번영을 동시에 실현할 때다. (konas)
김용석 (군사문제연구원 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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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을 없인여기고 군원로들을 적대시하는 사람이 현직 군통수권자다. 주적이 누군지 모르게 병사들을 훈련시킨 국방장관도 있다. 군사문화를 청산의 대상으로만 삼으려는 풍토가 나라의 안보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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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5 오전 8:55:25










